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에 빠진 사람들은 도박이 지금의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여긴다. 그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고의 방법으로 도박을 선택했고 도박 외에는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도박에서는 으레 사기꾼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사기꾼은 어수룩한 초보 도박꾼을 노리고 초보 도박꾼은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그들의 속임수를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야만 도박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미술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카드를 하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1571~1610)의 ‘속임수를 쓰는 사람 혹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다. 전형적인 사기도박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카라바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카라바조는 도박, 술, 결투, 투옥, 살인과 도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화가다. 그는 당시 화가들이 표현했던 인물들과는 거리가 먼 개구쟁이, 사기꾼, 집시들, 그 밖에 온갖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미술 애호가나 귀족들은 카라바조의 이런 작품들을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그림을 사가는 사람이 없어 그는 로마의 뒷골목 매춘굴에서 지내며 도박에 빠졌다. 이 작품은 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작품 속에서는 황금색 깃털 모자를 쓰고 있는 청년과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카드를 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콧수염의 남자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의 카드를 훔쳐보고 있다. 그는 앞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구멍 난 장갑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며 상대방 패를 가르쳐주고 있다. 청년은 뒤로 카드 두 장을 숨기고 있다. 단도를 차고 황금색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는 청년의 옷차림은 그 당시 유행했던 복장이다.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의 ‘사기 도박꾼’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지닌 사기 도박꾼’이 원제인 이 작품은 여인들의 술수에 넘어가는 방탕한 젊은이를 묘사하고 있다.그림 속에서 화려한 차림의 어린 공작은 손에 쥔 카드에만 집중하고 있다. 반면 화면 왼쪽의 사기 도박꾼은 왼손으로 에이스를 감춘 채 공작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귀부인은 어린 공작에게 사기도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은 고정한 채 눈동자만 와인 잔을 들고 있는 하녀에게 향하고 있다. 와인 잔을 들고 있는 하녀는 어린 공작의 카드를 훔쳐보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세 가지 유혹이 여자, 술, 도박이었는데 이 세 가지를 한 화면에 담은 작품이 ‘사기 도박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얼굴에 빛을 받고 있는 공작은 선을 상징하고 사기꾼의 어두운 얼굴은 악을 상징한다.17세기에 유행하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주제는 19세기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폴 세잔(1839~1906)은 이 주제에 매료돼 1890년부터 1896년까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시리즈 5점을 남겼다.세잔은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에서는 5명, 두 번째 작품에서는 4명, 나머지 세 작품에서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두 사람이 카드에 열중하는 모습을 그렸다.화면 속 두 명의 남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카드에 집중하고 있다. 파이프를 물고 있는 왼쪽 남자는 어두운 인상이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밝게 표현됐다. 세잔은 두 남자의 성격을 서로 다른 형태의 모자로도 나타냈다.세잔이 카드라는 주제에 집착했던 것은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 마주앉아 카드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사람을 실루엣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야외보다는 그가 즐겨 그렸던 과일 있는 정물화와 같은 효과를 주고 있어서다.또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시리즈는 세잔의 무의식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서 세잔은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투쟁, 혹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사기 도박꾼-1635년, 캔버스에 유채, 106×146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좌)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2~96년께, 캔버스에 유채, 47×56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우)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