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님 작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편지...진짜 가족은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게임에서 알게 된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받았다.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며 기쁨과 동시에 무섭다고 했다. 평소라면 큰일을 했다며 축하해줬을 텐데,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무섭다’라는 데에 공감이 됐다.

나를 만났던 아이들은 해맑게 웃어주거나 눈물이 가득하거나 잔뜩 화가 나 있기도 했다. 아이들의 표정과 말에는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정확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엄마가 보지 않을 때 손톱을 물어뜯는다든가,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는 엄마나 아빠 다리를 잡고 무서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아이였다면’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럴 때마다 친구들은 이제 결혼할 때가 됐다고 한 마디씩 하지만, 나는 그냥 그 아이들의 불안과 공포가 보였을 뿐이다. 친구가 ‘부모’로 바뀌는 순간, 느껴지는 떨림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과몰입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도 없을 거다.

아이이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고, 친절하고 친구 같은 부모가 돼주고 싶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어느 부모라고 나쁜 부모가 되고 싶었을까. 이런 아이들의 성향 이야기와 함께 “그동안 힘들었죠”라고 하는 순간 눈물을 보이는 어머니들을 자주 봤다. 상대가 눈물을 보일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기도 한다. 그래서 찾아본 게 채널A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다. 방송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 주변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아이들이 대다수다. 내가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그저 ‘밖에서까지 저러는데 저 엄마(부모)는 얼마나 힘들까’ 정도였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는 아이와 부모의 ‘어려움’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말을 해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닥에서 벗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누가 괴롭히지 않아도 저 아이는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그런 거다. 절대 게으른 게 아니다”라며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판단’을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시선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솔루션을 준다. 거기에는 늘 부모의 트라우마나 어루만져줘야 하는 어른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하유’가 생각난다. 하유는 웹진 문장에서 만난 아이다. 하유는 친구가 없어서 문자와 통화 외에는 되지 않는 폰으로 가상의 친구 태리를 만들어 문자를 주고받는다. 하유는 일하러 가는 부모 대신 개인 돌봄 선생님과 하루를 보내지만, 돌봄 선생님을 선택하는 건 선생님이나 하유의 몫이 아니다. 그만큼 내 아이와 돈이 들어가는 일에는 냉혹한 ‘개인 튜터’ 세상이었다.

작가 정이현의 <단 하나의 아이>에는 내 아이이지만 엄마가 돌보기 어려운, 그러면서도 내 아이에 대한 조언을 거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읽는 내내 엄마와 아이의 입장에 공감이 되면서도 아이의 외로움은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유와 비슷한 아이가 은유다.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은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다. 1989년생인 이 작가는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메두사의 후예>를 시작으로 <악당이 사는 집>, 청소년 소설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열다섯의 은유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157쪽)라며 은유의 가족을 소개한다. 혼자였던 아빠에게 여자가 생기자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분노하는 은유. 열다섯이 될 동안 아빠와 자신은 서먹하다 못해 적막한 공기로 존재했다고 한다.

아빠는 은유에게 1년 뒤에 배달되는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다. 편지에 아빠는 은유에게 마음에 묻어 둔 이야기를, 은유는 자신에게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쓴다. 하지만 은유의 편지는 또 다른 은유에게 지금은 2016년이 아닌 1982년이고, 미친 사람인지 간첩인지 말해달라는 답장을 받는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은유들의 만남. 열다섯 은유가 1년을 지낼 동안 1982년의 은유는 20년을 보낸다. 엄마 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은유와 특별한 미래를 꿈꾸는 은유는 친구가 되고, 언니가 되고, 이모가 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은유와 친해지기 위해서 1년을 준비한 아빠와 다른 세계의 은유와 소통하는 은유. 아빠와 두 은유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은유와 아빠가 적막한 공기로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누구에게 배워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머리로는 알아도 감정이 먼저, ‘나’가 아니라 남 탓을 하게 된다. 은유도 자신이 편지를 쓰고 아빠와 대화를 하고 싶었음에도 2주에 한 번씩 용돈이 떨어졌는지를 묻는 게 전부였다고 하니 자신이 아니라 아빠의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

부모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아이도 아이의 역할은 처음이라고 언니에게 말하는 은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아빠와 은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또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부정적인 감정까지 나눌 수 있을 때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열다섯의 은유가 은유 언니에게 묻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언니, 아직 거기 있는 거지?”(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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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