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스클럽이 중국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중국에서 돈만 벌어가려 한다.”
“샘스클럽이 중국산 쌀을 먹고 중국인들의 뺨을 때린다.”
최근 웨이보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샘스클럽을 비판하는 글들이다.
샘스클럽은 세계 최대 유통 기업인 미국 월마트가 운영하는 회원제 고급 식료품점이다. 샘스클럽이 중국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실제로 샘스클럽 매장에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특산물인 대추야자, 살구, 멜론 등이 진열돼 있지 않다.
월마트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재고가 떨어진 것”이라며 “제품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판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보이콧(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등록된 소비자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인 샘스클럽에 가입한 중국인 회원들이 잇따라 탈퇴하고 있다. 이들은 회원카드를 해지한 뒤 영수증과 환불 받은 현금을 사진으로 찍어 샘스클럽 보이콧에 동참한다는 인증샷을 공유하고 있다.
월마트는 1996년 중국에 진출해 총 43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33개 매장을 갖고 있고, 유효 회원 400만 명을 확보하고 있는 샘스클럽은 최근 비대면 온라인 쇼핑이 크게 늘면서 중국 시장에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월마트는 오는 2028년까지 샘스클럽 매장을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3일 미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위구르 강제노동법’에 서명하자 중국에서 월마트가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월마트에 대한 불매운동은 과거 프랑스 유통 기업인 카르푸 사태와 비슷하다. 카르푸는 1995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선진 유통 기법을 보이면서 정착에 성공했다. 잘나가던 카르푸의 중국 사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성화 봉송 사건 직후다. 올림픽 성화가 봉송 도중 프랑스 파리에서 봉쇄당하자 성난 중국인들이 바로 카르푸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카르푸가 중국 소비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특히 카르푸의 대주주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매운동은더욱 거세졌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이 해외에서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대한 항의로 거센 수난을 받으면서 중국에서는 중화민족의 단결을 촉구하는 ‘애국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호세 루이스 두란 카르푸 회장이 나서 달라이 라마 14세 지지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카르푸는 사업을 접고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중국에서 오는 2월 4일 개막되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애국주의 소비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고, 이에 따른 외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우후죽순으로 벌어지고 있다. 애국주의 소비를 중국에선 ‘궈차오(國潮)’라고 부른다. 궈차오는 중국을 의미하는 ‘궈(國)’와 유행을 뜻하는 ‘차오(潮)’를 결합한 합성어로, 중국 소비자들이 외국 제품 대신 자국 브랜드를 구입하는 성향을 말한다.
맹목적 애국주의, 21세기판 디지털 홍위병 등장
애국주의 소비는 ‘샤오펀훙(小粉紅)’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작은 분홍색’이라는 의미의 샤오펀훙 세대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출생자를 뜻하는 ‘주링허우(九零后)’와 ‘링링허우(八零后)’가 주축인 네티즌들을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샤오펀훙 세대에게 어릴 때부터 애국주의 교육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애국을 강조하는 내용이 실렸고, 모든 언론이 일정 횟수 이상 애국주의 고취 영상을 내보냈다. 특히 이들은 학교에서 세계 중심이던 중화 민족이 열강의 침략으로 굴욕을 당했지만 공산당 통치와 개혁·개방 덕분에 영광을 되찾고 있다고 배워 왔다.
이런 애국주의와 중화민족주의 교육에 세뇌당한 샤오펀훙 세대는 중국을 비판하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대해 거침없이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소통해 왔기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 능숙하다. 중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인구는 2007년만 해도 5000만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9억여 명에 달한다. 주링허우 세대는 2억1100만여 명, 링링허우 세대는 1억6300만여 명에 달한다.
샤오펀훙은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외국 제품을 쓰는 사람은 매국노”, “중국 제품을 쓰지 않는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다” 등의 자극적 문구를 게재하며 중국산 제품을 사용할 것을 주장해 왔다.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이런 행동 때문에 이들을 21세기판 ‘디지털 홍위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증폭되자 내부 단결을 위해 애국주의를 강조하면서 샤오펀훙 세대를 앞세워 미국은 물론 이에 동조하는 외국들에 대한 공격을 은밀하게 조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인들은 자국의 민족주의를 애국주의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도한 열정이 과거 마오쩌둥 시대의 홍위병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10월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행사에서 밴플리트상을 받은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전쟁에서 양국이 겪었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말하자 이들은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했다”면서 BTS를 무차별 공격하는 댓글을 무더기로 올렸다. 이들이 BTS가 광고모델로 나선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거론하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중국에서 운영하는 공식 쇼핑몰과 SNS에서 BTS 광고를 내렸고, 휠라도 BTS 관련 웨이보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들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어록을 인용한 독일의 자동차 회사, 젓가락으로 피자 먹는 광고를 낸 이탈리아의 명품 회사 등을 좌표 찍어 집중 공격하고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2021년 3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는 면화 등을 수입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자 나이키, 아디다스, H&M 등 미국 등 서방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기업들은 애국주의 소비 열풍 덕분에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스포츠 브랜드인 안타(ANTA)를 들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저가 스포츠 브랜드에 불과했던 안타는 현재 중국 최대 스포츠용품 기업이자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와 함께 글로벌 4대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안타는 현재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스포츠의류 시장은 500억 달러(60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엄청난 시장 규모 때문에 안타는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에서 1만 개 매장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안타의 제품들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덕분에 더욱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안타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 공식 후원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제인권단체들이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과 강제 노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고, 미국, 영국, 일본 등 서방 국가들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결정에도 불구하고 안타는 자사의 스포츠의류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사용한다고 당당하게 광고까지 하고 있다. 반면, 전 세계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매출액이 15~20% 급감하며 고전하고 있다.
애국주의 소비는 매년 11월 초 열리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시즌인 솽스이(雙十一: 11월 11일이라는 뜻)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국 언론 매체인 참고소식에 따르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쇼핑몰에서는 지난해 중국 박물관들이 만든 문구용품, 문화 상품이 전년 대비 4배나 팔려 나갔다. 청나라 때 설립된 팡후이춘탕(方回春堂)의 흑임자환(丸)은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따르면 지난해 솽스이 기간 중국산 제품 관련 검색은 2020년보다 42%나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선 1% 미만이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들은 대부분 오포, 비보, 샤오미 등을 비롯해 중국 브랜드다. 중국 눈치보는 서방 기업…사업 리스크 커져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인 미국의 테슬라를 들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7월 1일 시 주석의 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 내용을 담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 트위터 게시물에 “중국이 이룬 경제적 번영은 정말 놀랍다”는 댓글을 달았다.
머스크는 지난해 3월 중국 국영중앙방송(CCTV)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의 미래는 위대할 것”이라면서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며 극찬한 바 있다. 머스크가 적극적으로 ‘중국 찬양’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머스크의 발언들은 중국 시장을 의식해 정부 관리들, 소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테슬라와 중국 토종 업체인 비야디(BYD), 상하이GM우링(SGMW) 등 3사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승용차는 2014만6000대인데, 이 중에서 전기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는 298만9000대로 14.8%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5년 자국에서 판매되는 차량들 중 20%는 신에너지 자동차가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테슬라가 세계 1위 전기차 업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을 계속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테슬라는 미국 정부와 국제인권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장위구르자치구 구도인 우루무치에 첫 전기차 대리점을 개설했다.
테슬라처럼 외국 기업들은 중국 소비자의 애국주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는 지난해 12월 25일 중국에서 공개한 광고에서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보이도록 화장을 한 여성 모델을 등장시켰다가 비난을 받자 즉각 이를 삭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외국 기업들 중 상당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때문에 진출했지만 사업 리스크가 갈수록 높아지자 철수하고 있다. 일본 전자 업체 도시바는 지난해 말 중국에 진출한 지 30년 만에 24개 도시의 33개 공장을 모두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 열풍과 불매운동 때문에 외국 기업들의 사업 환경은 앞으로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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