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삼성 회장은 핸디캡이 11∼12였고 드라이버 샷도 220~230야드를 날려 아마추어로는 수준급 골퍼였다. 그는 특히 쇼트 게임을 무척 잘해 그린 주변에서 스코어를 많이 줄였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어프로치 샷과 퍼팅, 벙커 샷은 각각의 철칙과 요령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사업도 그와 마찬가지로 각 단계별로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이 회장은 또 국내 최초의 프로골퍼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는 안양골프장(현 안양베네스트GC)을 만들면서 당시 가장 뛰어난 골퍼였던 한장상 프로를 영입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골프 숍과 골프 연습장 운영권도 줬다.이 회장과 한 프로의 인연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프로가 근무하고 있던 서울CC에 이 회장이 라운드하러 나오면서 안면을 튼 것.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4년 5월께였다. 어느 날 이 회장은 한 프로와 라운드를 마친 뒤 저녁식사를 함께하자며 장충동 자택에 초대했다.식사를 마친 뒤 이 회장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한 프로, 내가 안양에 골프장 만들고 있는 거 알지?”라며 “안양골프장이 곧 오픈할 예정이니 자네가 와서 직원들을 지도해 주고 나랑 골프도 함께 하면 좋겠네”라고 말했다.이 회장은 한 프로를 영입한 뒤 한 달에 1∼2차례 함께 라운드했는데 라운드가 끝나면 보통 3만 원 정도의 사례비를 줬다. 당시 레슨비가 8000원 정도였음에 비하면 꽤 큰돈이었다. 한 프로는 이 회장의 스윙 습관에 대해 “드라이버 샷을 할 때 어깨가 지나치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며 “임팩트 순간에는 반드시 머리를 고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회고했다.이 회장은 안양골프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일본의 유명 골프장을 다 돌아보고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골프장에 대한 문헌을 샅샅이 뒤져가며 그 장점만을 따서 가장 이상적인 골프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설계는 일본의 명문 골프장인 스리헌드레드(300)CC의 이사장이자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인 고토 노보루 씨에 의뢰해 그의 부하 임원인 미야자와 나가히라 씨에게 맡겼다.안양골프장의 페어웨이 잔디인 ‘중지’는 이건희 현 삼성회장의 작품이다. 안양골프장은 처음에 한국산 금잔디를 심었는데 이병철 회장이 코스를 돌면서 잔디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금잔디는 아무래도 골프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이 회장은 일본과 미국의 잔디를 가져와 국내의 차가운 날씨와 장마에 잘 견딜 수 있는 잔디를 개발하도록 했다. 수원의 삼성전자 단지 옆에 잔디를 연구하는 실험실도 뒀다. 그 잔디 개발 과정을 이건희 현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여기서 개발한 중지는 지금 여러 국내 골프장에 식재돼 있다.이병철 회장은 안양골프장의 조경에도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최고의 수준을 지향했다. 오죽하면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우정힐스 골프장을 만들면서 “지금은 어디에서도 안양골프장 같은 나무를 구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