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니 뎁이란 배우를 일약 블록버스터 연기자로 만든 21세기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캐리비안의 해적’. 기괴하리만치 독특한 캐릭터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 영화는 2003년 전미 흥행 1위를 기록했다.젊은 노링턴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 범선 한 척이 카리브해에 새로 부임하는 스완 총독과 그의 외동딸 엘리자베스 스완을 싣고 안개 자욱한 카리브해를 항해하고 있다. 이때 난파선 파편에 의지한 채 정신을 잃고 표류하는 소년을 발견하고 구출하게 된다. 소년의 목에 걸려 있는 해적의 상징인 해골 문양의 황금 메달. 엘리자베스는 모르고 있지만, 그것은 바로 해적선 블랙 펄의 선장 바르보사가 찾아 헤매고 있는 코르테즈의 마지막 금화였다.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그 목걸이를 품속에 감춘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밤. 블랙 펄의 해적들이 영국군 요새를 기습하고, 코르테즈의 금화를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를 블랙 펄로 끌고 간다.산 사람을 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거구의 해적이 엘리자베스를 데려 온 동료 해적을 나무란다. 엘리자베스가 험상궂은 해적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입을 떼자마자, 그녀의 뺨을 무지막지한 손으로 사정없이 후려친다.이 광경을 지켜보다 그의 거친 손목을 잡아채는 낯선 중년의 해적. 바로 블랙 펄의 선장 바르보사다.바르보사: (미소를 띠고 한껏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신 사과하겠소, 아가씨 (그리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한다).협상기법 제안 1바르보사 선장의 초기 협상 전술: 상대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려라(Relieve antagonism and anxiety)당신에 대한 부정적 심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의 얘기를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들어 줄 수 있는 고매한 인격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첫 번째 방법은 상대가 느끼는 적대감, 반감, 분노, 근심에 대해 경청하고 공감을 표현하라(Empathy 전략). 두 번째, 상대의 공격 대상을 당신이 아닌 다른 회사 규정, 전산 시스템, 타 사업부로 돌리고 당신은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조력자로 인식시켜라(Good Guy Bad Guy 전략).엘리자베스: (이 선장은 믿을 만한 신사라고 판단한 듯 정중한 어조로) 바르보사 선장님,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포트 로열 요새에 대한 적대적 공격을 즉각 중단하는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서입니다.바르보사: (곤란하다는 듯) 말씀이 너무 어렵군요. 우린 워낙 무식한 해적이라서….협상기법 제안 2바르보사 선장의 협상 전술 분석: 모르는 척, 무식한 척 상대의 압박에서 빠져나와라(Acting dumb is smart)미국의 협상전문가 로저 도슨의 말처럼, 유능한 협상가에게는 현명한 게 어리석은 것이고 현명한 것이다. 어수룩한 행세를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상대의 적대감이나 경쟁 심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둘째, 당신이 감당하기 힘든 고단수의 협상 전략 전술을 구사하지 않도록 상대의 경계를 흩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일부 지나친 요구나 양보를 요청하는 경우, 의외로 큰 저항이나 반감 없이 상대의 관대한 처분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바르보사: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이오?엘리자베스: 당장 이곳을 떠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마시오.바르보사: (점잔을 빼며 능청스럽게) 본인은 당신의 제의를 수락할 의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싫소’이다.엘리자베스: 정 그러시다면, (품속에 있던 황금 해적 메달을 꺼내 손에 쥐고 갑판 난간 너머로 팔을 쭉 뻗으며) 이 메달을 바다에 떨어뜨리겠어요.협상기법 제안 3엘리자베스의 위기 타개 협상 전술: 도저히 안 되면 판을 엎어라(제안 철회 기법 Withdrawing an offer)이 협상 기법은 당신에게 마지막 한 푼까지 긁어 가려는 듯, 시종일관 지나치게 양보를 요구하면서 물고 늘어지는 사람을 상대로 활용해야 한다.일반적인 요령은 당신이 여태껏 제시했던 양보 내용이 본사에 확인 결과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해 절대 불가하다고 통보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본사가 정한 최종 양보 조건을 함께 제시, 상대의 지나친 양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그러나 이 제안 철회 기법은 자칫 상대를 지나치게 자극한다거나 곤경에 빠트려 어렵게 다져 온 상호 신뢰 관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 개인적 인간관계보다 비즈니스를 최우선(Deal-focused culture)하는 서구와 달리 유대 관계를 중요시하는(Relationship-focused culture)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엔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바르보사: (순간 표정을 바꾸며 능청을 떤다.) 지금도 돈 자루가 터져나갈 지경인데. 저 반짝거리는 동전 한 닢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왜?엘리자베스: (의외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한 듯) 당신들이 찾는 게 이거 아니었나요? 8년 전 영국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이 배를 본 적이 있어요.바르보사: (무심한 듯) 보셨어, 지금?엘리자베스: 좋아요. 이게 값어치가 없다면 나도 더 이상 힘들게 들고 있을 이유가 없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메달을 손에서 놓아 버리는 엘리자베스. 바르보사 선장과 해적들은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린 비명을 토해내고 만다. 그러나 메달에 연결된 줄을 잡고 있는 엘리자베스. 한번 떠본 것이다.)협상기법 제안 4엘리자베스의 협상 전술: 상대의 미심쩍은 정보는 역정보(Planted information)를 흘려 진위를 확인하라(Information verification)상대가 기만책(Misdirection)을 쓰기 위해 당신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조작되거나 왜곡된 정보(Planted information)를 검출해 내지 못할 경우 협상은 재앙으로 종결될 수 있다. 모든 정보의 진위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요 협상 이슈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선 반드시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당초 예상한 상대의 협상 목표와 전략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그로 인해 우리 측의 협상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야기하는 정보에 대해선 철저한 검증(Verification)이 불가피하다.바르보사: (다시 친절한 음성으로) 메달을 주시오. 그러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소.엘리자베스: (잠시 머뭇거리다 그의 손에 메달을 건네준다.) 휴전은요? (메달을 받아 들고 말없이 돌아서는 바르보사 선장. 부하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듯 가벼운 고갯짓을 하곤 사라진다. 그러자 해적들은 전투 준비로 돌입하고 해안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다.)엘리자베스: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급히 바르보사 선장을 따라가서) 날 해변으로 데려다 줘요. 협약에 따르면….바르보사: (성가시게 따지고 드는 엘리자베스에게 일갈한다.) 첫째, 아가씨가 해변으로 돌아가는 건 거래의 조건이 아니니 내 알 바 아니오. 또한, 아가씨는 사실 해적도 아니잖소. 협상기법 제안엘리자베스의 협상 실책: 계약서 작성을 상대에게 맡기지 마라(Take initiative in writing contract)문서로 조목조목 상세히 남겨 두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두로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빠뜨리고 넘어가는 사안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 서면 계약서를 최종 점검하고 서명하는 자리에서 그 누락된 사안들에 대해 상대의 승인을 유도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서를 주도적으로 작성하는 측이 비주도적으로 작성하는 측보다 엄청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즉, 구두 협상에서 간과하거나 누락된 문제는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달아 첨가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는 상대로서는 협상 시한이 종료로 치닫거나 혹은 이미 경과한 시점에서 계약서상의 변경 사항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대학원 협상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