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한 사랑은 결혼을 통해 법적으로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열렬하게 사랑하고 결혼했더라도 달콤한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사랑은 현실의 그늘 아래에 있다. 현실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결혼 생활이 2% 부족하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랑을 꿈꾼다.특히 정략결혼으로 불행한 결혼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권력자는 현실의 도피처로 정부를 두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부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두르다.모리스 켄탱 드 라 투르(1704~88)의 ‘마담 퐁파두르’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다. 그녀는 로코코 시대의 문화를 이끌었던 엘리트로서 당시 왕의 정부들이 귀족 출신이었는데 비해 퐁파두르는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그녀는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루이 15세를 만나 정부가 되었다.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19년 동안 루이 15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연극 음악 책 등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인 덕분이다. 그녀의 박식함은 루이 15세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냈고 권력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됐다.화려하게 수놓은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마담 퐁파두르는 손에 악보를 들고 있다. 책상 뒤로 짙은 녹색의 풍경화가 보인다. 책상에 놓인 책은 제목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백과사전 책은 그녀의 지성미를 나타낸다.이 작품에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가발을 쓰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평상복을 입고 궁정 내실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녀가 신고 있는 신발도 실내화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위해 연극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 작품에서 악보를 들고 있는 것도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라 투르는 전신 초상화를 원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의뢰 때문에 다른 초상화보다 크게 제작했다.루이 15세는 탐욕스러울 정도로 유난히 소녀를 좋아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왕의 취향을 알고 있어서 베르사유 궁전 외곽에 사창가를 만들어 왕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헌납하기 위해 소녀 매춘부를 항상 대기시켰다.많은 소녀들 중에서 루이스 오 머피가 루이 15세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매춘으로 돈을 벌기 위해 파리에 온 열네 살의 루이스 오 머피는 루이 15세의 사랑을 받았지만 왕에게 마담 드 퐁파두르를 ‘늙은 여자’라고 지칭하면서 왕의 총애를 받는 정부의 눈에 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왕의 아이를 낳았는 데도 불구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프랑수아 부셰(1703~70)는 일찍이 왕의 사랑을 받고 있던 이 소녀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모델로 기용해 몇 작품을 제작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마드모아젤 루이스 오 머피’다.이 작품속의 모델 루이스 오 머피의 얼굴은 이제 막 소녀티를 벗어난 소녀 같지만 몸은 성숙할 대로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소녀를 향한 왕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제작했지만 너무나 솔직한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부셰는 그 당시 휴식보다는 섹스의 도구로 활용됐던 소파를 강조하기 위해 소파 위의 침구나 천으로 악센트를 주었다. 이 작품은 부셰 특유의 에로티즘이 잘 나타나고 있다.프랑스 앙리 4세가 가장 사랑했던 정부 가브리엘레는 천부적으로 권력 감각이 뛰어났던 여자다. 그녀는 의회에 진출해 법률을 제정하는 일에 개입했으며 대사들을 영접하고 종교 전쟁을 종식시키는 일을 하기도 했다.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 프랑스 제2차 퐁텐블로파의 무명의 화가가 그린 ‘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와 자매’다. 이 작품은 동성애를 암시한다.화면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다. 그녀는 금발에 팔다리가 길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당시 가장 이상적인 미인으로 손꼽혔다. 또한 가장 아름다움 가슴을 가진 여자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에서 가브리엘레는 반지를 들고 있고 그 옆에 자매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다. 자매가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은 앙리 4세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가브리엘레를 향한 다산에 대한 축복을 의미한다. 공동 목욕탕 안에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양쪽으로 걷어 올린 커튼 뒤로 거실에서 하녀는 벽난로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작품을 제작할 당시 가브리엘레는 임신 중이었다.이 작품을 제작한 화가의 이름이나 제작연도는 알 수 없으나 1599년 가브리엘레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기 전으로 추정된다.제2차 퐁텐블로파는 가브리엘레 덕분에 종교 분쟁을 해결한 앙리 4세의 후원 아래 발전했다. 이 작품은 앙리 4세의 기호에 맞춰 여성의 누드를 세심하게 표현했다.1 마담 퐁파두르 - 1775년, 종이에 파스텔, 1700×1280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2. 마드모아젤 루이스 오 머피-1752년, 캔버스에 유채, 59×73cm,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3. 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와 자매-1590년께, 목판에 유채, 95×1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