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리는 시장이다. 어떤 주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등락을 반복하고, 어떤 주식은 주구장창 떨어지기만 한다. 최악의 경우 투자자산을 ‘몰빵’한 주식이 상장 폐지를 당하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주식시장이 호황이라고 해서 모든 투자자들이 벌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국내 주식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호황 국면을 이어갔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직후 1500포인트를 밑돌았던 코스피 지수는 불과 1년여 만에 2배를 훌쩍 넘어 3300포인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400포인트를 위협받던 코스닥 지수 역시 100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1년여 만에 100%를 넘어서는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이 개인투자자 93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 투자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평균수익률이 5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어느 때보다 주식시장이 호황을 나타내면서 여기저기서 수익률 수백 퍼센트의 ‘주식 성공담’이 떠돌던 것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식회전율이다. 주식회전율(매매 빈도)이 300% 이상인 투자자(21만여 명)의 경우 1년 수익률이 17%, 6개월 수익률은 0.7%에 불과했다. 주식회전율이 50% 미만(33만여 명)인 투자자는 같은 기간 각각 47.8%, 15.6% 수익률을 달성했다.
그나마 이 같은 수익률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불어난 유동성 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동학개미’, ‘서학개미’라는 신조어 역시 주식시장으로의 대규모 자금 유입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직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시장은 기관과 외국인 주도로 주가 흐름이 결정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주식시장은 그래서, 말 그대로 개미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워런 버핏’의 투자는 어떻게 다를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십 배, 심지어는 수백, 수천 배의 투자 수익을 달성해 온 주식 대가들의 투자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바로 ‘잃지 않는 투자’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적인 투자 대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일 것이다.
최근 버핏 회장은 미국과 중국의 전기자동차 대표 기업에 투자해 300%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찬사와 함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흔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의 투자 트렌드를 꿰뚫는 통찰력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워런 버핏이 투자의 대가로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히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버핏 회장이 추구해 온 투자 철학은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가치투자’다. 그의 ‘위대한 동업자’인 찰리 멍거 역시 철저한 분석과 함께 인내와 용기를 갖고 때를 기다린다면 가치투자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단언한다.
가치투자는 “단기적인 주가 흐름은 무시하고, 경기 전망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주식이 아닌 기업을 매수하듯 훌륭한 종목을 싸게 사서 장기간 보유하는 방식이다.
사실 기업의 가치, 즉 내재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식시장은 물론 특정 종목의 내재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들이 개발돼 활발히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투자 원칙을 확고히 지켜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버핏 회장 역시 자신의 투자 철학을 정립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대 때 처음으로 시작한 투자는 주당 38달러에 산 3주가 전부였는데, 급등락에 따른 초조함으로 5%대 수익률을 내는 데 그쳤다. 이후 해당 주식은 주당 200달러까지 상승했는데, 투자에 있어 ‘장기적 안목’의 필요성을 깨달은 첫 경험이었던 셈이다.
“가치를 무시한 투자는 ‘투기’”
버핏 회장은 자신의 투자 원칙에 대해 2명의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정립됐다고 소개해 왔다. 첫째 스승은 미국 월스트리트로부터 ‘시대를 초월한 가장 위대한 투자자’로 추앙받는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그레이엄은 증권 분석서의 시초 격인 <증권분석>과 대중적인 투자 지침서인 <현명한 투자자>, 그리고 재무 분석의 기초를 다진 <재무제표의 해석> 등을 남기며, 증권 분석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의 주가수익비율(PER), 장부 가치, 부채 비율, 순이익 성장률 등은 모두 그레이엄이 처음으로 일반화한 개념이다.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 역시 ‘가치투자’다. 버핏이 “나의 85%는 그레이엄”이라고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재무제표조차 없었던 젊은 시절, 저평가된 ‘노던 파이프라인’ 주식을 매입해 경영진과의 의결권 대결을 벌인 일화는 그레이엄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만 해도 월스트리트를 풍미했던 주식투자 이론은 ‘다우 이론’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분석이었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이나 자산 가치와 별개로 과거의 주가 흐름에 기초해 매매 시점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반면 그레이엄은, 주식은 곧 ‘기업의 소유권’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내재가치를 무시한 투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매일 매일 급변하는 주가는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고 믿었다. 같은 이유로 그레이엄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 원금의 안정성과 적절한 수익성을 기대하는 행위를 ‘투자’로,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행위를 ‘투기’로 규정했다.
특히 그레이엄의 핵심 투자 원칙인 ‘분산투자’, ‘우량주 투자’, ‘배당 기업 투자’ 등은 현재의 가치투자 기법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철저한 분석으로 ‘위대한 기업’에 투자”
장기적 안목을 가르친 스승이 그레이엄이었다면, 성장 잠재력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필요성을 가르친 스승은 필립 피셔라고 버핏 회장은 회고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피셔의 투자 철학이 그레이엄의 ‘가치투자’와는 다소 상충돼 보인다는 점이다. 피셔는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기업, 즉 ‘성장주 투자’ 이론의 개척자로 분류되고 있다. 기업의 내재가치에 집중한 그레이엄과 달리, 비싼 주식이라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면 높은 수익률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무제표의 중요성을 역설한 가치투자 이론과 달리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능력과 경쟁력 우위 요소 등을 투자 판단의 핵심 요소로 내세우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분산투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자산이 잘 모르는 여러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은 오히려 손실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결국 자신이 잘 아는 소수의 경쟁력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비결이라는 게 피셔의 투자 원칙인 셈이다.
언뜻 보면 버핏 회장의 두 스승은 상반된 투자 원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치투자와 성장주 투자는 ‘장기 투자’라는 대원칙과 함께 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투자 원칙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의 성장주와 가치주 투자를 둘러싼 논쟁 역시 시장 트렌드와 투자 스타일에 관한 문제일 뿐 성공하는 투자는 ‘철저한 분석’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다는 명제에는 변함이 없다.
“내재가치 이하의 주식을 매수하되, 무조건 저가의 주식보다 해당 업종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고 평판이 좋은 소수의 기업에 투자한다”는 버핏 회장의 투자 스타일 역시 두 스승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버핏과 두 스승의 투자 철학은 다른 투자 대가들의 원칙과도 궤를 같이 한다. 피터 린치는 이런 원칙을 지키는 방법론으로 ‘2분 독백’을 제시하고 있다. 매수할 주식을 정했다면 첫째, 해당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상기하고, 둘째로 해당 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 무엇인지 따져본다. 셋째로 해당 주식의 부정적 요인을 예측해봄으로써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악재를 가늠해보는 방식이다. 린치는 2분 독백이 충동적이고 비합리적 투자를 억제해주는 완충재 역할을 해준다고 소개한다.
“군중심리는 ‘경계’…쉬는 것도 성공 투자”
물론 좋은 주식을 고르는 눈을 가졌다고 해서 주식투자에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의 전반적 흐름을 읽는 통찰력 역시 성공 투자의 핵심 조건이다.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탁월한 투자자이자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존 템플턴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군중심리’였다. 주식시장의 거품과 패닉 모두 군중심리의 소산이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상화의 흐름을 찾아간다는 게 템플턴의 지론이었다.
지난 1929년 이후 10여 년의 대공황 직후 1달러에 거래되는 종목을 대거 사들여 4년 만에 4배 수익을 올린 일화는 주식투자는 ‘군중심리와의 싸움’이라는 템플턴의 투자 원칙의 유효성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그는 “모두가 절망에 빠져 주식을 팔 때 매입하고 남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들일 때 파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결국 기대 이상의 수익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반대로 주식시장이 과열 국면을 지날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월스트리트에서 소형주 투자의 개척자로 꼽히는 랠프 웬저는 주식투자의 성공법은 아주 간단하다고 얘기한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게 주식시장의 현실이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지표가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주식시장에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지고, 비관론이 득세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웬저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을 때 주식을 사고, 낮을 때는 팔 것을 조언한다. 결국 주식시장이 지나친 과열 국면이라고 판단될 경우 잠시 관망세를 유지해야 ‘잃지 않는’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파는 것도 투자다”라는 말의 중요성은 공매도 투자 기법으로 유명세를 탄 윌리엄 오닐의 투자 원칙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닐은 성공 투자의 비밀은 자신의 투자가 항상 적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신 역시 10개 종목에 투자하면 6~7개 종목 정도에서만 차익을 얻는데, 문제는 손실을 봤을 때 얼마나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느냐라고 강조한다. 오닐도 ‘–7%’를 허용 가능 손실로 보고 주저 없이 매도한다고 자신의 투자 원칙을 소개한 바 있다. 손실이 커지도록 놓아두는 것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며, 그것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몰고 가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앤서니 볼턴 역시 ‘가격’이 주는 심리적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최초의 투자 유인보다 더 큰 악재가 발생한 경우 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잃지 않는 투자의 핵심이다. “허황된 욕심은 버리고 현실적 수익 추구”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투자 대가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수익률과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일군 인물들이 많다. 지금의 투자자들이 대가들의 투자 철학과 투자 원칙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혹시나’ 하는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투자 대가가 있다. 바로 인덱스펀드의 창시자인 존 보글 전 뱅가드그룹 회장이다. 보글은 자신이 운영하는 펀드 회사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출장을 떠날 때에도 1등석을 타지 않으며, 시내에서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구두쇠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76년 보글이 출범시킨 인덱스펀드는 보글의 이 같은 성향이 고스란히 녹아든 투자 상품이다. 당시 뮤추얼펀드 업계에서 주식형 펀드는 액티브펀드가 사실상 전부였다. 액티브펀드는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비싼 편이다.
하지만 보글은 수동적으로 시장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뱅가드500 인덱스펀드)를 내놨다. 운용비용이 거의 없으니 그만큼 수수료 부담이 낮아져 실질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머지않아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과 달리, 이후 보글의 인덱스펀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펀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수익률 측면에서도 당시 전 세계 최대 펀드인 마젤란펀드를 크게 웃도는 성과를 보였다.
보글은 출범 초기 인덱스펀드가 외면받았던 이유에 대해 ‘허황된 희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흐름만 쫓다가는 소위 ‘대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개인투자자들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덱스펀드 출범 이후인 1980~1990년대 미국의 주요 액티브펀드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벤치마킹하는 인덱스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인 워런 버핏 역시 인덱스펀드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있다. 버핏 회장은 사후를 대비해 아내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국채 매입에 10%를 투자하고, 나머지 90%는 전부 S&P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해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보글의 인덱스펀드 운용 기법은 현재의 주식시장에서도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인덱스 운용 기법을 추종하는 상품이다.
또 다른 가치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도 ‘방어적 투자’, 즉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막스는 유리한 환경에서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미래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상황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또 금융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 역시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전략의 유용성을 입증했다. 특히 달리오가 만든 ‘올웨더 포트폴리오’ 전략은 자산관리 시장과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분산투자의 정석으로 꼽힐 정도의 대세 전략이다.
한편, 앞서 소개한 투자 대가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주식시장에서의 오랜 경험과 수십 년간 축적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투자 철학과 원칙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식 분석에만 ‘올인’하기 어려운 처지의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이다. 또 한 명의 인덱스펀드 개척자이자 ‘주식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한 렉스 싱크필드는 개인투자자들이 깊이 음미해볼 만한 명언을 남겼다.
“투자자들이 수동적 투자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삶 자체가 매우 간편해질 것이다. 어떤 주식을 사고팔 것인가를 놓고 밤새 고민할 필요도 없고,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를 일일이 읽을 필요도 없다. 기업의 내용을 알려주는 재무제표를 챙기느라 골치 아프지 않아도 된다.”
글 공인호 기자 |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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