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100세 시대를 맞아 치매에 대한 사회적 고민도 늘고 있다. 무병장수의 달콤한 꿈이 행복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유병장수 시대, '치매'를 대비하려면
몇 해 전 기억을 잃어 가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노인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린 <눈이 부시게>라는 TV 드라마가 있었다. 오늘 문득 다시 그 드라마를 접하게 됐다. 그동안 치매 소재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지만 쓰임이 한정적이었다.

드라마 속 치매에 걸린 사람은 흔히 주인공의 삶 속에 한 주변인으로 등장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 가는 과정을 그려 극적 감정을 이끄는 장치로 써 왔다. <눈이 부시게>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노인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그려냈는데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노인의 고통을 보여주고 그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등을 표현했다. 사회에서 보내는 시선에 내 모습도 있는 것 같아 색다르게 맘속에 스며들었다.

치매는 기억을 잃고 있으나 일상은 계속 되니 ‘가장 슬픈 병’이라고들 한다. 필자가 속한 센터에서는 연간 1200건이 넘는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층의 60% 이상은 70대 이상이다. 그들에게 가장 염려되는 병을 묻는다면 단연 치매라고 답한다.

이미 본인이나 가족이 치매에 걸려 상담을 청해 오는 수도 상당하다. 고령화가 심화되니 웰다잉 바람을 타고 출판되는 엔딩노트들을 보면 건강 항목에 치매가 왔을 때 그 방안을 물으며 본인의 소망을 적는 난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마음속에 가장 고민이 많은 질병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 치매 환자의 비율을 보면 사람들이 걱정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다. 2019년 65세 이상 노인인구수는 771만8616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33만7424명 중 15%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치매상병자수(약 86만명)는 노인인구 772만 명의 11.2%이며, 2010년 이후 2019년까지 지난 9년간 치매상병자수가 약 3배 이상 늘어나, 65세 노인인구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

추후 예상되는 전국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2019년 약 79만 명이고, 2030년 136만 명, 2040년 22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경도인지장애 인구는 27만6000명인데, 이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100만 명이 훌쩍 넘는 국민에게 인지의 장애가 발생한 셈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이미 65세 이상에서 치매 유병율은 10%가 넘었고 2050년에는 17% 이상의 유병율이 예상된다. 상담 현장에서도 이미 이러한 현상은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필자가 속한 센터의 계약 현황을 살펴보면 치매나 노후 케어를 대비하는 계약이 41%에 달하고 있다. 치매의 걱정은 신상을 관리해주는 것도 걱정이 크지만, 고민이 많은 분야는 단연 재산 관리 방안이라 할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신탁을 설정한다면 재산 관리 분야에서만큼은 걱정을 덜 수 있다.

치매 걱정, 신탁 설정으로 방어하다
최근 상담한 70대 후반의 김귀숙 씨는 치매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다. 김 씨는 삼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로, 얼굴도 말씀도 고우시다. 그런데 김 씨의 친언니가 현재 치매 증상을 보여 가족들의 걱정이 크다고 한다. 친언니도 명문 여대를 나와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한 엘리트였다. 여대 동창회에서도 ‘한 자리’를 맡아 활동했는데, 어느 날 동창회에서 이미 몇 해 전에 세상을 뜬 친구를 언급하면서 “그 친구는 왜 오늘 안 와? 어제도 봤는데…” 하고 말씀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김 씨 자신도 치매에 걸리면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게 될까 봐, 그리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간병비 등으로 부담을 줄까 봐 걱정된다고 한다.

김 씨는 트러스트센터에서 제안한 본인의 뜻과 재산 규모에 맞는 맞춤형 유언대용신탁을 알게 돼 평소 고민해 온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드디어 찾았다며 반가워했다.

신탁은 나를 위한 재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사람들은 나를 위한 현명한 방법은 어떤 것인지 늘 고민한다. 주변 유해요소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김 씨는 ‘김귀숙을 위한 신탁’을 설정하고 건강할 때는 김 씨가 원하는 대로 운용 지시를 하고 아플 땐 근처에 사는 첫째 딸이 대신해 재산 관리를 하는 조건을 수탁자에게 지시했다. 딸이 재산 관리를 하더라도 인출 조건은 미리 김 씨가 정한 대로만 움직이도록 했다.
유병장수 시대, '치매'를 대비하려면
80대 이성환 씨도 김 씨와 비슷한 고민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가 치매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이 80이 넘었다면 생을 마감하기엔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90~100세까지 사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부부가 건강하게 지내다가 함께 세상을 뜬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이 씨가 먼저 세상을 뜬다면 치매가 있는 부인의 뒷바라지를 자녀들이 과연 잘 보좌해줄지 걱정이다.

이 씨는 부인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병원비와 간병비, 생활비를 감안하며 주거 보장을 계획했다. 부인을 위한 신탁을 설정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혹여 먼저 세상을 뜨게 되면 ‘배우자를 위한 신탁’에서 기능이 발동되게 한 것이다. 이 씨는 배우자를 위해 ‘수익자연속신탁’을 설정해 이 씨가 사망하면 신탁한 재산은 부인이 사망할 때까지 목적에 맞게 쓰이다가 남은 재산은 자녀들에게 이전되도록 설정했다.

수익자연속신탁은 이 씨가 사망하면 재산을 넘겨줄 수익자를 순차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신탁이다. 수익자연속신탁도 유언대용신탁과 마찬가지로 ‘민법’의 획일적인 규정에서 벗어나 사후 재산 처분에 본인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이처럼 신탁을 활용하면 살아가는 동안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자신의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이전할 수 있다. 자기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치매를 걱정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재산 관리 재단인 셈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본인 사후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재단을 설립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누구에게나 나만을 위한 생전 재단을 설립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회와 가족의 구조가 다양해짐에 따라 개인의 고민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양상을 띠게 되고, 금융서비스에 대한 니즈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신탁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산관리와 상속 방식을 미리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탁은 이제 돈 많은 이들의 전유물도, 일부 회사들만 활용할 수 있는 특권도 아니다. 자산가들만 활용해 오던 신탁이 거스를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글 박현정 하나은행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