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고미술품 수집가·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알아주는 고미술품 수집가다. 수년 전 가야 토기잔에 매료돼 손잡이가 달린 토기잔, 떡살, 작은 고연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수만 해도 각각 수백여 점을 훌쩍 넘겼다. 박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2층 복도는 배가 빵빵한 토기로 이미 가득해 수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The Collector] "고미술품 수집은 양이 아니라 깊이, 안목 키웠죠"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토기잔을 만나기 전에는 책, 작은 문구류 등을 수집했다. 그에겐 일종의 ‘수집벽’이 있다는 것이다. 고미술품 수집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교수실 문을 열자 눈 앞에 천장까지 닿은 높은 서가가 기자를 압도했다. 교수실은 서가로 미로를 이루었고 책으로 둘러싸인 좁은 통로를 지나야 박 교수의 응접실을 만날 수 있었다.

“제가 미술평론을 하니까 그것을 위한 자료들을 모은 책이에요. 이쪽은 미술사 책, 그 뒤로는 미학책, 동양미술, 서양미술, 미술역사 등 서가별로 분류돼 있죠. 또 평론가이면서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공부를 위한 책들도 있죠.”

중년 남성이라면 시시할 법한 작은 문구류도 그에겐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는 물건이었다. 필통과 샤프, 여러 가지 모양의 연필깎이, 지우개와 지우개똥을 치우는 지우개똥 청소기 등. 그는 그런 자신의 수집품들에 대해 <수집미학>이라는 책을 엮어 내기도 했다. 사물에 애정을 부여하고 의미를 담아 글로 풀어낸 것이다.

“전 이런 것들이 왜 이렇게 좋았을까요. 하도 많아서 다 쓰고 죽어야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사용하고 있죠.”
가야시대 손잡이 잔.
가야시대 손잡이 잔.
삼국시대 토기잔들.
삼국시대 토기잔들.
삼국시대 토기들.
삼국시대 토기들.
이런 수집광인 그가 토기잔을 만난 것은 8년 전 지방 출장에서였다. 우연히 한 화가의 작업실에서 삼국시대 토기를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소박함과 단순함 속에 깃든 조형 감각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수집에 나서기 시작했다. 가격도 수십만 원대부터 100만 원대로 손에 닿을 법했다.

“제가 조선 백자나 고려 청자를 모으긴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값을 주고서도 못사는 것들이고요. 가야토기잔은 수십만 원대이니 수집 한 번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죠.”

토기잔의 아름다움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박 교수는 난처해 했다. 천편일률적인 게 아닌 소박한 데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 제각기 다른 만듦새에서 나오는 개성 등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기잔들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져요. 그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요. 이 토기를 찬찬히 보세요. 여기 이 빗살무늬가 전 그렇게 좋더라고요.”

소박한 토기잔을 두른 살아 있는 직선 무늬, 손잡이의 모양, 새를 얹은 모양, 투박함 속에 담긴 조형미 등 천년도 넘은 토기잔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가 모으는 가야시대 토기는 그중에서도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다.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찻잔은 대부분 손잡이가 없다. 하지만 4~5세기에만 반짝 손잡이가 달린 토기들이 발견된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머그컵의 모양이다. 이것들은 실제 사용했다기보다는 죽은 이를 위한 제의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손잡이 위에 붙어 있는 새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연결하는 영매를 뜻하고, 고사리는 생명력과 생장력을 상징한다. 뿔잔의 뿔 역시 생명력을 상징한다.

1500년 전의 물건, 그것도 깨지기 쉬운 자기가 손상 없이 남아 있는 것은 당시 무덤의 형태 때문이었다. 4~5세기 무덤 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이었다. 무덤 자리를 판 후 시신을 담은 관과 껴묻거리를 넣은 후 다시 나무 판으로 덮고 돌무지로 막았다. 그 덕에 흙더미로부터 토기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은 이후 사라져 그 후대의 토기는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게 된다.
조선시대 종.
조선시대 종.
조선시대 목어.
조선시대 목어.
박 교수가 수집하는 것은 토기잔 외에도 떡살과 당시 사람들이 썼던 연장들이다. 떡살 중에서도 장수를 상징하는 직선 무늬가 있는 것을 모은다. 옛 사람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작은 연장들을 볼 때에도 박 교수의 가슴이 뛴다.

“송곳이나 가내수공업에 사용된 연장들은 노동의 흔적들이 담겨 있어요. 이러한 연장에는 눈물겨운 맛이 있어요. 고미술품의 조형미는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절제된 미감이 있습니다. 주어진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번잡한 장식과 의도적 치장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것들 중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재떨이나 필통 등의 민속품들도 많다. 고이 모셔만 두는 게 아닌 실제로 애정을 주고 사용한다. 최근에는 장한평 고미술품 거리에서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톱을 사왔다. 그의 수집 목록에는 낄 수 없는 것들이지만 사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눈에 밟힌다고 했다.
[The Collector] "고미술품 수집은 양이 아니라 깊이, 안목 키웠죠"
“자꾸 이런 것들을 모으면 제 수집품이 난잡해져서 안 사야지 하는데 또 그게 안 되네요. 이런 것들을 발견했을 때 주는 즐거움이 또 남다르거든요.”

박 교수는 수집품을 조금 더 추려야 한다며 되뇌었다. 연구실 앞을 가득 메울 만큼 좋아했던 옹기, 독특한 모양의 뿔잔 등 수집품이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그의 진짜 수집품은 가야시대 손잡이 달린 토기잔, 떡살, 작은 연장들이라고 했다.

“수집이라는 것은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횡적이 아닌 종적이 돼야 하는 거죠. 얼마를 모았느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똘똘한 10개만 모았어도 잘한 수집이라고 봐야 하는 겁니다.”

주로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나 황학동, 장한평 고미술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그는 고미술품을 찾아보는 것이 미술 자체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미술평론가인 그가 고미술품을 통해 안목을 높인다는 것. 마치 저울의 영점을 조율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에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는 것 같은 의식이 아닐까.

“작품의 질을 판단해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조형미,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판단을 하는 데에는 고미술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미술이 안목을 기르는 가장 좋은 교재라고 할까요?”

실제로 우리 근현대기 많은 작가의 공통 과제가 갑자기 밀려 들어온 서구의 현대미술 속에서 한국적 현대미술을 찾는 것이었다. 김환기, 도상봉, 윤형근, 이우환, 서세옥, 박노수 등 우리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분들이 골동에 공통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고미술품을 보는 안목은 어디에서 길러야 할까. 박 교수는 대번에 박물관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태국 불상과 백윤기의 조각, 인도 조각.
태국 불상과 백윤기의 조각, 인도 조각.
아프리카 가면.
아프리카 가면.
아프리카 조각상.
아프리카 조각상.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호림미술관 등 박물관에 고미술의 정수라는 것들이 모여 있어요. 지인 중에 국립중앙박물관만 1000번 다녀온 분이 있어요. 조선백자를 1000번 이상 보다 보니 일반 갤러리에서 마주한 백자가 대번에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해요.”

똑같아 보이는 백자도 안목을 높이면 달리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이야기를 하며 미술품 애호가들이 더욱 안목을 높이고 공부해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자신은 공부하지 않은 채 유명 작가의 작품, 이름만 들어본 작품만 찾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도 어느 시기 작품인지가 중요해요. 대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모든 시기의 작품에 다 좋은 평가를 내릴 수는 없거든요. 이름난 작가라고 무턱대고 구입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죠.”

그는 조형적으로 뛰어난 것들을 찾으면서도 재테크 가치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향후 미술품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저는 모으는 것이 그저 좋을 뿐이지 거창한 의미나 계획은 두지 않아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저만 조용히 즐기고 싶어요. 다만 모은 것들이 그저 방 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게 아까우니 미술품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책은 쓸 예정이에요. 나중에 때가 되면 박물관이나 재단에 기증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역시 박물관을 만들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연구실을 갤러리 삼아 고미술품을 그저 감상하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그. 가치 있는 미술품을 발굴하면서도 그 가치를 따지지 않는 것에서 진정한 수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글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