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은영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가장 정확한 언어로 짚어주는 소설가 최은영. 그의 문장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감정의 우물을 불시에 직면하게 된다.
[Interview]최은영 “마음의 허기, 글을 쓰는 원동력이죠”
“제 온 마음을 다해서 쓴 소설입니다. 그 마음이 독자님께 전해져서 우리가 우리의 깊은 마음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최은영 작가가 장편소설 <밝은 밤>으로 돌아왔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출간 직후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소설 <밝은 밤>에는 나(지연)와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4대를 관통하는 서사가 담겼다. 오정희 작가가 추천사를 통해 전한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것은 더 큰 슬픔의 힘”이라는 표현처럼,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나들며 독자의 마음 밑바닥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얼마 전 첫 번째 장편소설 <밝은 밤>을 출간하셨습니다. 출간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랜만에 책이 나와서 기쁜 마음이 큽니다. 처음에는 제 책이 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에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으셨나요.

“<밝은 밤>은 계간지 <문학동네>에 지난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재한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다 쓴 다음에 제목을 붙이는 편인데, 이번에는 연재 작품이어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봄호를 쓰고 바로 제목을 정했는데, 그때는 가제였지요. 연재를 마무리하고 초고가 나오고 나니 전체적인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밝은 밤>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Interview]최은영 “마음의 허기, 글을 쓰는 원동력이죠”
‘작가의 말’에서 “내게는 지난 2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하셨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집필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 소설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저는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있는지, 능력이 있는지 항상 의심했습니다. 게다가
1년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 그런 확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밝은 밤>을 쓰면서 저는 제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국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에게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오정희 작가님이 이번 작품의 추천사를 써주셨더라고요.
“추천사를 받은 날 쉽게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고요. 선생님 이후의 작가들 중에서 선생님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가 없을 정도로 작가들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소설이 무엇인지 길을 보여준 분이십니다. 특히 ‘한국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를 저는 오정희 선생님께 배웠어요. 언제나 제가 꿈꾸는 글쓰기의 모델은 오정희 선생님의 소설이었습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제 책을 읽으시고 글을 써주시다니, 이보다 더 신기하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처음 선보이는 장편소설인데요. 어떤 매력이 있던가요.
“장편소설은 오랜 시간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물들과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에게 더 정이 들고 더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편은 아무리 길어도 두 달 정도 쓰면 인물과 이별하는데, 이 소설은 1년 동안 인물들이 제 안에서 살아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장편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마치 제가 다른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본 것 같은, 다른 삶을 체험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소설 속 모든 인물이 각별하겠지만,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마음이 쓰였던 캐릭터가 있나요.
“‘지연’이가 저에게는 가장 마음에 남는 캐릭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와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기도 했고요. 제가 30대 초반에 저 자신을 몰아붙이고 저를 용서하지 못했던 모습 같은 것들이 많이 반영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도 저의 모습과 같았고요.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제가 글을 쓰는 과정과도 비슷했습니다. 지연이를 응원하는 것이 결국 저 자신을 응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된 것 같습니다.”
[Interview]최은영 “마음의 허기, 글을 쓰는 원동력이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계속 앉아 있습니다. 글이 나올 때까지 앉아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글이라도 쓰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서 다 버리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글은 아이와 같아서, 언제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주기를 요구합니다. 누구를 만나지도 말고, 한눈 팔지도 말고, 오로지 자기만 보라고 해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 동안 쓰지는 못하더라도 앉아 있으면서 글에게 관심을 줘야 한 문장, 한 문장이 저에게 오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을까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요. 멋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쓰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더라도 그걸 이겨내고 정직해지자. 늘 그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대충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요. 최선을 다하자.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대치를 쓰자. 얼버무리고 뭉개지 말자. 정확하게 쓰자.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스스로를 ‘느리게 쓰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는데요. 느린 호흡만의 장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초고를 완성한 후에 한동안 제 작품을 읽지 않고 뜸을 들인 후 다시 보는 편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싶어서인데요. 이렇게 느린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 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자주 찾아보는 편인가요.
“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제 소설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좋은 감상을 적어주시지만 가끔은 마음이 아픈 평들도 있지요. 예전에는 그런 평들을 읽으며 제 글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요즘에는 그런 평들도 다양한 감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 평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의 허기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허하고 글을 써야만 채워지는 부분이 저에게는 너무 큽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그 부분이 텅 비어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기분이 들더라고요. 글을 쓰지 못하는 1년을 지나면서, ‘아, 글쓰기가 내게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구나. 쓰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글쓰기로 채워야 하는 마음의 허함이 큰 것 같습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조만간 에세이집도 낼 예정입니다. 분량이 긴 에세이를 쓰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짧은 글들의 모음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제가 평소 생각해왔던 것들을 쭉 써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주제는 ‘수치심’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오면서 늘 느껴왔던 여러 수치심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터놓고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말하기 꺼려졌던 부분들이요. 저 자신의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을 먹고, 제 어두운 마음을 해방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상기후 현상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요. 제 친구들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 계획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채널예스에서 엽편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에 엽편 소설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소설집이 늦어도 내후년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밝은 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온 마음을 다해서 쓴 소설입니다. 그 마음이 독자님께 전해져서 우리가 우리의 깊은 마음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헤쳐나가 봐요.”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