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토 프로세코의 향미

탈리아 베네토 지방에서 생산되는 프로세코(Prosecco) 와인은 같은 이름의 포도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 와인은 양조장마다 베르디조, 피노 그리지오, 샤르도네 등을 혼합하기도 한다. 프로세코는 포도밭 위치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데, 프로세코 디 코넬리아노-발도비아데네(Prosecco di Conegliano-Valdobbiadene)라는 종류가 제일 맛있다. 그래서 길지만 외워둘 만한 이름이다.이 프로세코는 코넬리아노 마을과 발도비아데네 마을 사이의 비탈진 특정한 구역에서 양조되는 DOC 등급이다. DOC는 프랑스의 AOC와 유사한데, 이 등급을 받은 와인은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다. 이탈리아 와인을 살 때 만약 DOC라는 등급이 표시돼 있다면 좋은 토양 덕분에 품질이 어느 정도 보장된 와인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다시 프로세코 와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양조장 토폴리(Toffoli)의 주인 빈첸조 토폴리는 어릴 적 떠난 고향 마을로 돌아와 1990년부터 프로세코 DOC를 생산하고 있다. 5헥타르의 포도밭에서 프로세코를 키우는 그를 양조학교 출신의 동생과 양조학교를 최근에 졸업한 딸이 거들고 있다. 그는 “프로세코는 부드럽고도 상큼한 맛이 특징”이라면서 “과일로 비유하면 귤보다는 사과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또한 가난했던 과거를 들려주면서 지역 특산의 ‘드렁큰 치즈(drunken cheese)’ 이야기를 꺼낸다.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가을에 이 마을에 침입한 독일-오스트리아군은 닥치는 대로 식량을 거둬 갔다. 가족들은 양젖 치즈인 페코리노를 숨기기 위해 치즈 덩어리를 와인 발효통 속에 넣고 포도 껍질로 덮었다. 위장된 더미 속에서 치즈를 지켜낼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나고 마을은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은 치즈에도 남았다. 봉변을 면한 치즈는 예전의 누런 빛깔이 아니었다. 대신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발효가 끝난 포도 껍질 속에 파묻힌 페코리노의 표면이 변색됐고, 대신 와인 아로마가 넘실거렸다.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치즈의 맛에 반해 ‘드렁큰 치즈’라고 이름을 지었다. 지금도 이들은 해마다 이런 방법으로 치즈를 만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추억이 생각나면 드렁큰 치즈를 한입 베어 물고 프로세코 파시토를 마신다. 파시토는 수확한 포도를 그늘에서 오랫동안 건조해 양조한 것으로 잔당이 많이 남아 있어 무척 단 와인이다.베니스 출신의 비졸(Bisol) 가문은 1542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의 토양 관리를 세심하게 살피며 작년부터는 일부 밭을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주변 포도밭과 격리돼 있어 그 농법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절 비료를 쓰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고 전통적 방식인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포도나무를 키우기 때문에 향과 맛이 무척 강하다. 한 모금 마셔보면 풍성한 과일의 맛보다는 땅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미네랄 맛이 더 많이 느껴질 것이다. 이 농법으로 만든 와인은 색깔도 맑으며 향기 속에는 미네랄이 잔뜩 녹아 있다.포도밭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도 있다. 이런 북쪽 지방에도 올리브가 자라느냐, 정말 괜찮은 올리브가 열리느냐고 물었더니, 양조장 주인 지안카를로 비졸(Giancarlo Bisol)은 “여기가 올리브 경작의 북방 한계선”이라며 “17세기부터 키우기 시작한 올리브는 한때 고품질 기름을 생산하기도 했으나 점점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양조장 벨렌다(Bellenda)는 1987년에 세워진 이후 현재 움베르토 코즈모(Umberto Cosmo)가 동생 루이지(Luigi)로부터 기술 자문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다. 루이지는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분교에서 양조학 석사 과정을 이수한 연구파다.코즈모의 아내 친지아(Cinzia)는 2004년부터 알리체(Alice)라는 양조장을 따로 세워 프로세코를 만들고 있다. 비졸처럼 작은 호텔을 지어 관광객을 대접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농가가 자력갱생하기 위한 방편의 이러한 쉴 곳을 운영하는 것을 아그리투리지모(Agriturisimo)라고 한다.벨렌다가 있는 곳은 코넬리아노 마을 북쪽에 있는 비토리오 베네토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모차르트 오페라의 가사를 지은 불세출의 대본 작가 로렌조 다 폰테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이 있다.코넬리아노에는 프로세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콜리 디 코넬리아노로 대표되는 레드 와인도 있다. ‘코넬리아노의 언덕’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마르제미노(Marzemino)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을 혼합해 만드는 이 와인은 모차르트도 반했다고 전해진 고급 와인으로, 검은 포도로 담그기 때문에 진한 색깔을 띠며 과실미가 농후하게 풍기는 특징이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가사 중에 ‘엑설런트한 마르제미노’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로렌조 다 폰테가 이 와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조정용 아트옥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