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아파트촌으로 변한다
난 8월 말 분양한 반도유보라는 분양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109.52㎡가 1순위 청약 결과 36.7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전용면적 85㎡이하 중소형 평형이 모두 청약이 마감됐다. 중대형 평형도 158.43㎡ 2가구, 187.74㎡ 일부만 미달됐다.관련 업계에서는 반도유보라의 분양 성공 요인을 △공장 이전지 내 건설 △서울 서부권에 대한 개발 기대감 △34.4%의 높은 녹지율 △발코니 확장, 상당수 가전제품 무료 제공 △중도금 대출 지원 등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공장 이전지에다 건설한다는 것을 가장 주된 이유로 꼽았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은 옛 대한통운 부지(1만9060㎡)다. 관련 업계에서는 반도유보라와 같은 준공업지역 내 공장 이전지가 앞으로 신흥 유망 주거지로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본다.준공업지역 내 공장 이전지가 인기 있는 이유는 도심지에서 이만한 택지를 확보하기 어렵고 주변 편의 시설이 잘 발달돼 있으며 대규모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지난 7월 구로구 신도림동 옛 대성연탄공장부지에서 분양된 주상복합아파트 대성 디큐브시티도 공장 이전지에 들어선다는 점이 분양 성공의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디큐브시티는 1순위 청약에서 최고 7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전 가구가 순위 내 마감됐다.실제로 이미 상당수 공장 이전지가 대규모 주거타운으로 변신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구로구 신도림동 신도림역 부근. 7~8년 전만 해도 이곳은 낡은 공장과 주택들이 뒤섞여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신도림역 부근 한국타이어 공장 터(2만3610㎡), 대성연탄 공장 부지(3만5228㎡), 기아자동차 출하장 부지(3만852㎡)가 줄줄이 개발되면서 지역이 말 그대로 ‘천지개벽’ 중이다. 기아자동차 출하장 부지에서는 프라임산업이 시행하는 신도림역 테크노마트가 건설 중이고, 한국타이어 공장 부지에는 오피스텔 대우미래사랑시티가 들어선다. 일부 부지는 신도림 4차 대림e-편한세상이 건립돼 입주를 마쳤다.이들 지역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 높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공업 시설이 속속 주거 시설로 바뀔 경우 도시 내 공업 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것은 물론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 조례를 통해 준공업지역 내 공장 이전지 개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왔다. 앞서 언급한 단지들은 대규모 단지로 해당 기업이 건설사나 시행업자에 매각해 개발하는 사례다.시는 2002년 도시계획 조례 개정을 통해 준공업지의 전체 면적 중 공장 비율이 30% 이상인 ‘공업기능 우세지구’에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아예 지을 수 없도록 해 왔다. 또 공장 비율이 10~30%뿐이라도 사업 부지 내의 공장 비율이 50% 이상이면 공동주택 건축이 불허됐다. 그러나 재산권 행사 제한에 따른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지역 슬럼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고 급기야 건교부는 지난 7월 초 ‘공업기능이 상실된 준공업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산업 기능과 조화되는 범위 내에서 공동주택을 허용하도록 하는 준공업지역 조례 준칙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개발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다.건교부 관계자는 “상당수 준공업지역이 슬럼화돼 있다. 공장주 입장에서는 채산성 측면을 고려해 시 외곽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인데 막상 조례가 개발을 막고 있어 공장이 흉물스러운 상태로 방치돼 있는 상황”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건교부는 올 하반기 중 조례준칙을 마련해 각 시도 지역에 시달할 예정이다.각 시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준공업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큰 서울시도 서둘러 조례 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서울시 내 준공업지역은 2773만3058㎡로 △영등포구 문래동, 양평동, 영등포동 △구로구 구로동 신도림동 가산동 △성동구 성수동 등지가 대표적인 곳이다. 참고로 인천시는 준공업지역 면적이 1814만4792㎡, 경기도는 867만346㎡다.서울시는 현재 관련 제도 검토 작업에 착수했으며 내년 상반기 중 준공업지역 종합 관리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올 하반기 중 일부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벌이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시범 사업은 얼마 전 서울시가 조건부 재개발을 허용하기로 한 영등포구 양평동 개발 사업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은 2002년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있기 전에 이미 재개발 기본계획(양평11~13구역)이 잡혀 있었던 곳으로 재개발 추진위까지 구성된 상태였다. 11, 13구역은 삼성건설이, 12구역은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돼 있다. 서울시는 이 지역에 아파트형 공장을 짓는 것을 조건으로 한 재개발을 허용한 상태며 사업은 도시환경정비사업 방식으로 전환돼 시행될 것으로 알려졌다.이 같은 전례를 놓고 볼 때 서울시가 추진할 시범 사업은 양평11~13구역과 같이 이미 재개발 기본계획이 잡힌 상태에서 준공업지역으로 묶여 개발에 제한을 받아왔던 곳이 주요 대상지로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재개발 구역이 서울시 내 7~8군데인 것으로 파악한다.준공업지 개발은 건설 업체 입장으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마땅한 사업지가 없어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어 왔던 업체들의 입장에선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최근 광진구 광장동 화이자 본사 및 공장 부지 입찰에 100여 개가 넘는 건설 업체가 참여했다. 준공업지역은 공장과 주거지역이 혼재돼 있어 아직 주거 타운으로서의 메리트는 크지 않지만 서울시 내 이만한 입지 여건의 부지가 많지 않다는 점 등의 이유로 건설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준공업지역 개발이 완화되면 가장 수혜를 보는 곳은 어딜까. 현재로선 양평·문래동과 성수동 일대가 지리적으로 볼 때 개발 이익이 가장 큰 곳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평·문래동은 인근에 영등포·신길뉴타운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260만㎡ 지역을 벤처밸리로 지정해 둔 상태다. 이 밖에 시는 지난 2005년 문래·양평·영등포동에 지구단위계획을 지정했다. 이를 토대로 시는 청과물시장 이전 지역에 주거상업 복합타운을 건설한다. 대형 공장들이 이전한 문래동 5가 일대 18만여㎡에는 도시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해 신흥 주거지역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경방공장 부지에는 연면적 6만400여㎡, 지상 20층 규모로 호텔 1개 동, 오피스 1개 동, 쇼핑몰 1개 동 등 초대형 복합단지가 들어선다. 주변 방림방적, 대선제분에도 비즈니스 타운과 컨벤션센터 등이 건립될 예정이어서 이 지역은 조만간 영등포의 핵심 지역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높다.예스하우스 전영진 대표는 “양평·문래동은 서부간선도로와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기가 편리하고 목동, 영등포, 여의도 등지와도 가깝다. 또 지하철 2, 5호선 등의 대중교통 시설도 잘 발달돼 있어 개발 전망을 밝게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2호선 뚝섬역-성수역-건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성수동 준공업지역도 인근에 서울 숲, 뚝섬경마장 부지 개발 등의 호재가 있어 투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준공업지역이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업 시설의 역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지역을 주거타운으로 변신시키느냐의 문제다. 서울시는 양평11~13구역에 아파트형 공장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인데 이는 ‘전면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만약 재개발 사업 조건으로 아파트형 공장 건립을 의무화하면 사업성이 크게 떨어져 사업 추진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주거환경연구원 김태섭 연구위원은 “공업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경공업 위주의 공업 시설을 첨단 산업으로 바꿔야 한다”며 “재개발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저소득층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IT 산업을 유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realsong@moneyro.com영등포 경방부지 개발프로젝트©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