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전 한국 축구가 한·일 월드컵에서 이룬 4강의 함성은 아직도 생생하다. 히딩크 감독은 일약 축구계의 우상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강산을 붉게 물들였던 대한민국의 열정은 지구의 축을 흔들 정도의 위세였다.그 앞에 기세등등하게 나부끼는 깃발이 ‘도깨비 상’이었고 함성의 선도자는 ‘붉은 악마’였다. 하지만 아직도 ‘왜 하필 도깨비이고 붉은 악마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흔히 ‘붉은 악마’는 한국 축구팀을 지원하는 서포터스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원래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외국 언론들이 붙인 별칭이었다.한국 축구 역사에서 붉은 악마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에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이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자, 외국 언론은 한국팀의 빨간색 유니폼에 착안해 ‘붉은 악령(Red Furies)’으로 불렀다. 이 표현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붉은 악마(Red Devils)’가 됐고, 당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우리 축구가 세계 정상에 오르기 바라는 열망이 이를 마스코트화한 것이다.이런 배경에서 1995년 12월에 결성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은 당초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Great Hankuk Supporters Club)’으로 불리다가 온라인을 통해 정식 명칭을 공모해 1997년 8월 현재의 ‘붉은 악마(Red Devils)’로 확정됐다.붉은 악마의 로고는 우리나라 고대 배달국의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도깨비상이다. 치우천왕(蚩尤天王)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한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천왕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치우천왕은 기원전 2707년에 즉위해 109년간 통치했고, 자오지(慈烏支) 환웅이라는 별칭이 있다. 그는 신처럼 용맹해 승리의 상징이었고, 구리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키며 세상을 다스렸으며 철병기 제작술이 뛰어났다. 그래서 치우는 우리 민족 최고의 전쟁과 승리를 상징하는 신이며 전설적 존재이기도 하다. 흔히 도깨비상으로 불리는 치우천왕의 모습이 고대 왕릉과 기와 등에 조각돼 있는 것은 그가 국가를 수호하는 군신이었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붉은 악마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과 함께 한국이 4강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저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 다소의 상품 수출국으로만 알려졌던 국가 이미지는 경기 기간 내내 한반도 전체를 붉게 수놓은 함성과 열광적 응원 문화, 경기 종료 후에 보여준 시민들의 질서 의식과 봉사정신이 조화를 이뤄 한껏 드높아졌다. 태극기 패션과 ‘대~한민국’의 연호가 세계에 유행하기도 했다.붉은 악마라는 표현은 초기에 한국 특유의 레드 콤플렉스와 악마라는 용어로 인해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하지만 이제는 강인한 힘과 열정, 승리와 행운을 상징하고 기원하는 축구 사랑의 마스코트가 됐다. 한국이 또다시 치우천왕과 붉은 악마의 당당한 기상을 갖춘 성숙한 모습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www.cyworld.com/ke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