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 <천 개의 파랑>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을 보면 대부분 암울한 시대상을 그린다.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미는 찾아볼 수 없다. 2035년을 배경으로 하는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이와 달리 낙관적인 시점을 제시한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늘 상상하고, 늘 무언가를 쓴다는 천선란 작가. 가족의 이름 한 글자씩을 배치한 필명을 사용하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즐겨 썼다고 한다.2019년 3월 웹소설 플랫폼 ‘브릿G’에 연재한 동명의 소설이 9월에 <무너진 다리>로 출간됐다. 등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20년 제4회 한국 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았다고 하니 그녀의 미래가 기대된다.
‘휴머노이드’라는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녀. 황폐해진 지구에 사람을 돕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낸다. 과거부터 인공지능(AI) 관련 영화는 지구에 사람이 오히려 해를 끼친다며 인류를 파괴하는 내용이 많았다. 가장 유명한 <터미네이터> 시리즈, 로봇 제3원칙의 문제를 지적한 <아이, 로봇>도. 자연은 순리대로 생성과 소멸을 지속하는데 사람의 이기심이 계산에 실수가 없는 로봇들에게도 위협으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이제 영화에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 영화
인공지능의 탄생은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함도 있지만 ‘효율성’과 ‘안정성’을 우선순위로 꼽지 않을까. 소설 <천 개의 파랑>은 효율에 의해 탄생한 휴머노이드 ‘콜리’의 비효율적인 일생을 담는다. 몸이 브로콜리 색을 닮은 콜리는 기수에 최적화된 150cm에 40kg의 몸을 지녔다. 로봇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로 천 개의 단어가 내장된 칩을 부여받은 콜리는 ‘구름이 선명한 날’을 좋아했다. (21쪽) 콜리의 파트너 ‘투데이’는 흑마다. 콜리와 투데이의 환상적 호흡으로 몸값을 올리던 중 투데이는 연골이 닳아 안락사 위기에 처하게 되고, 콜리 역시 폐기를 기다리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인 연재는 로봇 베티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빼앗겼다. 우연히 언니 은혜가 일하는 마방에 들렀다가 “경기 도중에 떨어졌는데 바로 뒤에 오던 선수에게 밟혔어요. 제 실수죠. 딴 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65쪽)라는 말을 듣곤, 급여와 퇴직금으로 받은 80만 원을 들여 콜리를 집에 데려오는 불법을 감행한다. 사실 콜리는 낙마 중이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낙마한다. 달리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파트너 투데이가 더 오래, 진짜 초원을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렇다면 콜리는 어떻게 될까. 제3의 인생을 기대할 수 있긴 할까.
콜리의 탄생은 오로지 인간의 쾌락과 안전성 때문이었다. 내가 경마를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한 번 낙마한 선수는 생활 자체가 불가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 이어진다. 기수를 보호하면서 경주마들의 역량을 늘릴 수 있는 최적화돼 있는 시스템이 로봇의 탄생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로봇의 활용도는 많다. 사람들이 하기 꺼리는 일이나 위험한 일을 대신할 수도 있다. 연재의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 아닐까. 미래에는 소방 시스템에도 인공지능이 도입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사람이 투입될 것이다. 사람 대신 로봇의 폐기와 수리가 이루어지겠지만, 사람이 다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효율성’ 때문이지 않을까.
“남자애들이 베티만 보면 시비를 걸어. 발차기 연습을 한다니까. 그거 때문에 수리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몰라. 수리비 엄청 깨졌어.”
“그래도 인간보다 싸겠죠.”(317쪽)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필요한 것들이 있다. 돈도 그중 하나다. 물가 상승률에 비해 급여는 늘 제자리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살 만하다.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주 콜센터 봇을 상상한다. 콜센터 직원은 매달 직무 시험을 봐야 하고, 친절도를 감시당하며, 나와 통화한 사람에게 친절 점수를 요구해야 한다. 기계의 도입은 이런 불필요한 작업들을 제거해주니 기업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리할까. 지금과 다른 종류의 질병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효율’ 측면에서 보면 인간과 기업 양쪽 모두 윈윈 전략일지도 모른다.
비록 비효율적일지라도
사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쇼핑몰은 효율성의 집합체다. 사람들이 쇼핑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온라인으로 구경을 한다. 그리고 ‘배송 예정일‘에 맞춰 물건을 받는다. 일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고객센터’를 찾는다. 그리곤 ‘예정일’에 맞지 않았다며 고함을 지르거나 억지를 부린다. ‘배송 예정일’ 서비스가 생긴 후로 쇼핑몰 고객센터는 배송 지연과의 전쟁이 됐다. “주문 당시에 O일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할 때마다 “판매처와 택배사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대답은 하지만 늘 험한 소리가 돌아온다. 한번은 ‘예정일이 80% 이상이었다. “그럼 그 날에 도착한다는 의미 아니냐”라는 질문에 “20%의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했다가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은 듯했다(내가 콜센터 알바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저는 투데이가 행복한 순간을 알아요. 투데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셔서 감사해요.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243쪽)
이기심이 느껴지지 않는 콜리의 말이다. 기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기 때문에 안락사는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평균적으로 연휴 전후로 유기 동물 수가 급증한다고 한다. 이제는 동물을 유기했을 때 주인에게 300만 원의 벌금이 부여된다고 하니 유기 동물 수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하루에도 몇 십 마리의 동물이 안락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을 지닐 수 있다. 그런 것들이 ‘효율’에 기대다 보니, 개인의 존재를 효율로만 판단하게 되나 보다. 이럴 땐 콜리 같은 로봇이 있으면 어떨까. 하늘을 보고 ‘찬란하다’라고 내뱉는다거나 엄마의 얼굴을 보고 ‘피곤함’을 지적한다. 아무도 몰라주는 엄마의 상태를 콜리가 알아준다며 좋아하는 엄마 보경. 휴머노이드가 인간보다 더 매력적인 건 투데이가 더 빠르게 달리게 하기 위해 채찍을 주어졌지만 아프다는 걸 감지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함에도 ‘행복’이 어떤 것이냐 묻는 콜리. 휴머노이드 콜리가 매력적인 건 자신이 폐기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안락사 위기의 ‘투데이’가 다시 달릴 수 있도록,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면, 각자가 콜리처럼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인 것일지도 모른다. 콜리의 행복을 위해 연재가, 연재와 함께 로봇대회에 나갔던 지수가,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투데이를 돌본 은혜가 새로운 형태의 다리를 얻게 된다는 것. 사람은 효율이 아니라 비효율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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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드라마로 약간의 막장 냄새가 물씬 풍긴다. 최근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드라마로는 이것을 꼽게 되지 않을까. 만능 로봇과 함께 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는 드라마로, 시즌2가 기다려진다. 아리사를 맡은 배우 폴리나 안드리바. 마지막 쿠키영상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진짜 로봇인 줄 알았다.
글 윤서윤 독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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