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진 팜에이트 디지털 혁신 본부장
“지금 시대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스마트팜이 농업의 유일무이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홍경진 팜에이트 디지털 혁신 본부장이 생각하는 스마트 농업의 미래는 명료하기 그지없다.
기술 혁신으로 급변할 농업의 미래를 국내 대표 스마트팜 기업의 입을 빌려 미리 엿본다.
지하철 역사 내 설치된 실내 수직농장, 남극세종기지에 설치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식물이 자라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던 공간에 농장을 만들고 초록빛 식물을 키워내는 회사가 있다. 바로 팜에이트와 그 자회사인 플랜티팜이다. 계절과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언제 어느 때나 동일한 품질의 채소를 생산해내는 스마트 농업이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이다. 홍경진 팜에이트 디지털 혁신 본부장을 만나 팜에이트가 그리는 애그리테크(agri-tech)의 현재와 미래 청사진을 나눠봤다. 간단한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팜에이트는 식물공장에서 재배한 원물을 샐러드 식품으로 가공·유통하는 회사입니다. 자회사인 플랜티팜은 식물공장에 대한 기술 전반과 시설 개발을 맡고 있습니다.”
팜에이트는 2004년 10월에 설립됐는데, 설립 초기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가장 큰 변화를 말씀드리자면 한 마디로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장과 공정, 구성원과 조직의 규모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고 봅니다. 현재 팜에이트가 가공·유통하는 제품 라인업은 500종 안팎인데요. 매출이 2020년 532억 원에서 2021년 596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 성장을 했지만, 공장 생산능력(CAPA)이 수요를 못 맞추는 상황이에요. 팜에이트 가공 공장이 경기도 이천과 평택에 위치해 있고, 광주에는 새롭게 짓고 있는 단계인데요. 생산 기지를 빨리 늘려야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회사 플랜티팜은 2020년 6월에 물적분할을 했는데요. 2020년 매출 81억 원에서 2021년에 154억 원으로 90% 이상 성장했습니다. 플랜티팜 또한 고객 수요는 계속 있는데 식물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술자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죠.”
기술자가 많이 부족한 상황인가요.
“식물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관리자를 ‘재배 마스터’라고 하는데요. 대한민국에 10명도 안 됩니다. 재배 마스터를 양성하는 게 저희가 갖고 있는 아주 큰 숙명 중 하나죠. 소명의식이 있어야 가능한 역할이거든요. 단순히 원예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인류가 노지에서 작물을 생산한 기간은 1만 년이 넘잖아요. 반면 실내(하우스)에서 재배한 기록이 있는 시점은 불과 1000~2000년 전입니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192년 후한 말기 추운 지방에서 여름 작물들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심지어 스마트팜의 역사는 100년이 안 됩니다. 또 시장에서 투자가 이뤄지기 시작한 게 최근이기 때문에 거의 시작 단계인 분야거든요. 이런 특성을 감안하고 6년 이상 실패를 거듭하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스마트팜에 어떤 식으로 접목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농업이 굉장히 오래된 산업이다 보니 경험에 의해 쌓인 ‘암묵적 지식’이 많습니다. 이 지식을 시스템화하는 디지털 전환을 하고 있어요. 농업 생산성이나 품질, 원가를 시스템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제조업이나 2차 산업의 사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스마트팜을 ‘식물공장’이라는 명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모든 산업군이 추구하는 ‘분석 및 예측 기술’도 활용합니다. 이때 쓰이는 기술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이고요. 영상 수집을 위해 실내 드론 연구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또 신품종을 수직농법(지정된 공간에 다층 선반을 이용해 식물을 재배하는 농법)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세계적으로 중요한데요. 각 생육 단계별로, 혹은 어떤 일탈이 일어났을 때 자동으로 정밀 대응할 수 있는 환경 제어 로직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 하드웨어가 저희 식물공장의 ‘재배 레시피’ 핵심 기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 개발이나 사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식물을 키우는 데 따른 불확실성입니다. 식물에 대한 과거 데이터와 AI를 통해 여러 추론을 할 수는 있지만, 식물의 종이 몇 조 단위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부족입니다. 같은 엽체류라고 해도 품종이 굉장히 다양해요. 버터헤드를 예로 들자면 100가지가 넘습니다. 어떤 품종은 습도에 너무 민감하고, 어떤 품종은 광(빛)에 민감하죠. 작물 성장에 중요한 7~8개의 환경 변수가 있는데, 그 조합에 따라 생육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전부 달라져요. 세 가지 정도의 변수를 고려해 일곱 가지 실험을 해도 10년 이상이 걸리죠. 이렇게 하면 경쟁력이 없으니 1~2년 안에 실험을 끝낼 수 있도록 비교 재배를 한다거나, AI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내는 건데요. 이 경우 기술 투자가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항상 유동성이 좋지는 않다는 어려움이 있죠.
또 농업 종사자들이 다른 업계보다 시스템 성숙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잘 안 써보시는 거죠. 예를 들어 저희가 쟁쟁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어떤 시점에 데이터를 등록해야 한다고 전해드려도 사실은 거의 지켜지지 않습니다.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시스템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고 하더라도 이런 측면에서 성숙도가 담보되지 않다 보니, (농업 현장의) 암묵적 지식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드는 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회사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개인적으로는 ‘도시농업’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스마트팜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저희 식물공장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조사 내용을 보니, 농업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영역이라는 결과가 나왔더라고요. 원인은 푸드 마일리지(식품이 생산돼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미국 동부로 이송한다고 생각해보죠. 지대와 노동력이 저렴한 지역에서 대량 생산한 식량을 전 세계로 유통하는 데 들어가는 탄소 배출이 전 세계 1위였던 거예요. 또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바나나 가격의 80%가 푸드 마일리지로 인한 세금이죠. 화물선을 통해 바나나를 운송하는 비용이 굉장히 큽니다. 그 비용을 일반 시민들이 탄소세로 내고 있죠.
저희 팜에이트가 만든 메트로팜(지하철 역사 내 스마트팜)이나 유휴부지에서의 도시농업이 결국은 동네 물류를 통해 소비가 이뤄지는 ‘소비지 생산’을 뜻하거든요.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 구조상, 농가에서 중개인에게 판매하는 가격의 곱하기 8을 해야 소비자에게 갑니다. 생산자가 적정 수익을 받기 너무 어려운 구조예요. 물류 비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중개인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시스템이죠. 그런데 소비지 생산이 된다는 건 생산지에서 로컬 물류를 통해 배포된다는 거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도시농업의 사회적 공헌 가치는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기존 농작물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도 궁금한데요.
“솔직히 말씀드려야 하죠?(웃음) 비쌉니다. 특정 작물이 잘 재배되는 시기에는 저희 작물이 노지 작물의 가격을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노지 재배 작물은 계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확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정확히 맞춘 적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어느 순간 병해나 재해가 생길 수 있고요. 식품은 생물로도 먹을 수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1인식 트렌드로 바뀌는 과정이라 점점 가공화되는 추세거든요. 따라서 식품 가공을 하는 제품 공급자 입장에서는 365일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 제품군의 수요는 거기에 있어요.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냉해로 양상추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면,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양상추 없이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1kg당 2만 원에 판매되던 바질이 12월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는 30만 원으로 치솟죠. 이런 수급 불균형이 몇 년 전부터 일어났거든요. 식물공장에서 연중 정품 정량으로 나오는 원물을 통상적 가격과 비교하면 비싸겠지만, 1년 전체의 수급 측면에서 보면 저렴할 수 있죠.”
미국과 유럽 등 농업 선진국과 견줬을 때 팜에이트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평가한다면.
“우선 자동화 기술을 미국과 비교하면 약 3년 정도의 격차가 있다고 봅니다. 환경 제어 기술은 네덜란드가 가장 뛰어난데, 저희와의 기술 격차가 2년 정도 난다고 보고요. 디지털 전환 기술 격차는 1년 이내라고 판단합니다. 반면 작물 재배의 재현성, 즉 어떤 작물을 ‘잘 키우는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오히려 작물 품질이나 크기 측면에서 저희가 신기록을 세우는 것들도 있거든요. 또 사업자들이 식물공장이나 작물 유통을 하려는 경우, 산업적인 접근성이나 시장 경쟁력은 오히려 우리가 해외보다 앞설 수 있다고 보고요. 어떤 부분은 우리가 앞서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미진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쟁력을 포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글로벌 진출도 팜에이트의 중요한 과제일 것 같은데요.
“현재 8개국과 협업을 논의 중입니다. 중동과 몽골 등에 현지 합작법인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고, 올해와 내년까지 8개국에 식물공장을 오픈하는 것까지 설계가 된 상태입니다. 현재 쿠웨이트에는 저희 멤버들이 나가서 660m2 규모의 식물공장을 시공 중입니다. 또 남극에도 컨테이너 형태의 식물공장을 보낸 적이 있는데, 향후에는 소비자 피드백과 현지 시장을 조망할 수 있는 개척지로 진출하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어요. 물론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사회공헌 효과를 위해 황무지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죠.” 최근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스마트 농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국내외 애그리테크 시장을 평가한다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의 모수가 10년 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라고 봅니다. 또 현재 여러 국가 간 분쟁이 촉발되고 있는데, 모든 국가 정책이 최대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싱가포르 정부에도 식량 자급률의 일부는 식물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안해서 그쪽에도 공장을 지을 계획이 있거든요. 시장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는 이미 성숙 단계에 와 있습니다. 다만 기술적 측면에서 수직농장, 식물공장이 키워내는 작물 다양성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애그리테크의 필요성이 더 높아진 만큼 앞으로 더 빠른 발전이 가능할까요.
“그렇죠. 금융자본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건 투자라고 생각하거든요. 투자가 이뤄지면 더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고, 빠른 실패와 빠른 성공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식물공장 등 스마트 농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연구 영역이 복잡한 편이거든요. 생명공학과 IT, 설계공학, 원예와 농경 등 10여 가지의 분야가 크로스오버 되는 산업이에요. 이 분야에서 적정 연구를 진행해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괜찮은 인재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자본 투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국내 농업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지도 궁금한데요.
“앞으로는 농업도 기업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꼭 대기업 체제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에요. 1인 경영이라고 할지라도 기업이 갖고 있는 기본이라는 게 있거든요. 좀 더 단단한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향후 스마트팜 시장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국가 간 공급망 리스크와 기후변화가 우려되고 있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는 인구 증가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고 계시죠. 지금 시대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스마트팜이 농업의 유일무이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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