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란?’ 누구나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질문이다. 이희영 작가 또한 ‘나는 좋은 부모일까?’라는 반성에서 <페인트>를 집필했다고 한다. 국가가 아이를 키워주고, 성인이 되면 부모를 고를 수 있는 미래의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가족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다.
'페인트', 이희영 지음, 창비, 2019년 4월
“야! 너 누가 이러라고 했어!”
오늘 아침에도 싸웠다고 한다. 아이를 쉽게 키웠다고 하는 친한 언니도 자매가 자주 싸운다며 당황해했다. 누가 봐도 똑 부러지는 초등학교 3학년과 여섯 살 아이다. 3학년 아이는 학교 끝나면 매일 해야 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 엄마 대신 동생을 데리러 유치원 버스 하차 지점에서 동생을 기다린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오늘 할 일을 계획하라며 선생님 역할까지 한다. 이런 아이들이 싸울 때는 언니도 당황스럽다고 했다. 프리랜서 직장맘이기에 아이들을 바로 화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이 있을 듯하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소망, 학교에서 별 탈 없길 바라는 마음 등등. 하지만 부모의 마음과 달리 세상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슈퍼 부모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나와 함께 있는 엄마, 아빠 혹은 나와 잘 놀아주는 엄마, 아빠를 원한다. 항상 나를 봐주기를 원하고,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원한다. 평소 대화가 거의 없던 나와 아빠 사이도, 아빠가 암 수술을 한 후 바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면회가 되지 않아 매일 안부전화를 하며, 상태를 살피고, 아빠 역시 나에게 하루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늘 끈끈한 가족 사이가 부러웠는데, 가능성을 체감하고 나서야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의 상은 거의 비슷했다. 자신에게 짜증내지 않는 부모, 화내지 않는 부모, 곁에 있어주는 부모.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어보면 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과 반나절을 보내는 나 역시도 수십 차례씩 참을 ‘인(忍)’자를 새기기도 한다.
“지금부터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페인트>는 국가에서 아이를 대신 키워준다. 저출산이 심화되자 국가에서 영양과 교육, 숙식까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가디언들이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가 태어난 달에 따라 제누, 아키와 같은 이름을 붙인다. 주인공 제누 301은 NC센터에서 자란, 가장 오래 머문 아이다. 성인이 되기 전 부모를 선택해야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희영 작가는 ‘나는 좋은 부모일까?’라는 반성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2019년 열두 살이 된 아이가 자신에게 15점을 준다고 해도 후한 점수라 생각하며,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고 밝힌다. 이 작가는 2013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제1회 김승욱 문학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페인트>로 제12회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 같은 해 <너는 누구니>로 브릿G 로맨스스릴러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신작 <나나>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독자를 기다리게 한다. 청소년기가 흑색이었다는 이 작가는 아직도 자신 안에 아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거라고.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이, 부모가 읽으면 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NC센터의 센터장 박은 곤란한 부모가 면접을 제의하면 제누를 보낸다. 제누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려고 센터에 방문한 사람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또는 이제는 아이를 키울 때가 됐기 때문에 면접을 본다. 소설의 제목 <페인트>는 센터 아이들이 부모 면접을 뜻하는 아이들의 은어다. 제누 301은 열세 살부터 4년 동안 페인트를 치렀다. 스무 살이 되면 떠나야 하지만, 제누 301은 부모를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어느 날 “솔직히 말해서 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예술가 부부가 찾아온다. 평소 정부의 각종 복지 혜택에 관심이 있던 부모에게 100점 만점에 15점을 날리는 제누 301이 이들 부부에게는 몇 점을 줄까.
제누 301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센터장 박과 여성 가디언 최, 한 번 입양 갔다 센터로 돌아오게 된 아키, 제누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아키를 통해서 독자는 ‘좋은 부모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가족의 유대가 끈끈하다. 부모님의 생신, 집안의 제사를 챙기면서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1년에 수차례 행사를 치른다. 그렇다면 재산이 많아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주게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인품이 훌륭하면 좋은 부모일까. 부모의 모습에 정답이 있진 않지만, 부모의 역할이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105쪽)라며 예술가 부부는 말한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연중행사다. 지난해 하지 못한 송년회 일정이 11월부터 잡히고 있다. 발 빠른 부모라면, 산타클로스가 되기 위해 직구 사이트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선물을 고를 것이다.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선물이 무엇일까. 올해는 누가 선물을 주는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3학년 꼬마 아가씨의 말이 맴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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