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치매를 앓고 있어도 유언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언의 유효를 다투는 분쟁은 늘 유언자의 사후에 이루어진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치매에 걸려 작성한 유언도 유효할까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고, 민법은 유언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유언의 방식과 효력을 정하고 있다. 이에 유언자는 법정상속분과 달리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 전부를 상속하도록 정할 수 있다. 자필증서로 유언을 하는 경우 유언자가 유언서를 작성하면 유언이 성립되지만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 발생한다. 따라서 이미 작성한 유언을 철회할 수도 있고, 다른 내용과 다른 방식, 즉 자필증서 유언서를 작성했다가 다른 내용을 공정증서 방식으로 유언할 수도 있다.

이런 유언의 자유는 유언자가 유언의 법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그 효과를 원하는 정신적 능력, 즉 유언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판단할 의사능력인 유언능력을 전제로 한다. 민법은 만 17세가 되면 유언을 유효하게 할 수 있다고 정했다. 통상 성년에 이르러야 법률행위를 유효하게 할 수 있는데 유언은 그 예외인 것이다.

본인의 재산에 대한 사후 처분에 관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기 위해서다. 같은 의미에서 제한능력자 제도의 적용도 일정 부분 제한한다. 민법 제1062조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서 제5조, 제10조, 제13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제1063조는 피성년후견인은 의사능력이 회복된 때에만 유언을 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의사가 심신 회복 상태임을 유언서에 부기하고 서명 날인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법 제5조는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법률행위를 할 수 있지만, 만 17세가 되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도 유효한 유언을 할 수 있고, 그 경우에 법정대리인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의 유언을 취소할 수 없다.

민법 제10조는 피성년후견인의 법률행위는 취소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지만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사능력이 회복된 피성년후견인은 의사가 심신 회복 상태임을 유언서에 부기하고 서명 날인한 경우 유효한 유언을 할 수 있다. 민법 제13조는 가정법원이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법률행위로 정한 법률행위를 피한정후견인이 한정후견인의 동의 없이 한정후견인은 그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지만, 민법 제1062조가 명시적으로 민법 제13조의 적용을 배제해 피한정후견인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유효한 유언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민법의 태도에 비추어 피성년후견인이 아닌 17세 이상의 유언자가 유언을 한 경우 유언자의 의사능력은 추정되고 유언 당시 유언능력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런 점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후대의 유언 분쟁 막으려면 지금까지의 내용은 모두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이어서 유언능력을 둘러싼 분쟁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령의 노인이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유언자가 한 유언에 대해 상속인이 유언자에게 유언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유언의 무효를 주장하는 분쟁은 생각 외로 많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조현병으로 자신의 집에 망명자들과 집시들이 살면서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환각을 가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재산관계와 유증의 의미를 알면서 조카에게 유증을 했다면 그에게 유언능력이 있다고 법원은 인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2000년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했던 유언자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6번 공정증서 방식으로 유언을 했는데 상속인 중 1인이 여섯 번째 유언이 유언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행해졌고, 공정증서 방식의 절차도 위배됐다고 주장하면서 제기한 소송이 무려 9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효가 아니라고 종결된 사례가 있다.

유언자가 사망한 후 9년이 지나도록 치매를 앓던 유언자의 유언능력의 유무를 둘러싸고 법적 공방을 한 것은 그 판단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유언은 법률행위이지만 그 내용의 이해관계인이 본인이 아닌 (대부분) 법정상속인이고, 유언자의 최종 의사는 존중돼야 하지만 본인의 보호의 필요성은 적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재산상 법률행위와 다르다(김현진의 <치매와 유언능력 그리고 구수요건, 민사판례연구> 참고).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본인 소유의 재산을 사후에 가장 아끼는 가족에게 유증하는 것과 현재 시점에 아무런 교유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헐값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평가를 달리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진행했던 사건에서도 담당재판부는 “유언능력이란 유언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의사식별능력으로서 그 성격 등에 비추어 재산적 행위에 요구되는 정도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유언능력의 유무는 사실 인정의 문제로서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그에 따른 법률효과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지 즉, 유언자의 유언 당시의 판단능력, 질병의 상태, 유언의 내용, 유언 작성 당시의 상황, 유언에 대한 종래의 의향, 수증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위 사건에서 유언자는 각 수증자들에게 비율로 유증하는 내용의 유언을 하면서 상속비율을 분수로 표현했는데 유언 무렵 유언자가 분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었다고 추정됐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 반영돼 유언이 무효라는 판단을 받은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원칙적으로는 고령에 이르러 치매를 앓고 있어도 유언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유언의 유효를 다투는 분쟁은 유언자의 사후에 이루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유언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유언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의사 진단서를 받아두는 것도 후대의 분쟁을 예방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