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인터뷰 / ‘스테이 심상’ 심상복·차지영 부부

도시에서의 치열했던 삶을 뒤로하고 전원에 근사한 집을 지어 인생 2막을 여는 것.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 후반부의 모습이다. 내가 힐링하는 집이 남들에게도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 노후 소득원까지 되게 하려면 어떻게 지어야 할까. 여기, 정답의 한 자락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 전원생활에 푹 빠진 부부를 만났다.

강릉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20분쯤 달렸을까. 드넓은 사천 바다와 고즈넉한 숲에 둘러싸인 근사한 집 ‘심상(心象)’이 자태를 드러냈다. 대지면적 1320㎡규모. 높낮이가 다른 두 필지 위에 옹기종기 지어진 네 동의 건축물은 세련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부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심상’은 언론인 출신인 남편 심상복(63) 씨와 공간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 차지영(55) 씨 부부가 1년 반 전에 완공한 ‘따끈한’ 집이다. 네 동의 건축물 가운데 한 곳에 부부가 살고, 2개 동은 ‘이웃집’과 ‘사촌집’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2층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심상재’는 부부가 매일 책을 읽고 음악을 즐기는 서재이자 강의, 콘서트 등을 열어 사람들과 교류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심상은 ‘마음에 그려지는 상’이라는 뜻으로, 아내가 지었어요. 제 이름의 3분의 2가 들어가는 걸 처음엔 반대했는데(웃음), 지어놓고 보니 집과 참 잘 어울려요. 강릉에 자리 잡은 뒤 자연을 벗 삼아 보내는 하루하루가 가슴 벅차게 행복합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도 잠시 시간을 멈추고 심상을 느끼며 쉬어 갔으면 좋겠어요.”–심상복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던 차 씨 역시 “살아보니 전원생활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며 “맛집이나 문화시설이 대도시에 비해 부족한 점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하고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부의 하루는 아침 6시경 시작된다. 남편 심 씨는 일어나 가정 먼저 정원을 돌본다. 나무며 꽃들이 밤새 무탈했는지 살피고 풀을 뽑는다. 2시간가량 몸을 푼 뒤 아침식사를 하고 숙박시설을 정돈한다. 그리고는 찻잎을 우려 심상재로 향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들에게 여행도 일상이다. 강릉 핫플레이스는 물론 속초, 양양 등 인근 도시를 여행하며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만끽한다. 차 씨는 강릉에 와서도 미국계 부동산회사 JLL에서 인테리어 책임자로 일했지만 남편의 권유로 퇴사를 한 지 8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여기서까지 미친 듯이 일하는 아내를 보며 안쓰러운 맘이 들었죠.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싶어 과감하게 그만두라고 했어요. 지난해 말에 사표를 내고 강릉에 완전히 정착했죠.”–심상복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심상재에서 차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부부. 이들은 10월에 있을 홈 콘서트 기획에 한창이다.

코로나19 계기로 미루던 집짓기 결단
숙박시설 함께 운영하며 노후 소득원도


30년 세월을 신문기자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은 ‘언젠가는 시골에 집 짓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다. 대관령에 세컨드 하우스를 두고 지내보며 전원생활의 묘미에 눈을 뜨게 됐는데, 결정적으로 코로나19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서울에서도 지인들과의 교류가 줄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졌죠. 고민만 하던 차에 40대인 제 후배가 제주에서 비슷한 형태의 펜션을 운영하는 걸 보며 저희도 결단했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그 길로 열심히 땅을 보러 다녔죠.”–차지영

“아내는 원래 제주에 집을 짓고 싶어 했지만 접근성이나 날씨 등을 이유로 제가 설득했죠. 강릉은 제 고향인데, 마침 이곳에 먼저 정착한 아내의 사촌동생이 ‘강릉이 살기도 좋고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서울 보다 나은 점이 많다’면서 이주를 추천하더라고요. 낯선 곳에 정착하려면 누군가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하죠.”–심상복

이들은 애초 기획 단계에서 직접 거주할 살림집과 서재인 심상재만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잘 놀기 위해서’는 현금흐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숙박시설을 함께 지었다. 부부의 생각은 주효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소품 하나하나 주인장의 고급 취향이 녹아든 하이엔드 게스트하우스로 생기는 월수입이 심상재에서 홈 콘서트 등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골프도 칠 수 있는 정도는 되니 은퇴 생활도 훨씬 안정적이다.

“제주에 먼저 집을 지은 후배들이 저희의 비즈니스 멘토 역할을 해주었죠. 게스트하우스도 하나로는 좀 부족할 듯싶어 2개 동을 지었어요. 훗날 숙박업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와서 지낼 수 있으니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차지영

보통 남들은 마음을 먹고도 5년, 10년씩 걸린다는 집짓기를 1년 만에 뚝딱 할 수 있었던 데는 전공자인 아내 차 씨의 추진력과 타고난 감각이 한몫했다.

그럼에도 심상이 완공되기까지 수없는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고. 심 씨는 “심상재를 1층에 작은 규모로 만들까 하다가 설계 과정에서 사천해변이 시원하게 보이는 2층에 올리는 것으로 수정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며 “심상재에 폭 4M 정도의 유리 온실을 붙이길 원했지만 예산 탓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일단 저질러야 해요. 저희도 40 정도로 시작했다가 아이디어를 더해 가며 여기까지 왔거든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부부가 원하는 바를 최대치로 구현하다 보니 정말 우리답게 만들어졌더라고요. 많은 지인들이 심상에 와보고는 말해요. 이 집은 참 주인을 많이 닮았다고요.”
–심상복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아내 차지영 씨가 직접 디자인한 심상의 로고.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심상재에서 열린 홈 콘서트의 한 장면.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드넓은 사천 바다와 고즈넉한 숲에 둘러싸인 근사한 집 '심상' 전경.

글쓰기 강의·홈 콘서트 열어
이웃과 교류…무료한 시골살이?


“얼마나 흥미진진한데요”
강릉에 정착한 지 1년 4개월밖에 안 됐지만 이 부부는 ‘강릉의 인싸(인사이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상재는 이들이 즐겁게 강릉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다.

부부는 주로 외지 출신으로 강릉에 살고 있는 이들을 초대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주최한다. 글쓰기 강좌, 건축 수업을 진행했고, 누군가는 심상재를 대여해 조촐하게 리마인드웨딩을 올렸다. 그중 으뜸은 분기에 한 번씩 열리는 홈 콘서트다. 차 씨는 오는 10월에 열릴 홈 콘서트 기획을 위해 요즘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있다며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엔 명예 예술단 김정택 단장님과 서정근 교수님께서 피아노와 색소폰을 연주해주셨고, 최근에는 서울시향 단원을 모셔 하프 플룻 첼로 삼중주를 들었죠. 관객들 모두 너무 좋아해주었어요. 올가을엔 재즈 콘서트를 기획해볼까 해요. 프로그램 기획, 구성, 섭외부터 홍보까지 모두 저희가 해야 하니 지금이 가장 바쁜 시즌이죠. 시골 생활을 누가 무료하다고 했나요. 이렇게 익사이팅한데.(웃음) 저희가 가졌던 것들, 그동안 누리고 살아온 것들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차지영

이들은 은퇴 후 귀촌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몸만 내려와서 집 짓고 살겠다는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할 일이 없으면 금세 무료해지죠. 평생 쌓아온 경험치를 바탕으로 크든 적든 소득이 생기는 일을 마련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들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은퇴 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서 일하는 분도, 숲해설사를 하시는 분도 봤어요. 일이 없으면 빨리 늙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적어 고립되기 쉽습니다.”–심상복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심상의 4인실 숙소 사촌집의 내부.
마음으로 지은 집, 근사한 2막을 열다
▲스튜디오 형태의 2인실 숙소 이웃집.

30년 만에 다시 좇는 소설가의 꿈

집짓기라는 오랜 소망을 이룬 심상복·차지영 씨 부부는 심상에서 또 다른 꿈에 한 발짝 다가간다. 어릴 적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심 씨는 30년을 돌아 이제야 자신의 꿈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가난해서 돈 벌기 위해 경영학과를 선택했고, 어쩌다 경제부 기자가 돼 밥벌이를 위한 글을 썼지만, 지금이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소설을 쓰고 있어요. 이곳은 글 쓰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열심히 써서 재밌는 소설책을 펴내고 싶어요.”–심상복

차 씨는 요리도, 그림 그리기도, 피아노 연주도 바쁘게 사느라 놓고 살았던 취미들을 조금씩 시작해보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인테리어 컨설팅 업무도 하고 있다. 심상을 보고 강원도 인근에서도 비슷하게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컨설팅 문의가 제법 온다. “스페셜티가 있으면 지방에 내려와도 일이 완전히 끊기지 않는 것 같아요. 심상에 재밌는 콘텐츠를 만드는 심상의 안주인으로도 활약할 테니 기대해주세요.”–차지영

심상은 숲과 같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숲이 쉬어 가는 새들을 품어주듯, 부부가 숨을 불어넣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힐링하고 또 웃음꽃이 피우니 말이다. 강릉에서 두 사람이 가꾸어 갈 숲이 얼마나 울창하고 푸르를지 자못 기대됐다.

글 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심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