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는 유난히 예측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초불확실성 시대일수록 예측이 정확해야 혼돈에 빠진 경제주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해줄 수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전문가일수록 예측을 잘못했을 경우 나타나는 ‘마이클 피시 현상’이다. 마이클 피시는 1987년 200년 만에 초대형 허리케인 불어 닥칠 것이란 한 어부의 제보를 무시한 당시 유명한 BBC 방송의 기상 전문가의 이름이다. 이로 인해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줬다. 이는 전문가의 말을 믿다간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세계 경제 예측에서 가장 흔들렸던 항목은 ‘인플레이션’이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인플레 논쟁은 세계 중앙은행 격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그것도 세계 중앙은행 총재 격인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마이클 피시 현상에 따른 파장이 의외로 컸다.
‘파월의 치욕’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인플레 논쟁을 성장률과 연관시켜 지난해 4월 이후 숨가쁘게 전개됐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같은 해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나왔던 7월 말까지는 ‘일시적이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때까지 시장에서도 파월 의장의 일시적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지난해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발표됐던 이후에 하이퍼 인플레이션 우려가 갑자기 제기된 것이다. 일시적이라고 봤던 인플레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발표됐던 2분기 성장률 6.7%는 오쿤의 법칙상 국내총생산(GDP) 갭으로 무려 5%포인트에 가까운 인플레 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Fed가 추정하는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75%다.
하이퍼 인플레 논쟁도 잠시 세계적인 공급망 차질이 본격화된 지난해 여름 휴가철 이후에는 성장률 둔화까지 예상되면서 ‘슬로플레이션’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신조어인 슬로플레이션의 의미를 알아갈 무렵 같은 해 3분기 성장률이 2.3%로 급락한 것으로 나오자 2차 오일쇼크 직후 나타났던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이 재현됐다.
이 과정에서 Fed와 파월 의장에 대한 믿음이 급격히 추락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섰던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연차 총회에서 IMF는 회원국 중앙은행에 인플레 안정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권고했다. 곤경에 빠져 있던 Fed도 ‘일시적(transitory)’ 멍에에서 벗어나 뒤늦게 올해 3월 회의부터 말이 뛰는 식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2021년 이후 재테크 분야의 예측은 ‘10만 전자·1억 비트·천슬라’로 대변된다. 특히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돈나무 언니로 알려진 캐시 우드가 50만 달러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으나 지금은 2만 달러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제로’로 갈 것이라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과 함께 코인 투자자에게 양대 적으로 몰리고 있다.
주식 투자자에게 가장 큰 손실을 가져다줬던 예측은 ‘10만 전자’였다. 특히 대형 증권사일수록 12만 전자도 가능하다는 예측을 믿고 삼성전자 주식을 산 동학개미가 한때 5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5만 전자도 붕괴할 위험에 처하자 손실 폭이 커진 투자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3년 복합위기 발생할까
2023년, 토끼의 해인 계묘년을 앞두고 각종 예측이 또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나 믿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 요즘 주식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현실이다. 덕담 한마디부터 한다면 자기 본업에 충실하면 자기만의 예측이 가능하고 그것이 뉴 앱노멀 시대에 생존의 길이자 재테크 승리의 길이라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2020년대 들어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같은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줬던 만큼 내년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하지만 내년에도 또 다른 대형 테일 리스크가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세계 경제가 당면한 최대 테일 리스크이자 관심사는 ‘SF 복합위기’가 발생하느냐 여부다. SF 복합위기란 1980년대 초에 나타났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과 2008년에 발생했던 ‘금융위기(financial crisis)’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위기의 종합판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 3월 미 Fed의 첫 금리 인상 이후 경제주체들이 대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불과 6개월 만에 고금리 시대가 들이닥쳤다. 지난 20년 이상 동안 “고금리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부채 경감 착각(debt deflation syndrome)’에 빠져 무서운 줄 모르고 빌려 쓰는 과정에서 세계 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30경 원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총소득(GDP) 대비 260%에 달해 상환 가능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섰다. 세계 인구 75억 명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4000만 원이 넘는 수준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금 사정이 쿼드 러플 공포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이상으로 얼어붙는 신용경색 현상이다. Fed가 뒤늦은 급격한 금리를 올린 이후 국제 유동성 시장은 ‘Fed 공포’, ‘자국 중앙은행 공포’, ‘마진콜 혹은 디폴트 공포’에 이어 앞길이 보이지 않는 ‘뉴 앱노멀 공포’까지 겹치면서 얼어붙고 있다.
특히 Fed의 통화정책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이 심하다. Fed 공포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서든 스톱’, 1년 이상 지속되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자금이 은행으로 흡수되는 ‘역무브’, 증거금 부족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의 ‘디레버리지’,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을 움켜쥐는 ‘퇴장’ 현상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동시다발적인 금리 인상과 신용경색은 모든 자산가격을 떨어뜨려 세계 경제가 ‘SF 복합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기는 이미 빠르게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올 들어 세계 경제성장률은 두 분기 연속 하락하면서 지난 2분기 성장률은 잠재 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반면 주요국의 물가는 목표치인 2%를 4배 이상 웃돌고 있다.
우리나라는 빚을 가장 많이 쓴 국가로 분류된다.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은 지는 오래됐다. 국가 채무의 증가 속도도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 ‘부채의 화폐화’를 거론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IMF에 따르면 앞으로 3년 후에는 국가 채무 비율마저 위험 수위인 6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last resort) 역할을 해 왔던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갈수록 그 폭이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올 들어 9월 20일까지 무역적자는 3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속도로 무역적자가 지속된다면 올해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외화 사정이 녹록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6월 IMF가 제시한 새로운 적정 외환보유액(연간 수출액의 5%+총통화량의 5%+유동 외채의 30%+외국인 투자 잔액의 15%를 합한 규모의 100∼150%)의 하단선이 20년 만에 처음 무너졌다. 최근 들어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이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와 위험을 혼돈 말아야
재테크 생활자를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위기(crisis)’와 ‘위험(risk)’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Fed의 금리 인상 이후 나돌고 있는 위기설은 대부분 리스크 성격이 짙다. 초불확실성 증강현실(AR) 시대에서 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는 경제정책, 기업 차원에서는 경영 계획, 개인 차원에서도 재테크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리스크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뉴노멀 시대에 있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리스크를 파악할 때 흔히 범하는 △심리적 편향에 따른 함정 △고정관념의 함정 △자기 과신의 함정 △기억력의 함정 △ 신중함의 함정 △증거 확인의 함정 △트렌드 분석에 따른 함정 등 이른바 ‘루비니-파버의 7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사전에 파악해 놓은 리스크도 우리가 관리가 가능하냐에 따라 ‘행태 리스크’와 ‘통제 리스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관리 불가능한 행태 리스크마저 내부적으로 감당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설령 비용이 들더라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간 외교관계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리스크를 관리할 때에는 ‘사전적 대책’이 중요하다. 주로 사후적 대책에 해당하는 리스크 관리 실패로 위기가 발생하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전적 리스크 관리 대책으로 각광을 받고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나 리스크가 위기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조기경보 체제’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처럼 시스템이나 규범이 잘 작동되지 않을 때에는 리스크 관리자에 대한 ‘정직성’과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올해 증시를 흔들어 놓은 대형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단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또 다른 위기의 원천인 도덕적 해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디지털 콘택트 추세의 진전으로 심리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리스크 관리 여건에서는 ‘제도권 밖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다. 제도권에서 아무리 잘 관리하더라도 유튜브 등을 통해 위기설을 증폭시킬 때는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금융변수의 진폭이 커지는 ‘순응성’과 주기가 짧아지는 ‘단축화’ 경향이 심해지는 여건에서는 더 그렇게 해야 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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