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들의 투자법, 무엇이 다를까
유동성이 줄어드는 신호탄일까. 곳곳에서 돈줄을 조이는 신호가 깜빡인다. 올 연말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예고와 함께 한국은행이 글로벌 주요 국가 가운데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 시계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금융당국에서는 사상 최대로 늘어난 가계 빚 조이기에 돌입했고, 통화당국도 금리 인상을 하며 시중에 풀린 유동성 줄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유동성이 줄면 직격탄을 맞는 것은 바로 투자 시장이다. 녹록지 않은 투자 시장이 펼쳐지면서 내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답답한 시장에서 자연히 부자들의 투자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자들의 투자 현황을 살펴보기에 앞서 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2021 한국 부자 보고서(Korean Wealth Report)’(이하 부자보고서)에서는 금융 자산 규모 10억 원 이상 보유한 자를 부자로 정의했지만, 부자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부동산을 포함한 총 자산 기준으로 약 100억 원 이상을 보유해야 부자라고 답했다. 즉, 보유 자산이 많을수록 부자의 기준이 높아지는 셈이다.
하나은행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기준으로 본다면 5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 자산 보유 비중이 2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 현황으로 본다면 연간 가구 총 소득은 2억 원 이상이 46%로 절반가량에 육박한다. 이 중 사업소득이 53%로 가장 높고, 근로소득(28%), 재산소득(21%)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부자들은 총 자산의 53%를 부동산 자산에 투자했고, 45%는 금융 상품에 분산투자를 했다. 부동산은 거주 목적 주택, 투자 목적 주택, 상업용 부동산, 토지 등으로 구성돼 있고, 금융 자산은 현금·입출금 통장, 예금, 주식, 펀드·신탁, 채권, 보험·연금 등으로 자산 포트폴리오가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국내 가계 자산은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실물자산 비중은 76.4%, 금융 자산은 23.6%를 차지한다. 지난해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모두 높은 상승률을 보였고, 부동산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럼에도 고액자산가들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전체 가구 비중보다는 오히려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부동산보다는 금융 자산에 대한 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많고, 실제로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있어서다.
올해 들어 자산가들은 부동산 자산 비중을 높이기보다 현금, 주식, 펀드, 채권 등 금융 자산을 골고루 배분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부자들은 부동산에 대한 세제 부담이 커지면서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예금이나 보험 상품,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낙폭을 기록하다가 드라마틱한 반등에 성공한 주식시장 덕에 자산가들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비중이 높아졌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가계의 평균 금융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주식과 펀드 등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규모는 급격히 불어났다. 1분기 가계는 총 49조 원의 주식을 취득했는데 거주자 발행 주식 및 출자지분(국내 주식) 36조5000억 원, 해외 주식 12조5000억 원어치를 확보했다. 특히 가계 금융 자산 중 주식 비중은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부자들, 달러나 실물자산 주목
이전보다 강해진 긴축 시그널은 부자들마저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대규모 정책 자금 공급이 급격하게 경색되면서 부자들도 유동성 감소에 따라 투자 시계를 재설정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부자들은 가장 먼저 달러 자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에 대한 시각도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는 투자 자산의 기대수익률 저하로 나타났다.
자산가들은 원·달러 환율 변동을 이용해 달러를 사고팔아 차익을 거두는 방식의 달러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달러는 기축통화인 만큼 전 세계 금융거래 결제에서 기본이 될 뿐 아니라 단순히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내리는 환차익의 기대에도 부응한다. 또 달러는 금융위기와 같은 대형 리스크에도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 안전자산의 지위를 갖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전 세계를 덮친 지난해 3월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를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1월 다시 1000원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올라 1170원대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달러 강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액자산가들이 달러 선호 경향과 절세 니즈가 강하다는 점에서 달러를 활용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커보인다. 실제 자산가들 중에는 달러 베이스 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골드바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긴축으로 선회한다고는 하지만 시중에 여전히 유동성은 넘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시중통화량 잔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344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평가 자산들이 잇따르자 올 들어 현금 부자들은 실물자산인 그림·명품 시장에 적극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미술 시장에 대한 매수 분위기는 뜨겁게 달궈지면서 가격 폭등세로 이어지고 있다. 중저가의 미술 시장도 최근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실물자산인 미술 시장으로 자산가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매력 여전…위험 투자 선호 지속
긴축 시그널에 유동성을 조이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지만 장기화된 초저금리 현상과 시중에 대거 풀려 있는 돈의 흐름은 주식시장을 향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주식 대기자금인 주식예탁금은 70조 규모에 육박한다. 예탁금은 언제든지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돈인 만큼 여전히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부자들은 현금 비중을 대폭 늘리고 주식투자 확대와 함께 주가 상승에 따른 주식 비중을 크게 늘렸다. 주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만큼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금융투자 상품들도 다양해졌다. 올해 들어 직접투자, 상장지수펀드(ETF), 주식형 펀드, 공모주펀드 등 위험선호 성향이 많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김유미 신한은행 PWM분당센터 PB팀장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수의 브이(V) 자 반등을 경험하고 주식이나 주식형 자산으로 크게 수익을 본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올해 들어 위험선호 성향이 많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하태원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지PB센터 팀장은 “내년 대선을 6개월여 앞둔 시점이라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제 고객들도 2차전지, 은행주, 바이오, 반도체 등 섹터 중심으로 위험선호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세가 이어지고 코로나19 백신 보급률 상승에 따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향후 주식시장 상승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식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 올해 초까지 급등락을 반복하다가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정상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변수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앞으로 시장의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 기회 큰 시장 온다” 낙관론 솔솔
전문가들은 현재 투자하기에 쉽지 않은 시장이지만 반대로 투자 기회가 큰 시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낙관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성희 NH농협은행 NHAII100자문센터 WM전문위원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많아 향후 자산가들의 주식투자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단기적 관점에서 자산가격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미국과 한국은 회복기에서 확장기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면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의 이익 증가로 나타날 수 있어서다.
실제 하반기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뚜렷하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하반기 상장사 244곳의 영업이익 추정치는 113조2709억 원, 순이익 추정치는 83조719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9.5%, 88.6%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자산가격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제기되면서 올 하반기 자산가격이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따라 위험자산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현재 중국발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고 미국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경기 하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부각된다.
서상원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부장은 “글로벌 경기는 일시적으로 회복세가 약화된 후 확장 국면을 이어가겠지만 경기 확장의 속도는 상반기에 비해 둔화되는 만큼 기대수익률은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 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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