키워드로 살펴본 2007년 미술시장

술품 시장에 있어 2007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잠시 한눈팔 사이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미술품 시장의 열기를 중계하는 목소리는 항상 들떠 있었고, 연일 최고가나 새로운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 1회의 미술품 경매로 300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렸다는 정도론 성에 차지 않는다. 최근에 오픈한 외국계 화랑은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에서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을 스스럼없이 내걸 정도로 미술품 향유 문화 또한 많이 변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아 의식 수준도 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해 가고 있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새로운 전기와 과도기를 동시에 맞은 2007년 한국의 미술 시장. 그 변화의 중심을 이끌어 왔던 대표적인 현상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놀라울 따름이다. 어찌 국내의 50대 초반 생존 작가의 작품 한 점 값이 몇 억 원을 호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국내 미술 시장에서 말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서양화가 오치균(51)의 얘기다. 그의 10호(53.0×45.5~33.3cm) 크기 작품은 작년 10월 서울옥션에서 750만 원에 낙찰된 것이 올 8월 K옥션에선 1억5000만 원에 새 주인을 맞았다. 하지만 일반 시장에선 이 가격에도 구할 수가 없다. 20호 내외의 수작인 경우 3억 원을 상회한다는 말도 나돈다. 아마도 누군가 미리 예견하고 작년 말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면 ‘투자계의 새로운 총아’로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가격 급등을 말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흔히 얘기하는 ‘2007 한국 미술 시장의 5인방’인 박수근(1914~1965) 이우환(71) 김종학(70) 오치균 사석원(47) 등의 작품 가격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한국 미술 시장의 자존심이며 절대 강자인 박수근의 3호(27.3×22~16cm) 작품이 작년 7억2000만 원에서 올해는 10억600만 원으로 뛰었다. 이우환의 경우 작년 9월 경매에서 대표적인 ‘라인(From Line)’ 시리즈 10호가 1억 원이었는데 1년 만인 올해 9월엔 같은 크기 ‘바람으로부터’가 2억1000만 원으로 치솟았다. 현재 구매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즌이 ‘라인’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최소 5억 원은 넘어서게 될 것이다.김종학과 사석원의 작품은 약 10배의 상승세를 보인 경우다. 김종학의 10호 유화 작품이 작년 초 700만 원에서 올해 9월엔 7000만 원으로 뛰었다. 사석원의 10호 작품 역시 지난해 12월에 340만 원에 불과하던 것이 불과 7개월 만인 올 7월엔 3400만 원이었다.미술 시장의 생명은 투명성이다. 그만큼 신뢰도가 중요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선호하고 인지도가 높은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국민화가 ‘박수근 이중섭 위작 사건’은 미술계를 발칵 뒤집은 대사건이었다. 2005년 2월 3억1000만 원에 팔린 이중섭 화백의 ‘물고기와 아이’가 다른 원본을 베낀 위작임이 드러나며 불거진 사건이다. 처음엔 단일 사건으로 의문이 제기됐지만 고구마 줄기처럼 확대돼 결국 지난 10월 17일 박수근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베낀 2800여 점 모두 가짜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만약 이 모든 작품이 시장에 유통됐다면 수천억 원, 아니 수조 원을 넘는 희대의 사기극이 되었을 아찔한 순간이었다.이 사건으로 인해 한때 미술품 시장이 크게 위축되기도 했지만, 반면 많은 긍정적인 교훈을 남겼다. 먼저 미술품 감정의 중요성을 전 사회적으로 인식시킨 것. 아울러 미술품 감정의 과학적인 시스템 도입과 선진화 노력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시장이 살아나고 제 역할을 하려면 구성원의 자유로운 참여와 투자 수익률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미술품 시장에서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아직 경매 형식 뿐이다. 이런 중요도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고작 10년의 역사를 가졌다. 그나마 1998년 설립된 서울옥션이 독점해 오다 2005년에 K옥션이 설립되면서 자율 경쟁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2차 미술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계기다. 미술품도 비로소 환금성을 갖춘 진정한 자본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된 셈이기 때문이다.컬렉터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소장한 미술품들을 다시 되팔 수 있는 판로 확보’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현재 국내에 설립됐거나 준비 중인 미술품 경매사들은 10여 개에 이른다. 우선 대표적으로 서울옥션(대표 윤철규, 1998년)과 K옥션(대표 김순응, 2005년 9월)을 들 수 있으며 옥션M(대구 MBC, 2007년 8월), D옥션(대표 정연석, 2007년 9월), 오픈옥션(대표 이금룡, 2008년 초 예정), 옥션별(대표 천호선, 2008년 3월 예정), A옥션(대표 서정만, 2007년 6월)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자본가나 기업들이 미술품 경매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한다.경매사의 출현과 확대는 미술 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연령과 경력, 학력, 인맥 등으로 작가의 등급을 정하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말 그대로 능력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가 창출되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있다. 시장의 인지도나 작품 가격의 기준점도 변화시켰다. 가격의 결정 요소 중에 ‘수요자의 선호도(taste)’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게 됐다. 같은 작가의 같은 크기라도 선호도가 틀리면 가격 편차는 수십 배에도 이를 수 있다.빠른 속도로 호당 가격은 작품당 가격으로 전이되고 있다. 나아가 수요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품이 감상을 넘어 투자 대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아트테크, 아트 펀드, 아트 비즈니스, 아트 마케팅 등 수많은 신조어와 새로운 생활문화의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고 있다.반면 만만치 않은 과제도 남아 있다. 국내의 한정된 시장 규모 속에서 여러 경매사들이 제각각 고유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