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익 아이에스이커머스 고문 인터뷰

패션 비즈니스는 종합예술 비즈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 좋은 원단과 매력적인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유통 분야도 빼놓을 수 없는 패션 비즈니스의 꽃이다. 그래서 만난 이 사람, 국내 온라인 편집몰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재익 아이에스이커머스 고문과 K-패션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에 대해 이야길 나눠봤다.
[special]온라인 패션플랫폼 리더 황재익“이커머스가 패션 선도…국내 경쟁 치우쳐선 안 돼”
“저는 패션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에요.”
황재익 아이에스이커머스 고문은 뜻밖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화려한 그의 패션 비즈니스 필모그래피를 두고 보면 더욱 의외의 반응이다. 황 고문은 온라인 산업, 그중 패션유통에 정통한 국내 트렌트세터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과거 한화유통을 거쳐 2001년 SK글로벌 전략사업본부로 합류해 ‘위즈위드’의 창립 멤버로 활동한 그는 이후 2007년 영업본부장을 거쳐 2011년부터 더블유컨셉코리아를 창립, 2019년까지 회사를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했다. 핵심은 ‘더블유(W)컨셉’ 프로젝트다. W컨셉은 신진 또는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감성과 트렌드가 담긴 디자이너 여성복 시장이 성장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또한 더블유컨셉코리아는 자체 브랜드(PB) ‘프론트로우’로 사업의 저변을 넓혔다. ‘프론트로우’는 고객 니즈를 파악해 머천다이저(MD) 중심으로 운영되는 브랜드다. 디자이너 개인의 취향이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은 대신, 시장성이 검증된 상품들을 판매했는데 매 시즌 완판 행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랬던 그가 돌연 2019년 W컨셉 대표직을 사임하고, 올해 9월 지속가능패션 ‘아이젯’을 론칭하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젯’은 온라인 플랫폼 위즈위드의 모기업인 아이에스이커머스에서 새롭게 출시한 브랜드이며, 황 고문이 론칭 전반을 주도했다. 현재 그는 아이에스이커머스 고문으로 일하면서 위즈위드의 리뉴얼도 진행 중이다. 아이젯은 패스트 패션을 탈피하고 브랜드가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성과 제품의 기능성을 ‘뉴노멀 라이프스타일 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패션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패션에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 못했다는 건 역설적이었지만, 그 역설이 되레 그에겐 이 업계를 읽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황 고문이 생각하는 K-패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지속 가능한 패션 비즈니스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난제들에 대해 들어봤다.

과거 대기업에서 유통과 전략사업부를 거치셨습니다. 이후 패션 비즈니스(유통 등)에 주력하신 결정적 계기는요.
“저의 시작은 패션과는 큰 관계가 없었어요. 주로 마케팅을 했었죠. 그러던 중 과거 SK글로벌 전략사업본부에서 위즈위드 산업단이 분리돼 나올 당시, 상품기업부에 공석이 나서 팀장으로 발령이 났어요. 이후에는 상품기획팀과 영업부장 등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패션 업계에 들어온 셈이죠. 사실 저는 패션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문화나 예술 분야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패션은 그중 제일 관심 없던 분야랄까요. 솔직히 아직도 제가 패션 업계에서 종사한다고 하면 ‘난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워낙 패션에 관심이 없고, 모르는 게 많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길 많이 경청했어요. 오히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다면 조금 건방졌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그런 태도가 이 업계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 과정에서 패션 비즈니스의 비판의식도 생기고 미래 전망도 고민하는 위치가 됐네요.”

막상 해보시니 패션 비즈니스의 매력은 뭔가요.
“딱히 ‘이 비즈니스가 이래서 매력적이었다’는 표현보다는 제가 가진 기질이 이 산업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어떤 기질이죠.
“제가 좀 뭔가를 뒤집어버리는 기질이 있어요. 평소에는 둥글둥글한 편인데, 일에 있어서는 제일 싫어하는 말과 태도가 ‘저건 원래 이래’라고 규정짓는 것들이에요.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하는데 저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변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잖아요. 패션 사업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변화에 가장 앞선 분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건 원래 그래’라는 풍토가 많은 산업이더라고요. 일례로 처음 패션과 이커머스(e-commerce) 관계만 놓고 봐도 그래요.

과거 많은 사람들이 ‘누가 인터넷으로 옷을 사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온라인 패션 비즈니스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저는 그런 균열 속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그 갈등에서 싸워 나가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싶어요.”
[special]온라인 패션플랫폼 리더 황재익“이커머스가 패션 선도…국내 경쟁 치우쳐선 안 돼”
최근 몇 년 새 K-패션이 글로벌하게 뻗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제가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뛰어든 원인 같아요. 위즈위드가 탄생한 2001년만 해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한국과 미국과의 격차는 엄청났어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정도죠. 위즈위드는 일종의 그러한 국가 간 격차(arbitration)를 이용해 만든 사업모델이에요. 가령,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베크롬비, 어메리칸 이글 등 미국 패션 브랜드들이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으로 한국에서 홍보되고, 판매됐어요.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해외 브랜드 제품들 상당수가 정작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와, 이거 정말 웃긴 일이다’ 싶었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적잖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시에 참 묘한 점이 있더라고요.”

어떤 점이죠.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분야 중 하나가 의상학과더라고요. 실제로 국내 의상학과 경쟁률이 엄청 셀뿐더러 전 세계에서 의상학과에 유학을 떠나는 케이스도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심지어 그곳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학생들 상당수도 한국인들이었어요. 그야말로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끝도 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그 점에 저는 주목했어요.

제가 W컨셉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러한 인재풀의 자신감과 동시에 국가 간 불균형한 패션 판매 구조에 대한 반감이 더해졌던 셈이죠. 그때부터 위즈위드 내 W컨셉 프로젝트를 만들고, 신진 디자이너들을 모으기 시작한 뒤 사업을 분리시킨 것이 W컨셉이란 사이트였어요. 다행히 그 예상은 잘 들어맞았고, 지금 너무 잘 돼서 보람됩니다.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여전히 많지만요.”

처음에 W컨셉을 내놓았을 때와 비교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그럼요. 저희와 협업을 통해 국내외로 인정받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꽤 많아졌죠. 물론, 그 배경에는 MZ(밀레니얼+Z) 세대들의 영향도 커요.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자기만의 중심이 서 있는 세대들이에요. 옷이든 뭐든 정말 좋은 것을 알아보고, 남을 따라 하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죠. 그런 흐름 속에 고품격의 다양성을 겸비한 국내 신진 브랜드들이 이들을 통해 많이 소비됐고, 알려지게 됐죠.

더 나아가 이런 현상들이 대기업 위주의 기성복 시장에도 좋은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던스트나 온앤온, 써스데이아일랜드 등의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면 내셔널 브랜드가 기존에 움직였던 문법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요. 또한 패션도 이제는 이커머스가 선도하는 세대라고 봐요. 과거에는 특정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갔다면 요즘은 온라인 마켓이 시장을 리드하고, 오프라인으로 따라가는 형태에 가깝죠.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유통은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아쉬운 점도 많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들인가요.
“최근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국내 패션 플랫폼 비즈니스가 너무 단기적인 목표(이윤) 추구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보여요. 수많은 플랫폼들이 그저 브랜드를 쉽게 쉽게 인수하고, 독점하려고만 해요. 그런데 그 목적이 지나치게 단기적인 거란 거죠. 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연 저런 구조들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정착할 수 있겠나’ 싶어요. 저는 패션 플랫폼이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 경쟁에만 치우쳐선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 플랫폼의 미래를 봤을 때, 국내 디자이너를 제대로 양성하고 인도하려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만 유통하고, 고객을 국내 고객으로만 한정 짓는 플랫폼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생산성이나 소비만으로는 부족해요. 이런 상태에서 지금의 치킨게임 형태의 플랫폼 전쟁은 서로에게 독이 될 뿐이죠. 저는 이제는 패션 플랫폼들이 전 세계 고객들을 상대로 유통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움직여야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아직도 우리나라에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의 형태로는 어쩌면 영원히 그런 국내 브랜드가 못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감도 큽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플랫폼이 돼야 할까요.
“플랫폼 회사들이 시각을 좀 넓혔으면 좋겠어요. 가령, 1세대 패션 유통의 대표주자가 백화점이었잖아요. 그때는 백화점이 유통의 전부인 걸로 여겨지던 시대였고, 업계 간 욕심만 채우는 데 바빴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플랫폼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판매자의 역할만 대신할 게 아니라 패션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에게 다른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요.
“디자이너들이 해외 고객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길을 열어주고, 관련 인프라를 제공해줘야 해요. 가령, 해외 판매에는 물류 문제는 물론이고, 통관 및 언어장벽 외에도 각종 법적 규제들이 많잖아요. 그런 업무를 결코 개인이나 소규모 회사에서 대행해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패션 플랫폼이 좀 더 강하게 이 부분에 드라이브를 걸어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양성될 수 있죠. 동시에 디자이너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교육시켜야 해요. 이를 테면, 단순히 값싼 브랜드를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라,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원단을 써야 하고, 어떻게 나만의 브랜딩을 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고객들에 대한 고차원적 서비스도 늘려야 하고요.”

이제는 새 브랜드 ‘아이젯’을 론칭해 진두지휘하고 계신데, 아이젯이 말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사실 지속 가능성의 반대론자였어요. 물론, 이 개념 자체는 참 훌륭한 발상이죠. 그런데 이걸 깊이 들여다보면 다양한 반론들이 나와요. 패션만 해도 그래요. 예를 들어볼게요. 지속 가능한 패션의 대안으로 친환경 소재가 부상했어요. 유기농 순면으로 옷을 제작했다고 보죠. 그런데 염색하는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이 발생할 수 있고, 그걸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더욱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이런 모든 것들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것이 진정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전 늘 들었어요.

쉽지 않은 문제죠. 그럼에도 지금 정말 필요한 건 이런 올바른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시도해보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죠. 단, 분명한 건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매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젯’도 그런 물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저희 슬로건도 ‘라이트 퀘스천(Right Question)’이에요. 지속 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위해 끊임없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고, 이런 브랜드가 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이러한 지속 가능성에 동참하려고 하는 브랜드를 지원하려는 마음도 커요.

그들과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만 K-패션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거라 봐요. 솔직히 어떤 면에서 좀 늦은 감도 있어요. 우리나라가 디자인에 몰두하는 동안, 이미 외국에서는 이 분야에 집중했어요. 지속 가능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가치들을 더 중요시했죠. 아이젯은 물론이고 앞으로 제가 꾸려 나갈 플랫폼은 그 점에 중심을 두고 나아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계획과 꿈이 있다면요.
“우선, 아이젯 같은 브랜드를 여러 개 만들고, 위즈위드를 개편할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고객들에게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고, 벤더들의 해외 판매로를 넓혀줄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