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올해 상반기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 우려에 글로벌 증시는 연초 이후 지속적인 변동성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인프라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견고하게 하락장을 방어하는 모습이다.
인프라는 경제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과 시스템을 말한다. 도로, 전기, 통신, 항만, 공항 등 경제 활동에 밀접한 사회간접자본(SOC)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사회간접자본이 민영화돼 있다. 한국의 맥쿼리인프라가 대표적인 예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맥쿼리인프라는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인천대교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영위한다.
국내에는 인프라 기업이 소수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는 디지털 인프라, 에너지 인프라, 사회적 인프라 등 다양한 형태의 인프라 기업들이 존재한다. 통신타워, 5G 시대의 새로운 성장 산업 두각
통신타워는 국내에서 아직 생소하지만 서양에서는 인프라 산업의 주요 섹터를 담당하는 사업 중 하나다. 지난 4월 말 기준 통신타워 회사로 구성된 인프라 리츠(REITs) 섹터의 시가총액은 2304억 달러로 전체 미국 리츠 시가총액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통신타워는 땅 위에 건설되는 수직 구조물로 이동통신사, 방송국 등 전파 중계가 필요한 업체들에 타워의 일부분을 임차해준다. 한국 통신사들은 자체 통신타워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 통신사들은 2010년 전후로 자본집약도가 높은 비핵심 부문들을 정리하면서 효율적인 사업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통신타워 비즈니스가 탄생했다. 다시 말해 기지국 설치 등을 목적으로 보유했던 부동산을 팔고 통신타워를 빌려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이동 통신사들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통신타워를 공유함으로써 불필요한 고정지출(부동산 투자)을 억제하고 공동 사용에 따른 임차·유지 비용을 감축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통신요금 부담을 낮췄다. 인프라 산업의 독특한 특징들은 통신타워 비즈니스 구조와 함께 통신타워 사업자와 임차인 간의 계약 내용에서 잘 나타난다.
통신타워 인프라의 첫 번째 특징은 가격 인상 조항이 포함된 장기 계약이라는 점이다. 통신타워 회사와 이동통신사를 비롯한 임차인은 통상적으로 장기 계약을 맺고 이를 연장한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계약 초기에는 5~20년 정도의 계약 기간을 정하고, 계약 만료 시 별도 합의가 없으면 자동 연장하는 구조를 취한다.
매년 일정 비율을 정하거나 인플레에 연동되는 임차료 인상 조항을 담고 있어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용이하다. 전 세계 22만 개 이상의 통신 관련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1위 통신타워 사업자인 아메리칸 타워(American Tower)의 경우 통신타워 임차 계약에 5~10년의 계약 취소 불가능 기간과 함께 자동 계약 갱신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고정 상승 비율(미국 기준 3% 수준)이나 인플레 지표 연동 또는 이 두 항목을 조합한 형태의 임차료 인상 조항도 추가한다. 이런 계약을 통해 아메리칸 타워는 2021년 말 기준으로 향후 610억 달러 이상의 취소 불가능한 임대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두 번째 특징은 대체 가능한 경쟁자를 찾기 어려워 안정적인 수요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타워 비즈니스는 복잡한 정부의 규제를 통과해야 하고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규 경쟁자가 진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임차인들은 적합한 대체 자산을 찾기 어렵다. 또한 대체 사이트를 찾았다고 해도 기지국을 재배치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 네트워크 품질과 기업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임대 계약 갱신율을 유지한다.
아메리칸 타워의 경우 임차인이 계약을 취소하거나 갱신하지 않는 비율이 전체 임차금액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통신타워 인프라는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조적 성장이 기대되는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전 세계 통신사들은 5세대(5G)로의 전환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5G의 높은 주파수 대역은 단일 기지국이 담당하는 면적을 줄어들게 만드는 탓에 통신사는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기지국들을 더욱 촘촘하게 설치해야 한다.
또한 자율주행이나 스마트시티 관련 네트워크를 위해 5G 커버리지를 높이는 것이 통신 사업의 경쟁력과 품질 문제에 직결된다. 이 때문에 통신타워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통신타워 인프라의 안정적인 수요와 높은 성장성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지난 6년간 미국 3대 통신타워 기업인 아메리칸 타워, 크라운 캐슬(Crown Castle), SBA 커뮤니케이션스의 주가를 살펴보면 양적 성장(수요 증가)과 질적 성장(수익성)이 뒷받침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상회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유틸리티, 지정학적 이슈와 탄소 저감 정책에 따른 수혜 높아
최근 인프라 산업 중 미국의 천연가스 유틸리티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틸리티는 전력, 가스, 수도 등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자원들의 공급을 담당하는 인프라 산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력은 한국전력공사, 가스는 한국가스공사에서 독점으로 도매 공급하는 체계로 돼 있어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는 민영기업이 경쟁을 하며 유틸리티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유틸리티 산업 중 미국의 천연가스 유틸리티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탄소 저감 정책과 지정학적 이슈 때문이다.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천연가스 시장으로 변화했다. 2016년 2월 25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최초의 셰니어 에너지 소속 수출 운반선이 브라질을 향해 출발한 시점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올해 상반기에는 호주와 카타르를 제치고 LNG 수출 1위 국가로 변모했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증가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지 매장량이 많아서만이 아니라 LNG 밸류체인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통해 LNG 인프라를 빠르고 강력하게 구축했고 관련 기술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며 향후 수요에 더 신속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춰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에너지원으로서 천연가스의 역할과 함께 유럽의 지정학적 이슈는 미국산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를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대체 공급자로 미국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미국의 LNG 총수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4월 74%를 기록해 지난해 약 34% 수준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LNG 수출량의 약 50%를 처리하는 셰니어 에너지는 지난 5월 실적 발표에서 1분기 수출 물량의 약 75%가 유럽으로 이동했다고 밝히며 유럽에 대한 미국 LNG 수출이 크게 증가했음을 증명했다.
셰일혁명으로 인한 천연가스 생산 증대가 LNG 수출 증가로 이어짐에 따라 셰일가스 생산지에서 수출 터미널까지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유틸리티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터미널은 걸프만 지역에 집중돼 있다. 미국 9개 주 120여 개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집결하는 루이지애나주 걸프만 연안의 헨리 허브에서 결정되는 ‘헨리 허브 가격(Henry Hub Price)’은 국제 천연가스 시장에서 대표적인 가격지표로 사용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셰일 에너지 생산 지역은 주로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천연가스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파이프라인 네트워크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런 이유로 생산지와 수출항을 이어주는 파이프라인 유틸리티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이 가운데 킨더 모건(Kinder Morgan)은 미국 천연가스 운송의 약 40%를 처리하는 대표적인 파이프라인 미드스트림 회사로 이 회사가 운반하는 가스의 절반은 LNG 수출 터미널로 이동한다.
지난 1분기 킨더 모건이 천연가스 수출 터미널로 배송한 물량은 전년보다 32%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프라 에너지, 타르가 리소스, 텔루리안 등 천연가스 인프라 기업들은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으며 셰니어 에너지도 추가적인 LNG 수출 터미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틸리티 인프라 기업도 통신타워 비즈니스의 장점을 대부분 공유한다. LNG 사업은 대부분 장기계약에 기반해 생산, 운반, 소비까지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비즈니스다. 관련 인프라를 이용하려는 임차인은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장기 계약을 맺는다.
파이프라인 비즈니스도 통신타워와 마찬가지로 계약 내용에 일정한 임대료 상승 또는 인플레 보정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파이프라인 비즈니스는 고도의 자본집약적 산업인 데다 정부의 환경 규제 등 인허가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나아가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대체에너지에 천연가스가 선택됨으로써 향후 관련 산업의 구조적 성장이 기대된다. 인프라 자산, 인플레 시대의 투자 대안 주목
지금까지 살펴본 통신타워 인프라와 유틸리티 산업의 특징은 인프라 산업의 일반적인 특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프라 산업은 지속적으로 높은 수요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의 특성상 장기 계약으로 유지돼 현금흐름의 예측이 용이하다. 또 대규모 시설 투자가 수반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각종 인허가가 복잡한 데다 막대한 초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쟁자의 진입이 쉽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 장기 계약으로 가격 관련 조항은 매년 물가에 연동돼 조정되거나 일정 비율로 상향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사회 및 산업 구조가 첨단화되며 앞으로 구조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자산군이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글로벌 인프라 주식은 오히려 인플레 상황에서 글로벌 주식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여 왔다. 지난 10년간 인플레가 2% 미만이었을 경우 글로벌 인프라 주식은 글로벌 주식보다 낮은 성과를 기록했지만, 인플레가 2% 이상이었을 경우 글로벌 인프라 주식은 글로벌 주식 및 채권보다 2배에 가까운 성과를 기록했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인플레 시대에 글로벌 인프라 자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10년대에 시작한 제4차 산업혁명은 투자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쳐 성장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202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역사적인 완화정책은 성장주로의 쏠림을 만들어냈다.
글로벌 인프라 산업은 구조적 성장을 구가하는 산업군이다. 견고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고 물가 상승에 따른 가격 전가도 용이한 덕분에 안정적인 비즈니스 운용이 가능하다. 인플레 우려가 휩쓸고 있는 현재 상황은 반짝 성장주를 뛰어넘어 구조적 성장주인 글로벌 인프라 산업에서도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지혜와 통찰력을 요구하고 있다.
글 조석민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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