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멋 강과 컬럼비아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포틀랜드는 예로부터 목재와 농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포틀랜드는 전형적인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여 일교차가 크지 않고 태평양 연안으로부터 사시사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러한 기후는 나무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포틀랜드가 속해 있는 오리건 주는 연간 목재 생산량(침엽수림 기준)이 1400만㎡로 미국 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후 여건 때문에 포틀랜드에는 일찍부터 목조 건축 문화가 꽃피었으며 현재 지역 내 지어지는 주택 중 90% 이상이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해마다 7월이면 미국 최대 주택박람회 ‘스트리트 오브 드림하우스’를 보기 위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미국 전역에서 포틀랜드로 몰려든다. 1987년 목조 건축의 본고장 포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이 행사를 미 주택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최신 주택 건축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행사는 미국 내 최고의 건축가들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집을 지으며 여기서 선보인 설계, 인테리어 트렌드는 4~5년 후 미 중·상류층의 주거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권위를 자랑한다.부스에서 상담이 이뤄지는 우리나라 주택박람회와는 달리 이 행사는 실제로 5~6채의 집을 짓고 내부 인테리어를 최고급으로 꾸며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집마다 누가 건축했고, 인테리어는 누가 담당했으며 어떤 자재가 사용됐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준다. 즉석에서 건축가와 소비자 간의 만남의 장도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이렇게 지어진 집들은 행사 기간에 모두 일반에 매각되기 때문에 업체로선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견본주택을 따로 지어 분양가에 전가하는 우리나라 분양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1995년 전시회에 나온 집들은 현관 바로 옆에 거실이 있고 식당은 부엌과 연결돼 있으며 거실과 가족실이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2000년 들어서는 미국 서부의 주택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주택의 규모가 커지고 각 공간의 기능별 분화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특히 주택의 중심인 마스터 존(거실)의 면적이 줄어들고 부부 전용과 가족 휴식 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점입니다.”(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올해 출품된 집들은 지난해보다 주택의 규모가 다소 줄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미국 주택 경기가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값도 지난해까지는 평균 30만 달러 선에서 매매됐지만 올해 출품된 집들은 15만~20만 달러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교민은 “미 서부 집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0%씩 떨어졌다”면서 “그나마 지역 경기가 견실한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한 행사 관계자는 “주택 경기가 침체돼 있다 보니 내부 인테리어도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두르러진다”며 “뒷마당을 넓게 조성해 바비큐 파티 공간과 목욕 시설을 갖추는 것이 요즘 유행”이라고 전했다.그러나 전반적인 가격 하락 속에서도 주택 공급은 계속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대도시와 외곽 지역 간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고유가에 대한 부담감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도시 다운타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사람들에겐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기름 값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신혼부부, 서민층일수록 더하다. 기름 값에 부담을 느낀 서민들이 대도시 인근으로 몰려들면서 대도시의 집값은 아직까지 보합 내지는 약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대도시 내 주택 공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미국이 제아무리 땅덩어리가 넓더라도 증가하는 수요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더군다나 이들이 찾는 지역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30분 이내 지역이다. 상당수 지역에서 단독을 허물고 공동주택인 타운하우스가 대거 들어서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최근 6년간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타운하우스 허가 건수는 연평균 1만4000건으로 같은 기간 단독주택 허가 건수보다 3배나 높게 나타났다. 단독주택이 전체 주택의 98%를 차지했던 시애틀도 3년 전부터 수요가 늘어나면서 도시 곳곳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 지금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선으로 높아졌다.이 같은 이유로 최근 미국 건축 업계에 등장한 개념이 바로 인필 하우징(Infill Housing)이다. 그동안 미국에선 낡은 단독주택을 개발할 때는 주변 자투리땅까지 한꺼번에 매입해 대대적인 개발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인필 하우징은 단독주택과 단독주택 사이의 자투리땅을 3~4층으로 개발해 토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포인트다. 이렇게 되면 토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 외에 소규모 개발에 따른 건축비 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다.한정된 지역을 개발해 집을 짓기 때문에 전반적인 주택의 크기는 소형화 추세를 걷고 있다. 그러면서도 건축 자재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해 쾌적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운하우스는 한정된 녹지 공간을 여러 가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을 여러 채 지어 각 가구별 전용 공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는 일부 면적만 공동주택으로 짓고 공유 녹지 공간을 최대로 늘려 쾌적성을 도모하는 것이 타운하우스의 본래 취지다. 이 때문에 자재 하나도 주위 환경에 거슬리는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전체적인 디자인 경향은 전통적인 것보다는 현대미를 강조하는 추세다. 일부 주택은 동양의 선(禪)사상을 설계에 반영해 대나무 자재를 사용한다든지, 벽 한쪽에 간이 폭포를 조성하는 등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집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실내 공간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급적 벽체를 작게 설치해 탁 트인 느낌을 더해준다. 통유리 창문이 곳곳에 설치되는 것도 실내를 넓게 보이기 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지붕 곳곳을 유리로 창을 내 자연 채광이 실내에 그대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하고 전기료 절감 효과도 거둔다. 이러한 설계 경향은 올해 스트리트 오브 드림하우스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이 밖에 맞벌이 등 과거와는 달라진 생활 패턴을 설계에 반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예컨대 사무실 용도로 전환할 수 있게 그동안 주차장으로 쓰였던 1층은 다목적실로 구성해 실용성을 크게 높였다.외관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전통적인 타운하우스가 단독주택 2채를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붙이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2층짜리 2채를 붙이되 3층은 한 가구가 쓰는 ‘타운하우스+아파트’가 결합된 퓨전형 상품도 등장했다.미국 포틀랜드 북서부에 있는 포레스트 하이츠는 1990년대부터 복합 주택 단지로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고급 주택과 서민형 타운하우스 1800여 가구가 적절하게 혼합된 포틀랜드의 신흥 주거 지역이다. 2644만㎡의 녹지가 어우러진 이곳은 개발 전까지만 해도 포틀랜드 시민들의 야외 피크닉 장소로 유명했었다. 미국의 일반적인 주택 개발지가 그렇듯 이곳을 방문하면 미국 타운하우스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산을 끼고 아래서부터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신 타운하우스는 산 위쪽으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요즘 ‘원 레벨 럭셔리(One level luxury)’라는 간판을 단 주택을 많이 보게 된다. 3가구를 한곳에 모은 이 타운하우스는 각 가구가 한 개 층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경사면을 최대한 활용했고 각 가구별 출입구를 별도로 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했다.시애틀·포틀랜드=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