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에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기차 성장과 함께 내연기관차 수요가 회복됐지만 내년 이후에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수요를 빠르게 잠식할 전망이다.
중국 시장에서는 지난 5월 이후 내연기관차 수요의 둔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전기차만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 시장도 6·7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전기차 성장은 지속됐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유럽에서 전기차가 미래 산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기차의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 대비 절반에 불과해 차량 생산의 진입장벽이 낮다. 배터리와 모터만 있으면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많은 벤처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쉽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자금과 시간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배터리 가격이 낮아진 후 돈을 벌 수 있을 때 진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전기차는 연비 규제를 맞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당시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만들수록 손해가 발생하지만 연비 규제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 테슬라가 주도하고 중국 기술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는 현재 전기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의미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현재 글로벌 각국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정책 수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시나리오 아래 최종 에너지 수요의 중심축은 석유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로 전환된다. 글로벌 에너지 수요에서 전기에너지 비중은 2020년 20%에서 2030년 26%, 2050년 50%로 성장세를 거듭할 전망이다.
전기차는 향후 에너지의 중심인 전기로 움직이게 된다.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는 움직이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볼 수 있다. ESS는 가전제품과 집, 주거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분산전력 공급원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기차는 전기에너지 세상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전기차의 핵심 기술은 배터리관리기술(BMS), 빅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인공지능(AI), 반도체다. 또 핵심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반이 되는 기술은 빅데이터, OTA(Over The Air), 클라우드다.
전기차의 핵심 기술을 잘 갖춘 기업은 향후 충전 플랫폼, 에너지 플랫폼, 자율주행 플랫폼의 세 가지 오프라인 플랫폼을 주도하게 된다. 에너지 플랫폼 시장 규모는 연간 2조 달러 규모의 자동차 시장보다 50% 수준의 성장이 예상된다.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 규모는 현재 성장성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세 가지 플랫폼 모두 이제 개화된 시장이며, 전기에너지 시대의 중심 플랫폼이다. 각각의 플랫폼은 데이터 판매 비즈니스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전기차 핵심 기술을 갖춘 기업의 가치는 글로벌 시가총액 기준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커질 전망이다. 전기차와 연결된 오프라인 플랫폼은 국가와 지역 등의 물리적 한계, 타국 정부의 견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이커머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생태계와는 다르게 독과점이 불가능하다.
다만 미국, 중국, 유럽 권역별로 플랫폼 승자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경쟁사 대비 압도적이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은 13~15%에 불과하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비야드(BYD)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와 차종을 무기로 하는 폭스바겐(VW)과 판매대수 1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전기차와 기술 경쟁력은 시장점유율보다 수익성 격차로 나타날 전망이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20% 이상을 기록해도 이상하지 않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갖추고 있다. VW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 BYD, 현대차그룹 등 승자 그룹에 속한 전기차 업체는 테슬라 대비 수익성이 낮을 수 있지만 영업이익률 5~6% 수준의 내연기관차 수익성에서 벗어나 10% 이상의 수익성 창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관리 기술 등 하드웨어 기술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자율주행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는 외부 업체와 협력이 가능하다. 충전·에너지·자율주행 플랫폼 놓고 경쟁 구도
현재까지 충전 플랫폼, 에너지 플랫폼, 자율주행 플랫폼의 세 가지 플랫폼에서 리더는 단연 테슬라다. 테슬라는 빅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술, 반도체 설계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다. 내년 서비스 사업부에 속한 충전 플랫폼과 에너지사업부에서 매출 고성장 및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 테슬라와 성장 전략이 유사한 업체는 VW다. VW는 테슬라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VW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테슬라에 5~6년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2025년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1만 명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VW는 11개 브랜드를 기반으로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와 빅데이터 축적을 통한 소프트웨어 기술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반도체 칩 설계 내재화를 2025년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있다. GM은 에너지와 AI 플랫폼 부분에 집중돼 있는데 배터리 생산능력의 공격적인 확장, 배터리 규격화,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 계획을 감안할 때 에너지 플랫폼으로 사업 확장이 예상된다.
AI 플랫폼의 경우 2015년에 인수한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인 크루즈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고 있다. 칩은 퀄컴과 협력을 진행하고 있고, 2023년에 스냅 드래곤(Snap Dragon) 칩을 사용할 계획이다.
BYD는 배터리 생산이 내재화돼 있는 만큼 에너지 플랫폼 확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BYD의 생산능력은 53.3기가와트시(GWh)로 아직까지 대부분의 배터리는 BYD 전기차 탑재에 활용되고 있다. 향후 중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외부 판매 확대가 예상된다.
향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려면 충전 플랫폼과 에너지 플랫폼,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 우선 충전 인프라는 전기차 이동거리에 대한 불안을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전기차 주행거리와 제로백의 가속 성능, 인테리어, 가격 등 상품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충전 네트워크는 다른 플랫폼 대비 기술 난이도는 낮지만 전기차 초기 시장에서 자체 충전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는 브랜드가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에너지 플랫폼 시장은 2040년에 1조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하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발전이 증가하는 시간에 ESS로 저장했다가, 발전이 감소하는 시간에 ESS에 저장돼 있는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기차의 핵심 기술인 AI와 반도체는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연결된다.
인간의 뇌와 유사하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딥러닝 기술의 발달에 따른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테슬라를 비롯한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구독모델, 차량 구독모델을 도입해 서비스 비즈니스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글 이미경 기자 | 자료 삼성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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