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급증 최대치… 부실 뇌관 ‘시한폭탄’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가계 빚이 경제 전반의 뇌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의미)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거세지면서 지난 7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10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최근 한국은행이 공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7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9조7000억 원이 급증했다. 월별 증가액 기준으로는 한은이 처음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1040조2000억 원에 달한다.
가계 빚이 급증한 직접적인 배경에는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하기 위한 ‘빚투’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모주 슈퍼위크 기간에는 대어급 공모주에 청약증거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출 증가를 견인했다.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렸던 카카오뱅크, SD바이오센서, HK이노엔 등에 공모주 청약증거금이 집중되면서 대출 규모가 크게 늘었다.
7월 한 달간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이 3조6000억 원 불어났다. 주택 매매와 전세 거래 관련 자금도 증가 폭을 확대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6조1000억 원이 급증하며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증가를 견인했다. 금융당국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강화했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최근 늘어난 빚투는 소득 자산이 불완전한 2030세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이 연체율 상승으로 나타날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대출 부실화가 금융 시스템을 통째로 흔드는 후폭풍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을 향후 몇 차례 더 하게 된다면 대출 부실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예금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81.5%로 집계됐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이자 부담 규모는 11조8000억 원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규제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서 강력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엔 NH농협은행을 비롯해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등이 대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금리 인상, 자산가격 상승 속도 조절 기대…효과는 ‘제한적’
대출 규모는 좀처럼 줄지 않는 데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 급증으로 금리 인상 카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제1금융권에서 DSR 규제를 강화하면 제2금융권으로 자금 수요들이 빠져나가는 등 풍선효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 한 번의 금리 인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리 인상의 중요한 목적은 유동성 공급을 줄이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둔화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만 급격한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상승효과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유동성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물가 상승세와 유동성 조정 국면을 고려한다면 금리 인상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글로벌 시장의 경기 부양에 따른 유동성 광풍으로 이어졌다.
한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411조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이는 전월 대비 26조8000억 원(0.8%)이 급증한 규모다. 시중 통화량 증가를 견인한 것도 부동산 대출과 주식·가상화폐 투자 확대로 인한 영끌과 빚투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결국 빚투를 줄이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도 지난 4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가계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질수록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폭증하는 가계 빚에 제동을 걸고 버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자산시장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금리 인상이 몇 차례 더 있게 되면 약발이 먹힐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한은이 올해 두 차례, 내년 한 차례 등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을 단 한 번이 아닌 몇 차례 더 한다고 가정하면 부동산 자산가격 조정이 나타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준금리 인상은 자산시장의 거품을 걷어내고 최대 규모로 불어난 가계 빚을 줄이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최근 급속도로 확산세를 보이고 있고 실물경제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시중에 풀린 돈줄을 조였다가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조정에 나서기 위해선 완만한 경기 회복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또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올해 안에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를 시작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모습이다.
글로벌 IB 골드만삭스는 Fed가 오는 11월부터 테이퍼링을 본격화하고, 2023년 3분기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자산가격 상승이 상당 부분 풍부한 유동성과 레버리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 기조 변경은 실물경제나 고용 사정의 가시적인 회복을 전제로 그 시기와 속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전 금융연구원장)는 “미국이 테이퍼링을 시작하게 되면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나라가 금리 인상을 서둘러 한다고 해서 좋을 게 없다”며 “금리 인상을 하려는 목적도 수도권의 주택가격 관리 차원인데, 이 시점에서 효과가 나타나기 쉽지 않고 정책적 위험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리 인상, 증시엔 단기적 조정… 외국인 복귀 요원
한은은 부동산 가격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의 빠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기초 경제여건 등을 통해 평가해보면 일부 자산의 경우 상당히 고평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국내 주가지수는 지난 7월 6일 사상 최고치(코스피 3305.2)를 기록했다. 코스피 상승은 경기 회복 기대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개선도 반영하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한 시중 유동성 확대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의 매도 행렬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상승세는 다시 주춤하는 모습이다. 통상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이슈는 주식시장에 단기 악재로 인식된다. 지난 3개월(5월 20일~8월 20일)간 외국인의 매도 규모는 13조 원에 육박한다. 이 기간 동안 기관 매도 규모는 5조 원을 훌쩍 넘는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이어진 배경에는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로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 데다 미국 Fed 테이퍼링 계획에 따른 유동성 제약이 강해질 수 있어서다. 한은의 금리 인상 이슈도 외국인의 자금 이탈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부각된다.
환율시장 역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하락장에서 빚투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융자 잔고는 8월 13일 기준 사상 처음으로 25조 원을 넘어섰다. 월별 기준 신용융자 잔고 규모는 올해 1월 말 21조 원에서 3월 말 22조 원, 4월 말 23조 원, 7월 말 24조 원대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융자 잔고액이 사상 최고치를 찍은 가운데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반대 매매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반대 매매는 개인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후에 약정한 만기 내에 갚지 못할 경우 강제로 주식을 처분한다. 반대 매매 매물이 단기에 집중적으로 나오게 되면 증시 하방 압력이 커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식시장은 금리 인상 이슈로 인해 단기적관점에서 주가 조정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 연말까지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으면서 주가 조정이 지속될 전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당분간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되기는 쉽지 않아 시장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코스피가 크게 하락하기보다는 조정 국면을 보이는 흐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글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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