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시장은 비이성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가 그랬고 1920년대의 미국과 1980년대 일본의 주식시장이 그랬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는 나스닥과 코스닥의 폭등, 벤처기업의 광풍 또한 시장의 비이성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넘치는 유동성과 낮은 금리,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흥분과 광기가 이런 현상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코스피지수가 2000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최근 몇 달 동안 우리 시장 또한 그랬다. 1300~140 0대에서 오랫동안 횡보하던 코스피지수는 단숨에 2000을 넘었다. 일종의 ‘오버슈팅’이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이 시장에도 작용하고 있었다.그러던 시장이 7월 말 이후 급변해 버리고 말았다. 사상 최대의 낙폭으로 주가가 떨어졌고 ‘검은 금요일’이 이어졌다. 휴일 전날이면 어김없이 주가가 떨어지는 약세장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났고 하루를 쉬면 다음 날은 두 배로 빠졌다. 지수가 2000일 때에도 주식을 사던 이들이 정작 주가가 떨어지자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시장엔 ‘팔자’ 세력만 기승을 부렸다. 이런 현상은 ‘가치의 함정’처럼 보이기도 했다.무엇보다 외부 여건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은커녕 오히려 확산돼 BNP파리바은행은 일시적으로 펀드의 환매 중단을 선언했으며 골드만삭스 등 유수한 금융사들도 거액의 손실을 봤음이 속속 드러났다. 처음에는 미국 내 전체 모기지론의 5%에 불과하다던 서브프라임 론의 비중이 20%를 넘는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서브프라임을 이용한 파생상품의 규모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되면서 제2의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에 이어 향후 6개월 이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유동성과 과다한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그동안의 활황 장세는 어차피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했었다는 것이다. 이번 조정이 끝나면 시장이 훨씬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가능하다. 과거 1970년대의 오일 쇼크, 2001년의 9·11 테러 때도 그랬듯이 당장은 견디기 힘들겠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셸리의 시에서처럼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머지않은 법이다.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할 사항이 있다. 우리 경제의 회복 여부도 따져봐야 하고 연기금의 확대 등 시장 상황의 변화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개별성의 부각이라는 측면에서 수익성과 성장성 등 기업 분석은 특히 중요하다. 기업 가치가 ‘주인’이라면 주가는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라는 헝가리의 주식 투자 대가 안드레 코스톨라니의 ‘강아지 이론’은 이런 관점에서 시사적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결국 강아지(주가)는 주인(기업 가치)과 함께 가게 돼 있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 전체의 회복과 대형(또는 초우량) 상장 기업들의 성과를 구분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대기업들이, 글로벌 마켓에서는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1등 기업들의 지배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다만, 당분간은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자. 지금은 인내의 시간이다.김상윤하나은행 웰스 매니지먼트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