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기후변화 문제를 대홍수 전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는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선 가뭄과 홍수, 폭염과 한파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힌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중에서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다양한 창작 영역에서 종횡무진하는 작가 곽재식. 소설가이자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활동 중인 그가 이번에는 기후변화라는 큰 화두를 들고 독자 앞에 찾아왔다. 최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를 집필한 곽 작가는 “북극이 다 녹기 전에 반지하 침수가 먼저 찾아온다”는 경고를 통해 우리가 당장 직시해야 할 기후 문제의 현실을 일깨운다.
최근 거듭 화두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를 주제로 책을 쓰셨어요. 집필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업의 환경 담당부서에서 15년 정도를 일하면서, 환경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환경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이 주제로 글로 쓰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러다 지난해 초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죠.”
책 내용을 보면, 기후변화를 종말론처럼 받아들이거나 그저 자연의 복수라는 흐릿한 느낌만 갖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막연하게 ‘자연적으로 살고, 좀 더 아끼면 환경에 좋은 거겠지’라는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 이게 주류 정서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서 살면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산에서 나무를 자르고 숲을 파괴하며 살면 기후 문제를 더 심각하게 일으키겠죠.
시베리아나 아마존에 사는 분들은 에어콘 없이 더운 날씨를 버티거나 석탄과 전기 없이 추운 겨울을 보내기가 훨씬 힘들어요. 자연인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게 그런 측면에선 정당하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일단 기후변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관점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떤 관점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바라봐야 할까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실상을 보면, 기후변화 때문에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해외에서 대형 산불이 많이 일어났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일반 상식처럼 퍼졌어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누군가는 대응해야 할 문제였던 거죠. 정부나 공동체가 좀 진지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기후변화에 대처한다고 하면 정부는 무언가를 금지한다거나 세금을 매기는 쪽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죠. 그런데 기후변화의 위협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고민해봐야 합니다.
극단적인 이야기라서 현실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바닷물 양이 불어나 부산이나 인천이 잠긴다는 우려를 많이 합니다. 그런 상황이 예상된다면,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부산이 잠기는데 ‘인류에 대한 지구의 응징’이라는 식으로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둑이라도 쌓아야죠. 해수면 상승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대중적·정책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아요.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기후변화를 당장 막기는 어려우니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을 같이 고려해야 된다는 건가요.
“그렇죠. 실제로 우리나라 여름 일수가 과거에 비해 20일 정도 더 늘었거든요. 이미 기후가 많이 변했어요.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바다가 따뜻해져서 명태나 대구가 잘 안 잡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모두 기후변화의 피해자들입니다. 과거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다 잃어버리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환경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환경의 변화로 어떤 일자리가 없어지는지, 경제적인 피해 규모는 얼마인지에 대한 문제는 멀리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잖아요. 그런 부분을 간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기후과학자나 환경학자들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오히려 다가올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불과 한 5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아졌거든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가 100년 전 수준으로 기후를 되돌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향을 가장 먼저 생각하죠. 그럼 휘발유 자동차보다는 전기자동차가 유리합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이 있다면, 이 가운데 많은 부분을 전기차 보조금으로 주게 될 거예요. 이렇게 되면 전통적 사고방식대로 가는 겁니다. 기후변화 예산을 전기차 보조금으로 나눠주는 게 과연 좋은 방향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후변화로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 더운 날씨에도 함부로 에어콘 가동을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예산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제 이야기는 기후변화 예산을 그렇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동일한 예산이라고 해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기후문제 대응 방향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피해를 더 많이 입을 사회적 약자 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자국 이기주의’가 심해져서 기후위기의 해법을 찾기 어려워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도록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한데요.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 최근 한 5~10년 사이에는 그 자국 이기주의 때문에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현재 미국 전기차가 호황이잖아요. 미국 전기차 기업 한 곳의 시가총액을 따지면 모든 자동차 회사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큰 상황이거든요.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전기차를 타야 한다’고 해야 자국 경제가 좋아지는 상황이 된 거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태양광 산업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1위거든요. 중국 입장에서도 재생에너지가 활발해지면 자국의 이익이에요. 자국 이기주의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추세로 넘어온 것 같아요.”
두 번째 측면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자국 이기주의를 극복하며 기후 문제의 변화를 이끌기 좋은 위치라는 측면인데요. 보통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경제 성장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많이 하게 되는 미래를 잘 생각하지 못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개도국도 지금의 선진국만큼 잘살게 될 수 있잖아요. 이런 시나리오까지 감안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야 세계적인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선진국들은 그렇게 생각을 잘 못하죠. 그런데 한국은 못사는 나라도 점점 성장해서 잘살게 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여요.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나 협력 면에서 한국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가장 알아줬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대중교통을 많이 타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일회용품을 100개 줄이는 것보다 자동차 대신 지하철 한 번 타는 게 기후변화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거든요. 정부 차원에서도 지하철 노선을 편리하게 개선한다든지, 이용요금을 낮추는 등의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죠. 평소에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지하철을 3번 정도는 타는 쪽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회용품 덜 쓰기’ 같은 방식보다 환경에 훨씬 큰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과 작법서, 괴물 백과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어떤 분야에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잘 녹아 있다고 생각하나요.
“처음에 글을 쓰고 책을 낸 분야가 소설이어서 그런지, 문학에 저의 정체성 비슷한 게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방송에서 저를 ‘과학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과학책을 4~5권 썼는데도 그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져요. 저를 소설가라고 할 때는 하나도 어색한 느낌이 안 드는 데 말이죠. 소설가라는 말이 저에게는 조금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퇴사한 뒤 최근 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됐다고요.
“제가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일하기도 좋고 동료들과 함께 지내기도 굉장히 좋은 곳이었는데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것이 사회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회사에서는 현실적인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조금 더 학구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은 학구적인 일을 훨씬 많이 하게 됐는데요. 공부를 다시 해보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이게 원했던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삶이 바뀌었습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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