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경기가 출렁이고 있다. 특히, 유학생부터 특파원, 중소기업 등 ‘환율 쇼크’로 생계 직격탄을 맞은 이들의 시름도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들은 언제쯤 고환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ig story]유학생·기업인 등 '고환율 늪'에서 허우적
“매일 매일 초조하게 환율 뉴스를 봐요. 혹시라도 달러가 1500원까지 올라가면 5년간 준비했던 미국 대학원 유학 계획을 무기한 연기해야 할 것 같아요.” (유학 준비 중인 공무원 A)

“예전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에서 이익이 발생했는데 지금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경기 침체에, 수입하는 원자재비마저 급증해서 그야말로 딱 죽을 맛입니다.” (인테리어필름 제조사 대표)

“이미 자녀가 둘 이상인 일부 특파원들의 경우, 체재비와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마이너스 통장 등으로 대출까지 받아서 생활비를 돌려막기도 하는 상황이랍니다.” (미국 특파원 B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며 국내 경기를 뒤흔들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의 잭슨홀 연설에 따른 미국 국채금리 급등 △유럽 에너지 문제 등을 거론하며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 강세를 전망하는 추세다.

이처럼 원·달러 환율이 무섭게 급등하자 해외 유학생, 기러기 가족, 제조 업체 등 사회 곳곳에서 고환율에 신음하고 있다. 이미 유학을 갔거나 준비하는 학생들 상당수가 이대로 가다가는 학업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시 산하 공무원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고환율 사태로 오래전부터 계획한 대학원 유학 준비에 적색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가 가고 싶은 뉴욕시 소재 대학원의 한 해 등록비는 미화 7만 달러에 달한다. 원래 그의 목표는 등록비의 절반 정도는 풀브라이트재단 장학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모아 둔 돈으로 채울 생각이었다.

A씨는 “환율을 1150~1200원 선에서 유학을 준비했는데 지금처럼 1400~1450원을 바라보는 상황에서는 학비만 700만~1000만 원 이상이 더 들어간다”며 “미국에서 파트타임 일을 구한다고 해도 체류비,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까마득하다. 뉴스를 보면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잠정적으로 유학 계획을 연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는 B씨도 최근 껑충 뛴 환율로 가계수입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2월에 비해 환율이 200원 이상 오른 데다 미국의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다.

B씨는 “최근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보여주듯 물가가 너무 올랐다. 식료품값도 올랐고, 식당에서 주는 팁도 이전엔 15%가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18%가 됐다. 모든 게 오른 상태에서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월급이 20% 가까이 줄어드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B씨의 경우 급여는 한화로 받고, 체재비는 달러로 받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고환율이 되면 수중에 들어오는 달러가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B씨 외에도 해외 파견직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급여를 원화로 받기 때문에 환율에 따라 생활비 등 일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B씨는 “미국도 한국 못지않게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간다. 자녀가 둘 이상인 일부 특파원들은 체재비와 월급으로는 이미 생활이 어려워 마이너스 통장 등으로 대출까지 받아서 생활비를 돌려막고 있다고 한다”며 “일부는 한화를 최대한 모아서 그나마 환율이 낮을 때 달러로 교환해 두자고 하는데, 1년 이상 생활한 사람들 대부분이 더 이상 한화를 끌어 쓸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big story]유학생·기업인 등 '고환율 늪'에서 허우적
고환율 수출도 마냥 호재 못 돼 ‘울상’
이처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진입을 코앞에 둔 ‘킹달러’ 시대지만 기업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수출 시장에 호재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모양새다. 특히, 달러 초강세와 금리 인상 기조로 제조 및 건설사들의 고민도 커지는 양상이다. 더욱이 해외 원자재값 급등 등 시장 불안요인이 커지고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해외 수주 기회가 줄어들면서 고환율까지 맞물려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

경기도에서 인테리어필름과 바닥 타일을 제조해 국내외 판매하고 있는 C사의 대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며 “환율이 올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두 달 전까지 대기업으로부터 톤당 10만 원에 매입했던 폴리염화비닐(PVC)이 9월에 10만 원이 더 올랐다. 우리 회사의 경우, 매달 500~600톤을 사는데 환율에 따라 적게는 수천에서 수억 원까지 돈이 더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창호와 바닥재, 필름 등의 원자재인 PVC 생산은 원자재가 총 생산비용의 47%를 차지하며, 주요 원자재 중 에틸렌과 EDC는 수입품목으로 환율 및 국제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C씨처럼 냉가슴을 앓는 이들이 늘고 있다.

C씨는 “그나마 과거에는 달러가 오르면 수출에서는가격 경쟁이 생겨 이익이 발생했는데 지금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건설업이 위축돼 있다”며 “수주는 줄어든 상태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니 정말 갑갑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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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물가 속 원자재를 해외에서 비싸게 들여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 입장에선 비용이 더 든다. 수출 경기도 반등 기미를 찾기 어렵다. 지난 8월 수출은 1년 전보다 6.6% 오르는 데 그쳐 전월(9.2%)보다 증가율이 낮았고, 특히 반도체가 7.8% 감소해 26개월 만에 줄어들었다.

이 밖에도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해외 직접구매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온라인쇼핑 해외직접구매액은 10억3000만 달러(약 1조4245억 원)로, 1분기 11억4000만 달러보다 약 9.2% 줄었다. 지난해 4분기(12억80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약 19.6% 감소한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9월 경제동향’에서 “반도체 수출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8.5% 하락해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반도체 산업 경기 하강은 향후 우리 경제 성장세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데다 물가는 당분간 5~6%대의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어 향후 당국의 조치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