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가면 마누라도 반가워하지 않고 아이들과 얘기해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몇 해 전 한 중견 간부가 하소연한 말이다. 회사 내에서 꽤 인정받고 있는 이 직원은 이른 아침 출근해 늦은 야근이 끝나서야 집에 되돌아간다. 야근이 없는 날도 이런저런 모임으로 늦기는 마찬가지다. 황금 같은 주말은 부족한 잠과 TV 시청으로 무기력하게 보내기 일쑤다.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서 참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개운치 않은 것은 이 문제가 그 직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올 9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노동시장 핵심 지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 52개국 중 한국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이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로는 연간 2200시간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1980~90년대라면 이해가 가지만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된 지금에도 실상이 그렇다니 참으로 허탈한 일이다.이를 바꾸어 말하면 품질과 생산성으로 경쟁하기보다 노동시간과 인건비로 경쟁하는 일터가 여전히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속 성장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족보다는 회사 일을 우선시하고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며 쉴 새 없이 일했던 우리 세대의 습관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왠지 빚을 물려주는 기분이기 때문이다.그런 기분 때문에 지난 연말 우리 회사는 신선한 결정을 내렸다. 경영진과 심사숙고한 끝에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리프레시(Refresh) 휴가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대상자 대부분이 핵심 부서의 팀장이어서 장기 휴가로 인해 빚어질 인사상의 공백을 조절하기가 무척 힘이 들긴 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겐 재충전의 기회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과감히 시행했다.반응은 대만족이었다. 가족과 함께 장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나이 먹어 포기했었던 유럽 배낭여행도 다녀왔다고 자랑들이 대단하다.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인생을 되돌아보며 삶의 목표를 다시 세우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직원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소중한 가족들이 함께한 것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3개월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한 후 경영자로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됐다. 여태껏 우리는 일터 문제에만 너무 매여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업무를 혁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쉬는 것도 충분히 생산적일 수 있다. 노는 것도 매우 중요한 배움이다’라는 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고대 희랍어인 여가(scole)는 학교(school)와 학자(scholar)의 합성어다. 교양을 쌓고 자기 수양을 한다는 의미와 함께 재미를 즐긴다는 뜻이 있다고 하니 직원들의 여가도 충분히 의미 부여가 가능한 것 아닌가.경영자가 직원들의 여가까지 신경 쓸 입장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맨 파워(Man Power)이고 보면 회사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곰곰이 숙고하곤 한다. 그래서 직원들의 여가와 행복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우리 사회의 더 나은 도약을 위해서라도 좀 더 진지하게 ‘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쉬고 노는 것에 대해 건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쉬는 것은 과거의 피곤을 극복하는 데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박동열토마토저축은행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