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어째 영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에 우유 한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섰다. 오늘따라 밤하늘의 별이 눈에 들어온다. 어렸을 때 내 침대는 창가에 있어서 누우면 달빛도 들어오고 별도 보였다. 잠들기 전까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매일 밤 같은 기도를 하면서 나도 이담에 커서 별처럼 반짝이는 그 무엇이 되겠다고 가슴 벅차게 다짐하기도 많이 했었는데….마뉴엘 퐁세의 ‘작은별(My little star)-원제: 에스텔리타(Estellita)’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밤하늘을 느끼게 해 준다. 강한 호소력으로 한 번을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다. 바이올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높은 음 하나하나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수 있게 부드럽고 알찬 소리를 내는 막심 벵게로프의 연주가 정말 마음에 들어 내 차에는 늘 ‘Vengerov & Virtuosi(벵게로프와 비르투오지)’ 음반이 들어 있다. 이 음반은 기존의 바이올린 소품들을 피아노와 소규모의 현악 앙상블 곡으로 편곡한 곡인데 바이올린과 피아노만으로 듣던 오리지널 곡을 여러 악기로 연주하니 색다른 맛이 난다. 차가 막힐 때나, 너무 바쁜 스케줄에 지쳐 있을 때 이 곡을 들으면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올랐는지, 이 바쁜 일상이 지치고 짜증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인지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음악이다.영국의 대표적 작곡자 에드워드 엘가는 어릴 적 품은 음악에의 꿈을 40대에 이르러서야 성취한 인물이다. 독학으로 작곡과 악기 다루는 법을 터득한 그는 커서 유명한 작곡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열다섯 살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생계비를 벌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혼자서 작곡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편지봉투에 주소가 없이 자신의 이름만 써 있어도 배달이 될 만큼 유명한 작곡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계속 키워나갔다.그런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42세가 되어서였다. 그렇게 긴 세월의 무명 시절을 꿈 하나로 버틴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텐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엘가가 위대한 것 아닐까.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오만할 정도의 야망과 보장받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뒤얽혀 매우 우울한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안정되면서 ‘위풍당당 행진곡’, ‘수수께끼 변주곡’ 등 세상에 인정받는 작품을 하나 둘씩 내놓기 시작했다. 그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담은 것이 저 유명한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다. 부드럽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아름다운 멜로디는 암울했던 그의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듣는 사람의 우울함마저 없애주는 상큼하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 활동도 빛을 잃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 꿈을 이루게 해줬던 존재였을까.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가로 유명한 프리츠 크라이슬러. 그는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던 중 사람을 돕고 봉사하는 것에 뜻을 두어 다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진료실에서 ‘내가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 치료하는 것보다는 여러 대중 앞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그는 홀연히 의사라는 직업을 접고 다시 바이올린 독주자로 연주 생활을 시작했다.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만든 작곡가로 평가된다. 그의 바이올린 곡은 바이올린만이 낼 수 있는 음색, 느낌, 뉘앙스를 너무나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크라이슬러도 지금이야 유명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겼지만 막 작곡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를 연주가로는 인정해도 작곡자로는 알아주지 않았던 것이다.크라이슬러는 기발한 방식으로 이런 장벽에 도전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작곡가였던 가에타노 퓨나니(Gaetano Pugnani)와 비슷한 형식으로 ‘Praeludium and Allegro(서주와 알레그로)’를 작곡한 후 자신의 독주회에서 퓨나니의 최신곡이라고 사람들에게 거짓 소개한 것.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명의 도용이었지만 어쨌든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사실 그의 곡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지금도 Praeludium and Allegro 악보나 음반에는 ‘in the Pugnani style’이라고 기록돼 있다.)이후 대중은 결국 그의 작곡 역량을 알아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그는 작곡에 박차를 가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의 대표곡들인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 등이 탄생한다.그의 많은 곡 중에서도 나는 ‘빈카프리치오(Caprice Viennois)’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좋아한다. 오프닝은 호기심을 자극하듯 칼을 빼 들은 분위기인데, 뒤이어 나오는 빈 왈츠풍의 느린 춤곡 리듬에는 왠지 눈물이 날 듯한 회상이 숨어있는 것 같다. 반백의 대가 바이올리니스트가 켜야 어울릴 듯한 이 음악은 가장 심플한 리듬, 화음, 멜로디가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곡이다. 모든 성공과 상실 아픔을 다 경험하고 나서 다시 돌아온 제자리….그리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신나는 ‘중국의 북(Tambourin chinois)’을 연달아 들어보라. 그러면 크라이슬러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흥겨운 리듬과 동양적인 멜로디, 그리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듯한 빠른 패시지…. 정말 적절하게 여러 가지의 테크닉을 사용한 작품이다. 이 때문에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머리 좋고 재치 있고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크라이슬러의 면모가 연상된다. 멋진 음악가가 되기 원했던 초등학교 선배는 보수적인 집안의 반대로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지금은 컴퓨터 게임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었다. 화가가 되겠다던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인도에 가서 요가 선생님이 되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같이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대학 동창은 MBA를 졸업하고 얼마 전 구글에 입사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고 알려왔다. 지난 25년간 바이올린과 함께했던 꿈을 버린 지금 목소리가 더 씩씩하게 들렸다.어떤 이는 어렸을 적의 꿈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다며 인생을 잃어버렸다고 비관하기도 한다. 꿈이란 것은 꼭 어렸을 때만 꾸는 것은 아닐 텐데도. 모든 계획에 수정이 있듯이 꿈도 수정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희망차게 가꾸는 것은 어떨까. 꿈을 꾼다는 것은 오늘의 우울함도 내일의 불안함도 잊게 해 주며 나를 살아있게 하는 나만의 비타민이다.정유진바이올리니스트.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 졸업부천시향 수석바이올리니스트. JK앙상블 악장, 한국페스티벌 앙상블 멤버이화여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