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살아계시고 힘이 있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고 봉양도 잘 하는 것 같다가도, 시간이 흘러 부모님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시거나 돌아가시고 나면, 수면 밑에 있던 욕심과 다툼이 비로소 고개를 내민다. 가정법원에서 오랜 기간 상속사건을 처리하면서 느낀 것은, 차라리 가족이 아니면 돈을 주거나 손해 보고 포기해버리면 끝이지만, 유산 분쟁은 돈도 돈이려니와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나아가 자신의 영혼과 마음까지 모두 파탄 난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치매로 인지능력을 잃으신 어머니가 유산 때문에 자식들이 서로 원수가 돼 아귀다툼할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재산을 물려주거나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분쟁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볼 것이 많이 있겠지만, 우선은 유산을 둘러싼 분쟁에 어떤 것이 있고 어떠한 쟁점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일부 상속인이 상식 밖의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게 됐더라도, 슬기롭게 해결하려면 어떤 준비와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유산을 둘러싼 분쟁은 재산을 남기고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사망 전의 분쟁에는 성년후견 관련 분쟁, 부양 관련 분쟁, 가업승계, 유언이나 증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이슈가 있다. 피상속인의 사망 후에는 유언의 효력에 관한 분쟁, 상속재산분할과 유류분 분쟁, 상속세 등 세금 관련 이슈 등이 있다.
먼저 성년후견과 관련된 분쟁에 대해서 보겠다. 탄탄한 중견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갑자기 치매 등으로 인지능력을 상실하게 됐다. 큰아들과 딸들은 아버지가 치매로 정상적인 의사소통과 판단이 불가능한 정신 상태라고 주장하는 반면, 작은아들은 다른 가족들의 접근을 막은 채 아버지의 뜻임을 내세워 회사 대표를 자신으로 바꾸고자 한다.
큰아들과 딸들은 아버지가 회사 대표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함은 물론 최근 작은아들에게 한 재산 이전 행위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하는 반면,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기억력이 다소 감퇴했을 뿐 후계자 선택이나 회사 대표로서의 직무 수행, 재산 처분 행위 등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성년후견 재판이 열리게 됐는데, 그 재판에서는 인지능력을 상실해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아버지를 누가 어떻게 도울 것인지보다는 회사의 지배권과 재산 처분에 더 관심과 초점이 집중된다. 이러한 양상은 대기업의 후계 구도에 관한 분쟁으로 종종 매스컴의 주목을 받곤 하지만, 재산이 적다고 해 다툼의 범위와 강도가 결코 약해지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재산 문제로 정신적으로 제약 상태에 있는 부모를 학대하거나, 재산을 탈취한 후 방치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임의후견계약을 체결해두거나, 자신의 재산에 대해 대리권 수여나 신탁 등의 조치를 취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가업승계 이슈에 대해서 보자. 가업승계란 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경영이 지속되도록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가업승계 대책을 미리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염두에 두었던 후계자가 회사를 승계받지 못할 수 있고, 사전에 후계자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후계자와 기존 임직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을 수 있으며, 가업승계 시에 부과되는 막대한 세금 때문에 회사의 주요 재산을 헐값에 내놓거나 승계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미리 깨닫고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도, 가업승계 대책을 수립하는 것부터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상속재산이나 세금과 관련된 분쟁, 회사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분쟁, 주식과 관련된 분쟁, 기업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과 관련된 분쟁 등 많은 분쟁이 가업승계 과정에서 일어난다.
연로한 부모의 부양과 관련된 분쟁도 적지 않다. 요즈음 종종 이슈가 되는 것은 부모를 충실히 부양할 것을 조건으로 한 증여, 즉 법률적으로는 부담부증여라고 하는 이른바 ‘효도계약’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데 조건이나 각서가 무슨 말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모를 충실하게 부양하지 않으면 증여받은 것을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조건을 문서로 정확하게 작성해두지 않으면, 자녀가 재산만 챙긴 후 배은망덕한 행위를 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밖에 이른바 ‘가족 간 소송의 끝판왕’이라는 부양료 분쟁이 있는데,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증여해준 부모가 오히려 ‘상속빈곤층’이 돼 자녀에게 부양료를 청구하는 사건, 부모를 부양하는 비용의 불공평한 부담을 나누자고 하는 자녀들 사이의 분쟁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고통스런 상속재산분할 피하려면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에는 상속인들 사이에 본격적인 분쟁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 자녀, 우리 가족만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피상속인의 기대와 바람은 많은 경우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상속인의 유효한 유언이 있었다면 원칙적으로 그에 따라 유산이 분배된다. 그런데 유언은 법률상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야 하고, 유언자에게 유언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유언자가 유언 당시 이미 중증 치매 상태에 있거나 임종을 앞두고 있어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 있지 않은 점을 악용해 유언장이 작성되기도 한다.
이 경우 분할할 상속재산의 대상이나 유류분과 관련해 유언의 효력이 문제가 된다. 유언은 유언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최종 의사를 존중하는 제도이지만,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이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그 유언이 과연 유언자의 진위 여부를 사후에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의 유산 분쟁에서 대표적인 것은 상속재산분할 소송이다. 유언에 포함되지 않은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을 상속인들 사이에 나누는 것이다. 물론 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면 그대로 상속재산을 나누면 되지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에서 정한다.
이때 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망한 시점에 피상속인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고, 기준이 되는 분할 비율(법정상속분)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원칙적으로 균등하다. 그런데 법정상속비율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상속인들 사이에 불공평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생전에 그 피상속인으로부터 미리 증여 등으로 받은 것이 많으면(특별수익) 법정상속분보다 적게 받도록 조정하고, 어떤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들과 달리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상속재산의 유지나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경우(기여분)에는 법정상속분보다 더 많이 받도록 조정할 수 있다.
상속인들은 저마다 ‘공평’을 외치지만, 상속인들의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고, 가족들 사이에 쌓여온 묵은 감정이 유산 분배라는 장면에서 폭발되는 것이 이 분쟁의 본질이기 때문에 화해가 어렵고 소송이 장기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한편 유류분은 법에 의해 상속인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상속분을 말한다. 피상속인이 특정 상속인에게 많은 재산을 생전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줌으로써 나머지 상속인에게 배분되는 몫이 적을 경우 인정되는 권리다. 유류분 비율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에 있어서 남녀 차별과 상속인 사이의 불균형 해소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개인의 유산 처분에 대한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거나 사회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상속이나 증여보다는 올바른 정신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주목을 받는다. 또한 자신의 노후와 사후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유언과 임의후견, 사전의료지시서, 유언대용신탁, 그리고 유산 기부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글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