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유류분(상속인들을 위해 법률상 유보된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 부족액 계산 시 마지막 남은 재산을 법정 비율에 따라 분배한 것으로 보는 ‘법정 상속분설’과 실제 받은 재산을 적용하는 ‘구체적 상속분설’을 놓고 견해차가 있었다. 최근 대법원이 “유류분 정산 시 실제 받은 상속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향후 영향에 눈길을 쏠리고 있다.
“유류분, 실제 상속이익 반영해야”… 대법원, 판결 영향은
최근 부모가 생전에 자녀들에게 각각 다른 금액을 증여하고 사망한 경우, 자녀들의 유류분을 계산할 때에는 실제 상속받은 이익 등 구체적인 금액을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딸 3명이 아들 1명을 상대로 “아버지 생전에 아파트를 증여받는 등 현저히 많은 재산을 얻었다”며 제기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9월 7일 밝혔다.
이들의 부친 A씨는 생전에 3명의 딸에게 각각 1억5000여만∼4억4000여만 원과 아들에게 18억50000만 원 등 약 26억 원을 증여하고, 2013년 6월 사망하면서 4억1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를 남겼다.

A씨의 자녀들은 나머지 형제 1명이 더많은 재산을 증여받았기 때문에 재산의 재분배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민법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한 재산과 사망 시 남겨놓은 재산을 모두 합산해 재산의 50%에 대해 자녀들이 공평한 상속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 생전에 일부 상속인에게만 재산을 많이 증여함으로써 다른 상속인이 손해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1심은 A씨가 앞서 증여한 돈과 사망 후 남긴 아파트를 더해 법정상속분을 30억1000만 원으로 평가했다. 이 중 절반은 딸들과 아들 4명이 동등하게 나눠 받을 권리가 있다며 1인당 주장할 수 있는 유류분을 3억7600여만 원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여기서 상속재산인 4억1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를 나누는 것을 전제로 아들이 딸 2명에게 각각 1억1700여만 원, 1억22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2심도 이 같은 판단이 옳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상속분을 계산하면서 특별수익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다시 재판하도록 했다. 특별수익이란, 고인이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는 등 상속재산을 미리 나눠준 것으로 인정되는 재산으로 이를 제외한 재산만 상속받을 수 있다. 재판부는 “상속받을 몫을 산정할 때는 자녀들이 이미 상속받은 재산에서 특별수익과 각자 받을 수 있는 몫인 순상속분액을 제외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판결에서 핵심은 순상속분액을 ‘법정상속분’과 ‘구체적 상속분’ 중 어느 것으로 봐야 할지였다.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순상속분이 클수록 유류분 부족액이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법정 상속분은 상속 개시 전의 특별수익과 상속 개시 당시 상속재산을 합한 전체 상속재산에서 가져가게 되는 민법상 법정상속분을 순상속분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 상속분은 법정상속분에 특별수익 등을 반영해 수정한 상속분을 말하는 것인데, 대법원에서는 순상속분액을 판단함에 있어 유류분권리자의 특별수익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본 셈이다.

민경서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은 유류분의 적용 범위를 넓게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비슷한 시기에 선고된 판결에서도 공동상속인 간에 법정상속분을 따르지 않는 협의분할을 해 실질적으로는 상속지분의 무상양도가 이루어진 경우 이를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증여로 보았다(2017다230338 판결)”며 “이러한 일련의 판결 취지에 따르면 대법원은 유류분 산정에 있어서 그러한 재산 현황의 실질을 고려해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그간 법정상속분과 구체적 상속분을 둘러싼 법조계 절차상 문제가 많았다”며 “그 배경에는 복잡한 유류분 산출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상속 분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와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이다. 상속재산분할은 망인의 사망 후 망인의 재산을 어떻게 분할할지를 두고 상속인 간에 다툼이 생긴 경우에 제기되는 소송이고, 유류분 소송의 경우에는 유류분권자의 유류분이 침해된 경우에 제기하는 소송이다.

통상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진행하고 나서 상속인들 가운데 부족분 있는지를 결정하고 유류분 소송으로 넘어가는 게 원칙적인 순서다. 하지만 그간 대개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다 마치지 않고 유류분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김 변호사는 “또 하나 쟁점은 유류분 재판은 민사소송이지만, 상속재산분할은 가사소송이기 때문에 대개 유류분 소송이 먼저 진행되는 동안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안 하거나 추후에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상속분할재판을 기다리고 할지, 아니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법정상속분으로 계산할지도 실질적 문제였다”고 전했다.
“유류분, 실제 상속이익 반영해야”… 대법원, 판결 영향은
법조계, 유류분 개선 필요성 제기
실제로 유류분을 따지려면 상속재산분할과 관련된 재판이 선행돼야 한다. 법무부는 2018년 유류분 소송 관할을 가정법원으로 옮기는 내용을 담은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사실 공평이란 취지에는 구체적 상속분이 원칙적으로 맞다”면서 “그동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법정상속분도 허용해 왔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정상속분이 아닌 구체적 상속분을 명확히 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과 함께 해묵은 유류분 제도의 개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받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법정 상속인 몫으로 유보해 놓는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말한다. 즉, 상속인 또는 근친자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해 일정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다. 현행 민법에서 유류분은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액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류분은 균등한 상속재산 분배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특히, 초고령화로 인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은 과거에 비해 훨씬 늘었고, 황혼이혼이 급증하면서 부부간 재산 분할이나 상속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반환청구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 911건으로 5.8배가 넘게 늘어났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민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당장 유류분 제도 자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고, 최근 법무부에서도 1인 가구의 특성을 고려한 유류분 제도의 개선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민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의 배경은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에 기여해 왔으므로, 그와 같이 생성된 재산을 일부 상속인만 독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라면서 “최근 1인 가구의 급증으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약화됐고, 재산을 피상속인이 아닌 사회로 환원하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유류분 제도로 인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유류분 제도의 개선은 사회적인 흐름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