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며, 기업들도 미래 생존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정유 업계는 사실상 환골탈태 수준의 체질 개선에 나섰고,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기업들도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친환경 에너지에 사활을 건 기업들의 현주소를 정리해봤다.
[big story]친환경 에너지에 기업 생존을 걸다
나폴레옹의 참모로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이자 과학자였던 사디 가르노(Sadi Carnot)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에너지, 특히 증기기관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증기기관의 작동 원리에 남다른 호기심을 가진 그는 영국과 균형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해 연구에 몰두했고, 1824년에 ‘불의 운동력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Motive Power of Fir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인간이 실제로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그의 이론은 후에 열역학 제2법칙의 기초가 됐고, ‘카르노 순환(carnot cycle)’은 중요한 공학 원리가 됐다.

‘카르노 순환’은 20세기 초까지 에너지의 주류였던 풍력과 수력 등 자연으로부터 얻는 에너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카르노 사후 100년이 지났을 때 과학자 하이먼 리코버는 인간이 이룩한 업적을 계량화했다. 그는 “기관사 1명이 남자 10만 명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쓰며, 제트기 파일럿은 70만 명의 에너지를 쓴다”면서 카르노 순환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냈다. 카르노 순환의 대단한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미국의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긴은 저서 <2030 에너지 전쟁>에서 “이처럼 인간은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지금 같은 세상을 꾸려갈 수 있었다”며 향후 에너지 소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말대로 에너지 없이 인간은 생존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기업들이 이 전장에 뛰어든 주된 이유기도 하다. 단, 시대가 변하면서 에너지 분야에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변화의 핵심은 단연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신규 석유·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투자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137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선언했고, 대다수 국가들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 구조를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고자 노력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21년 12월 10일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포 1주년을 맞아 관련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산업·에너지 탄소중립 대전환 비전과 전략을 논의했다.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산업·에너지 탄소중립 대전환 비전과 전략’이 발표됐다. 여기에는 그간 정부가 산업·에너지 업계로부터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향후 30여 년간 추진해 나아가야 할 중장기 과제와 정책 방향성이 담겼다.

무엇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의 선도적인 노력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과 탄소중립 시나리오 마련에 큰 힘이 됐다”며 “탄소중립 시대를 열어 가는 주역은 기업”이라고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 기업들은 미래 친환경 에너지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단연 정유사들이다. 바야흐로 석유의 시대가 저물면서 국내 빅4 정유사들은 살아남으려면 변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사업의 무게중심을 ‘친환경 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

변화에 가장 긴밀하게 움직이는 기업은 업계 맏형인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은 ‘카본 투 그린’ 전략에 따라 배터리 사업과 폐플라스틱 재활용 관련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30조 원을 투자해 현재 30% 수준의 그린 사업 비중을 7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사업과 소재 사업 자회사인 SK온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미국과 유럽 현지에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분리막 공장을 짓고 있다. 화학 사업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미국, 캐나다 등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과 협력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GS칼텍스는 수소 생산과 충전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GS칼텍스는 2021년 5월 한국가스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가스공사의 액화천연가스(LNG) 인수기지 내 유휴부지에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연산 1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짓기로 했다. 액화수소 1만 톤을 수도권과 중부권에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6월에는 한국동서발전·여수시와 손잡고 환경 수소 연료전지 발전 사업과 수소 생태계 강화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에쓰오일은 2050년 탄소배출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탄소 경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사업모델 개발, 중장기 투자 로드맵 관련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2021년 9월 삼성물산과 ‘친환경 수소 및 바이오 연료 사업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가 축적한 운영 노하우와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결합해 모든 밸류체인(가치사슬) 수소 및 바이오 연료 사업을 공동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수소충전소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20년부터 중앙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 관련 연구를 이어왔으며, 이듬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순도 수소 정제 설비를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 내 구축했다.

또한 현대오일뱅크는 2021년 분리막(수소가스에서 분리된 전자의 이동을 막고 수소이온만 선택적으로 이동시켜주는 전해질막의 강도를 좌우하는 소재) 생산 설비 구축 및 시운전을 마친 뒤, 2022년 국내 자동차 제조사와 공동으로 실증 테스트를 거쳐 오는 2023년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차전지·태양광에너지 비즈니스도 후끈
최근 수소만큼이나 미래 친환경 에너지 비즈니스의 꽃으로 부상한 분야는 2차전지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전기차용 2차전지 생산량은 2021년 대비 58% 증가한 496기가와트시(GWh)로 전망된다. 유럽, 미국, 중국에서 전기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전기차 생산을 위해서는 2차전지 수급이 핵심이고, 2차전지 및 소재를 한국과 중국 업체로부터 조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big story]친환경 에너지에 기업 생존을 걸다
이미 한국 2차전지 밸류체인은 차세대 전지 생산을 통한 대형 전기차 고객사를 확보해 나가고 있고, 제품 차별화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빅3 셀 업체(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들은 미국 시장을 과점하고, 소재 업체들은 유럽에서 2차전지 고객사 수를 늘리면서 성장을 꾀할 계획이다.

실제로 이들 3사는 중국 시장을 제외한 2021년 10월 누적 글로벌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톱5 안에 진입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1~10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양은 112.1GWh로 전년 동기 대비 93%나 늘어났다.
업체별로 LG에너지솔루션은 40.5GWh로 131.5% 급증하면서 파나소닉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SK온은 116.6%나 증가한 12.4GWh를 기록하면서 점유율이 상승했다.

삼성SDI는 66.9% 증가한 10.0GWh로 5위에 랭크됐다. 이들 3사의 성장세는 각 사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 모델들의 판매 호조가 주 요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주로 폭스바겐 ID.4와 포드 머스탱 마하-E 등의 판매 급증에 따라 고성장세를 보였다. SK온은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니로 BEV, EV6 등의 판매 호조가 급성장세로 이어졌다. 삼성SDI는 아우디 E-트론 EV와 피아트 500, 지프 랭글러 PHEV 등의 판매 증가가 성장세를 견인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2022년에는 이들 3사의 해외 투자 집행과 신규 수주 확보 모멘텀이 동시에 나타날 전망”이라며 “2021년에는 미국 주요 자동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과 합작 공장 설립 계약을 마무리했다. 합작 회사들의 주요 공장 가동 시작 시점이 2023~2024년이므로, 이에 따른 각 회사의 현지 공장 투자 집행은 2022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양광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미래 친환경 에너지 비즈니스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2021년 3분기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중국 태양광 설치량은 65기가와트(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 정책으로 2021년 설치량이 크게 증가해 2021년 중국 설치량은 80GW에 육박할 전망이다.

또한 2022년 글로벌 태양광 설치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될 경우, 기후변화 및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214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정책에 따라 태양광의 경우, 2022년 기준 설치 규모의 약 2배에 달하는 증설 계획이 잡혀 있는 것은 물론, 관련 세제 혜택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시장 진흥 정책이 본격적으로 투입될 전망이어서 이를 통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내 태양광에너지 대표주자 격인 한화솔루션은 국내에서 640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태양광 시험 설비 구축을 추진하고, 1574억 원을 들여 대형 웨이퍼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또 미국 내 태양광 사업 확대에 나서면서 미국 정부의 태양광 지원 정책 수혜가 기대되는 등 국내외 태양광 사업 확대를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다.
[big story]친환경 에너지에 기업 생존을 걸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640억 원을 투자해 2022년 3월을 목표로 전하선택형 태양전지(TOPCon) 태양광 발전을 위한 시험설비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하선택형 태양전지 시장은 성능과 효율 측면에서 기존 폴리실리콘 태양광을 대체할 차세대 태양광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오는 2028년이면 현재의 태양광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폴리실리콘 제조업체인 OCI도 태양광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해 다양한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OCI는 2020년 5월부터 초고순도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전용 라인을 운영 중이다. 또한 포스코케미칼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 쓰이는 고순도 과산화수소 합작 사업에 이어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고연화점 피치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린 케미컬 분야에서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 설비 공정 개선을 통해 2022년 하반기까지 생산량을 5000톤 늘려 총 3만5000톤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한국경제DB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