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월 하나은행의 WM(웰스 매니지먼트)센터. 금융자산 규모가 10억 원 이상인 고객을 전담하는 이 부서 직원이 자신의 담당 고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안녕하셨지요. 괜찮은 해외 부동산 투자 상품이 하나 나와서 전화 드렸습니다.”“해외 부동산이요? 집은 필리핀에 하나 사둔 게 있는데….”“이건 해외 부동산 개발 사업에 펀드 형식으로 참여하는 겁니다. 지역은 영국 웨일즈이고요. 예상 수익률은 연 20% 정도 됩니다. 만기는 1년 반인데 토지에 대한 담보권 설정도 이미 끝마친 상태라서 안전성도 확보돼 있습니다. 참고로 이건 사모 펀드라서 아무에게나 권하는 상품이 아닙니다.”“연 20%씩이나 수익률이 나오면서 안전장치까지 마련됐다면 괜찮겠네요. 한번 투자해 보지요.”이런 식으로 판매된 다올 뉴리더 웨일즈 사모 부동산 신탁은 총 120억 원의 투자 금액을 1주일 만에 조달했다. 이 펀드는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도심 재개발 사업인 웨일즈SA1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사모 펀드다.최근 몇 년 사이 재테크 시장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 상품은 펀드다. 집집마다 한두 개씩은 가입했을 정도로 펀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해졌다. 현재까지 일반인들이 구입하는 상품은 공모 펀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사모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펀드 성격상 사모 펀드는 설정 시기, 투자액, 투자 대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조용히 돈을 모아 투자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공모 시장이 사적 금융인 사모 시장을 압도한다. 그러나 공모 시장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금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으며 투자 대상도 안전성이 보장된 채권이나 상장주식 등 일부 상품에 국한돼 있다. 이 때문에 보다 다양한 투자 기회를 찾는 투자자들에겐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결국 새로운 고수익 상품을 찾는 투자자들로서는 공모보다는 위험성이 다소 높은 사모 투자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관리 감독을 덜 받기 위해서는 투자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사모 펀드 시장이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부동산 사모 펀드의 태동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내 상당수 프라임급 빌딩들은 헐값으로 해외 사모 펀드에 매각됐으며 이를 통해 사모 부동산 펀드의 위력을 새삼 깨달았다. 현재 국내에 부동산 사모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에서 놀라운 시세 차익을 거두고 나서부터다.현재 조성되고 있는 부동산 사모 펀드는 30인 이하로 구성되며 투자 금액은 100억~150억 원선이다. 대부분 개인 투자자가 단독으로 나서기보다는 은행, 증권 등 기관투자가와 함께 펀드를 구성하며 이때 기관과 개인의 투자 비율은 7 대 3 정도다.초기 부동산 사모 펀드는 주로 기관투자가들의 몫이었다. 펀드를 기획하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투자 금액도 큰데다 소수로만 펀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펀드를 관리하는 데도 유리하다. 그러나 기관투자가들은 펀드 참여를 결정하는 시간이 늦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 때문에 조기에 펀드를 조성, 투자해야 하는 자산운용사로서는 의사 결정이 상대적으로 빠른 개인 고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으며 이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양상이다.이 밖에도 개인들이 부동산 사모 펀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전체 펀드 금액이 비교적 소규모여야 하며 리스크는 약간 높지만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기관투자가들의 경우 저위험 상품을 고집하는데 비해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보다는 다소 위험도가 높은 상품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또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상품은 펀드 투자 기간이 1~2년으로 비교적 짧다. 참고로 기관투자가들은 3년 이상 장기 상품을 선호한다.초창기 부동산 사모 펀드는 주로 국내 아파트 개발 사업에 투자됐다. 이들 상품은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투자됐으며 사업성이 낮은 곳은 건설사가 지급 보증을 서 투자 위험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펀드를 설정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부동산 투자 열기가 식으면서 국내 개발에 투자되는 사모 펀드는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칸서스자산운용 문흥식 이사는 “분양가 상한제, 청약 가점제 등 정부의 각종 규제로 국내 시장의 투자 리스크가 너무 커졌으며 이에 따라 소규모 고급 주택, 오피스 건물을 통째 매입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투자 상품이 없는 실정”이라고 투자 분위기를 전했다.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해외 부동산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관련 사모 펀드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해외 부동산 사모 펀드는 대부분 국내 부동산 펀드와 마찬가지로 PF 방식으로 투입되고 있으나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분양, 임대 후 수익을 나눠 갖는 에퀴티 펀드(수익 배분형 펀드)도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택지 개발 사업에 투자한 모 사모 펀드를 살펴보자. 총 102억 원을 모금한 이 펀드는 연 13.0%의 수익을 보장하며 개발 후 일정 금액을 추가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특히 호주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 시장은 이미 완공된 건물을 매입해 임대 수익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최근 들어 이머징 마켓으로 진출하는 사모 부동산 펀드도 늘고 있으며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 꼽힌다. 이들 지역은 선진국 시장에 비해 위험성은 다소 높지만 이머징 시장답게 수익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현지 부동산 개발 사업에 투자되며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분양, 임대 후 수익까지 고려해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해외 부동산 사모 펀드는 자산운용사에서 상품을 기획하며 개인 고객에게 펀드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은 은행, 증권사의 몫이다. 현지 부동산 디벨로퍼가 기획한 상품을 자산운용사가 평가하는데 개발 프로젝트가 실제 펀드 상품으로 기획되는 경우는 10%가 채 못 된다.개인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은행마다 해외 부동산 사모 펀드를 기획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얼마 전 러시아 사할린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사모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개인 고객의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모 펀드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기관투자가들에게만 판매한 상품이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죠.”(모 자산운용사 관계자)또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 진출하는 국내 중견 건설 업체들도 부동산 사모 펀드로 현지 개발 사업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관련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은행은 다올부동산자산운용과 공동으로 베트남 하이폰 리조트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투자 금액은 50억~100억 원이며 리조트 외에도 골프장, 병원 등도 건설될 계획이다. 또 중국 하얼빈 아파트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60억 원 규모로 부동산 사모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하나은행 웰스매니지먼트센터 김상윤 본부장은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이 확대되면서 개인들이 사모로 참여하는 시장은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은행들 입장에선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도 각 금융사마다 관련 상품을 경쟁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며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