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작가 <곁에 있다는 것>

과열양상을 보이는 부동산 투자.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해 인생의 한 방을 노리는 이들도 많다. 김중미 작가의 <곁에 있다는 것>은 재개발에 들어가는 가상의 ‘은강구’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그린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나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지음 창비, 2021년 3월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지음 창비, 2021년 3월
도서 <가난의 문법>은 서울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고령의 여성을 통해 가난의 구조를 보여준다. 기초수급자로 분류되지 않아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 재개발 소식에 잠깐 허리를 펼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이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 1987년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낙원구 행복동의 판자촌 집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자,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든 부동산업자들과 일은 하지만 도시 빈민이 돼버린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후 30년. 우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수도권 곳곳이 재개발에 들어갔고, 집값은 5년 전보다 수억 원씩 올랐다. 돈을 쓰지 않고 버는 돈을 평생 저축해도 집을 구할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난쏘공>에서도 220만 원을 더 내면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자가가 아닌 가족은 위로금으로 받은 22만 원에서 월세를 제해도 220만 원이 없어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다.

작가 김중미의 <곁에 있다는 것>은 <난쏘공>의 30년 이후를 보여준다. 은강구에 거주하며 지역의 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이곳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재개발을 계획 중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쪽방 체험관’ 같은 여행 코스를 만들자는 입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역주민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은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김 작가의 첫 작품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따뜻함을 기억한다. 인천 달동네에서 벌어지는 부모와 학교의 무관심으로 소외된 마을 아이들의 성장통을 그린 소설이었다. 모두가 소설처럼 자라지 않지만, 아이들끼리의 다독이며 의젓하게 자라는 모습은 <곁에 있다는 것>에도 묻어난다. 그렇기에 소설은 10대 강이, 지우, 연우를 중심으로 어머니, 할머니 세대로 이어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정치적인 행동에 맞서 은강을 지키겠다며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신문과 방송 인터뷰를 하면서 은강의 존엄성을 지킨다. 이들은 어른들의 대화에도 의문을 품었지만, 시장의 인터뷰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감지했다.

“저는 우리 구민이 이 은강구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느끼게 할 생각입니다. 가난하고 낙후되었다는 딱지를 떼고 부자가 되는 동네로 바꾸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대대로 공장 지역이었던 이 은강구를 관광특구로 만들겠습니다. 은강구에는 폐가와 폐공장이 많은데 이게 다 문화유산입니다. 그것들을 정비해서 문화관광벨트를 만들 작정입니다. 은강구의 산동네들, 골목들. 이게 다 멋진 관광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도시들과 일본까지 두루 견학을 다니며 느꼈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 특히 가난도 멋진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293쪽)

“어떤 가난도 사회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고, 정치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다. 법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역사 속 어떤 시대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미래도 가난한 자들의 편이 아닐 거라고 체념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379쪽)

그렇기에 작가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마을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재개발 반대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이라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투자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영화감독의 꿈을 접기도 하고,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공부보다 아르바이트를 선택하기도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고3 수험생이었던 지우의 이야기다. 역사나 사회학으로 진로를 정한 아이에게 “사회학과 나와서 뭐할 거야? 차라리 사회복지 쪽으로 가. 아님 유아교육 쪽으로 가든가”라며 진로를 바꾸라고 한다. 세상을 더 넓게 보라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사회학과 나와서 뭐할 거야?”라며 아이의 선택을 부정하는 행동들은 시장이 지역주민과 협의 없이 ‘관광상품’을 만들어버린다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도 안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오히려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같은 브랜드 아파트이지만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자가, 전세에 사는 사람을 구별한다. 은강방직에 ‘정규직’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한순간 일자리를 잃은 것이 이제는 ‘정규직’이라고 해도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진로를 중학교 때 정해서 스펙을 쌓아야 한다. 강이가 ‘사회학과’를 가서 자아실현의 꿈을 꾸지만 선생님은 오히려 돈이 되는 ‘사회복지’나 ‘유치원 선생님’을 추천하는 이유와 같다. 삶은 자아실현도 중요하지만, 정치와 경제로 연결된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고 해도 뉴스와 연을 끊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난의 쓸모가 ‘전시’나 ‘상품’이 돼야 할까. 이런 정치가 진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묻어난 것인지 궁금해진다.

최근 20년 동안 산 집이 재개발에 들어갔다며, 2021년 상반기 내내 고민했다. 결국 대출을 알아보고, 가족이 함께 살 집을 발품 팔아 찾아다녔다. 지금은 매일 대출 규제 소식에 ‘규제’받기 전에 대출을 받아 다행이라고 한다. 매달 월급 220만 원이 안 되는 아이가 30년 동안 월 120만 원 전후로 은행에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힘들 땐 언제든지 말해. 내가 떡볶이 정도는 사줄 수 있어’라며 마음을 달래주면서도 ‘이게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재건축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낙후된 건 새로 고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갭차이로 인한 수익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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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