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 <바늘과 가죽의 시(時)>
영원히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구병모 작가의 신작 <바늘과 가죽의 시>는죽지 않는 삶을 사는 구두장인 ‘이안’과 그의 형제 ‘미아’의 영생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며,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2016년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는 불멸의 생을 끝내기 위해 신부를 찾는 도깨비와 기억을 잃어버린 저승사자 앞에 나타난, 도깨비 신부라고 주장하는 은탁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생을 끝낼 수 있다는 아름답고 잔혹한 동화는 당시 케이블 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다.
‘본방사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 매일 금·토요일 밤 8시에는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고, 본방사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방까지 챙겨 봤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좋았지만 자주 등장하는 말도 안 되는 개그와 아름다운 장면이 좋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다. 아마도 쓸쓸했던 도깨비의 마음에,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지만 씩씩한 은탁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나보다. 이 밖에도 2013~2014년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나 2013년 짐 자무쉬 감독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와 같이 영생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불멸과 영생은 인간에겐 오랜 시간 숙제였다. 그 꿈을 영상으로, 텍스트로 만들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최근 2019년에 본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는 사람을 디지털로 변환해 영생을 구현했다. 정치와 공상과학(SF)의 결합으로 현실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웰메이드였고,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꼭 봐야 할 드라마로 추천하기도 했다.
SF작가 구병모의 신작 <바늘과 가죽의 시(時)>도 영생을 소재로 한다. 2008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청소년 문학상 수상 후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그의 소설은 잔혹함과 따뜻함이 공존해서 자주 찾게 된다.
소설은 그림형제의 동화 <구두장이와 요정>을 모티브로 늙지 않는 생을 살아가는 ‘이안’(연음으로 ‘얀’으로도 불린다)과 ‘미아’의 이야기다. 주로 이안의 시점에서 영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한다. 두 사람은 적당히 모습과 지역을 바꿔가며 살아간다. 이안은 한 달에 구두 한 켤레만 지으며, 간간이 수강생들에게 구두 만드는 법을 알려주며 살아가고, 미아는 구두와 멀어지기 위해서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현재를 보낸다. 형제지만, 같이 살지 않는 두 사람. 미아가 결혼을 위해 남편 유진의 구두를 짓기 위해 이안을 찾으며 두 사람의 만남은 다시 시작된다.
미아와 얀은 이야기한다. 어째서 빛이나 물이나 공기나 흙의 일부였던 우리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액체와도 기체와도 꼭 같지 않고 더욱이 고체는 아니었던 어떠한 상태를 벗어나서, 손만 뻗으면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음에도 얼굴에 주름이 잡히지 않으며 쇠잔하지도 병들지도 않을까. 이는 유한인가 무한인가. (37쪽)
시간이라는 무한성에 생명이라는 유한성을 더한다면 ‘시작’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이안은 새로운 시작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며 무한한 시간을 견디기로 한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새로운 사람(수강생)을 만나며 자신의 이야기를 빗는다. 미아는 다르다. 그동안 익혀 왔던 것을 멀리하고 여성이라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을 주변에 둔다. 일이 지겨워지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은 적당한 누군가에게 넘기고 모습을 바꾸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에게 ‘시작’은 삶의 의미와 무의미의 보다 무한성을 지닌 자체가 축복과 형벌 사이의 질문으로 남게 된다.
이들의 삶은 축복일까. 이안의 수강생인 시인에게 한 아이가 찾아왔었다. 시인은 기념으로 신생아 신발을 만들고, 이안은 그를 돕는다. 아이가 두 발로 땅을 밟을 수 있을 때까지 착용할 수 있는 가죽을 빗어 실로 연결해 신발을 정성스럽게 만든다. 완성된 날, 공교롭게도 아이가 사라졌다고 시인은 이안에게 전한다. 그렇게 기회조차 없는 아이를 두고도 이안은 미아가 소개한 유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미아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 있길 바라지만,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만으로 마흔 하나. 짧으면 30년, 길어야 50여 년을 함께할 남자. 어릴 때부터 무용을 배웠지만 우연한 사고로 무용을 지속할 수 없는 남자에게 적개심이 생기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결혼 선물로 유진에게 딱 맞는 신발을 선물한다. 이안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건 “점유할 수도 당겨 쓸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는 인간과 인연을 맺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110쪽)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반면 무의미를 선택한 미아는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 아니면 안 돼”(149쪽)라고 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무의미는 각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안 역시 가죽을 펴고 최소한의 바느질을 하면서 최상의 구두를 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누구보다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을 한다. 이안 역시 ‘구두장이’를 하면서 무언가와 연결하기 위해 무한 속 유한을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만을 머물렀다가 부서지고 사라질 세상의 모든 것을 붙들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뻗고야 마는 손을, 변함없이 바늘을 쥐는 손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170쪽)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씁쓸하지만 따뜻함이 묻어난다. 지속적으로 ‘삶’의 이유에 대해서 묻는 것도 좋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서 멀어진 사람의 거리에서 마음만은 연결되길 바란다면 이것 역시 사치일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단절됐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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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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