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시진핑 리스크' 부상...'중진국 함정' 빠지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인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며,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정면에 내세우자 이른바 ‘시진핑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중국은 ‘중국몽’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아니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게 될까.

‘공동부유’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년 8월 17일 경제 분야 최고기구인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제시한 경제정책을 말한다. 당시 시 주석은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며 “중국이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소수의 번영은 옳지 않으며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공동부유는 소수의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부를 공유하는 것으로, 인구에서 중산층 비율을 확대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며 불법거래 소득을 엄격히 금지해 올리브 모양의 분배 구조(타원형)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이 1978년 ‘먼저 부자가 될 사람은 부자가 되도록 하라’는 ‘선부론(先富論)’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에 따라 성장 우선의 경제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면서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중국은 현재 양극화 문제로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공동부유는 중국 경제의 방향을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인 분배로 방점을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10월 16~22일)에서 당헌인 당장(黨章)에 시 주석이 제시한 공동부유를 명문화했다. 이번에 개정된 당장에는 ‘일부 지역과 일부 사람들을 먼저 부유하도록 장려해서 점진적으로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를 실현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전 당장에는 ‘일부 지역과 일부 사람들을 먼저 부유하도록 장려해서 점진적으로 빈궁을 없애고 공동부유를 달성한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개정된 당장에선 공동부유 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 개막식에서 미래 청사진을 담은 업무보고 연설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며, 중산층을 확대하고, 소득 분배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라며 공동부유를 네 차례나 언급했다. 이에 따라 공동부유는 경제 분야는 물론 중국 사회 전체의 핵심 과제가 됐다.

개정된 당장에는 또 ‘국내 대순환 주체의 쌍순환 발전 구도’가 명기됐다. 국내 대순환 중심의 쌍순환 전략은 개혁·개방의 반대말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2020년 5월 처음 제시한 쌍순환은 내순환(중국 내 시장)과 외순환(국제 시장)을 말한다. 대외적으로 개혁·개방과 수출 경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내수를 활성화한다는 의미이지만 ‘국내 대순환 주체’라는 용어로 내순환에 방점이 찍혔다. 미국 견제가 거세지자 내수 중심의 자력갱생으로 경제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시 주석이 이번 당 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 3연임과 함께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장기 집권에 들어가면서 공동부유를 기치로 내걸자 중국 부자들이 이른바 ‘차이나 엑소더스’에 나서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 주석의 3기 집권이 시작되자 중국 부유층들이 높은 세금과 개인 안전 등을 이유로 자국을 떠날 준비를 한다고 보도했다.

홍콩과 중국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싱가포르 대형 로펌 변호사는 “지난 수개월간 가문의 자산을 관리할 패밀리오피스(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적 투자 전문 회사)를 싱가포르에 설립해 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일부 부자들이 이처럼 중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공동부유 정책에 따라 중국 정부가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거 세금을 물릴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뜻밖에도 부자에게 물리는 세금이 거의 없다.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국가의 존립을 걱정할 만큼 경제 사정이 나빴기에 부의 축적을 제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도화한 상속세가 없고, 부동산 보유세도 일부 도시에만 시범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세계적인 거부들이 속속 등장하고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해 양극화가 심해지자 중국 정부가 조만간 고액 자산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중국 지방정부들의 핵심 세원은 아파트 단지 분양을 위한 토지 판매 수입인데, 시 주석의 부동산 시장 규제로 판매가 극도로 부진해 새로운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게다가 일부 부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 밉보였던 마윈 등 일부 자산가들은 일시적 또는 장기적으로 사라진 상태다.

특히 시 주석은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포함한 위원(정치국원) 24명을 모두 자신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인물로 채웠다. 덩샤오핑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초강력 권력 집중이다. 서방 언론들은 시 주석이 영구 집권까지 바라본다며 21세기 ‘시 황제’가 등극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 주석이 마오쩌둥 전 주석 시절 수준으로 권력을 집중시켰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시진핑 리스크’ 때문에 위안화가 14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차이나런’이 발생했다. 차이나런은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국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해 예금지급불능 사태가 우려될 때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대규모로 은행(bank)에 달려간다(run)는 ‘뱅크런(bank run)’ 현상을 중국의 상황에 적용한 표현이다.
중, '시진핑 리스크' 부상...'중진국 함정' 빠지나
자본시장서 ‘차이나런’ 발생…위기감 고조

이번 당 대회가 끝난 직후 홍콩 증시 폭락에 이어 지난 10월 24일 뉴욕 증시에서도 중국 관련 주식, 채권 투매 현상이 이어졌다. 당시 하루 동안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등 중국 5대 기업의 시가총액 523억 달러(75조 원)가 증발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헤지펀드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가 중국 주식 투자를 중단했다. 타이거 글로벌은 기술주 투자자로 유명한 체이스 콜먼이 이끄는 헤지펀드다. 그 이유는 시 주석의 공동부유에 따라 최대의 희생양은 빅테크 기업들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공산당과 정부의 비호와 14억 명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 이에 따라 이른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탄생했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거대한 부를 축적해 왔지만 빈부 격차 확대와 소득 불평등 등 부작용을 초래해 왔다.

더욱 중요한 점은 리커창 총리와 류허 부총리, 이강 인민은행 총재 등 시장경제를 옹호하거나 국제 금융 시장 등과의 관계를 중시했던 인물들이 모두 물러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이나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우려 때문이다. 왕신셴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시 주석의 경제정책이 실패해도 이를 수정할 메커니즘이 없다”면서 “정치국원들은 모두 충성파이기 때문에 견제 세력이 사라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시 주석에게 누가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며 “시 주석이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된 것은 심각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수전 셔크 전 미국 국무부 차관은 “참모들은 시 주석 정책의 단점과 문제를 감히 말하지 못할 것”이라며 “모두가 자신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보여주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 주목할 점은 정치국원 24명 가운데 경제 전문가는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자신의 심복인 리창 상하이시 당 서기를 차기 총리로 발탁했다. 리 차기 총리는 중국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상하이에서 지역경제를 관리한 경험이 있지만 경제관료는 아니며 중앙정부에서 일한 경험도 없다. 리 차기 총리는 시 주석이 2002∼2007년 저장성 성장과 당 서기를 지낼 당시 비서실장인 저장성 당 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시 주석이 2007년 상하이 당 서기에 이어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자 리 차기 총리는 저장성 성장, 장쑤성 당 서기 등 핵심 지역의 요직을 지냈고,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상하이시 당서기로 승진했다. 리 차기 총리는 지난 3~5월 코로나19 유행으로 상하이가 봉쇄됐을 때 방역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 주석의 신임 덕분에 총리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허 주임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중국 경제 발전을 기획·감독하는 발개위 수장을 맡아 중국 내 대형 인프라 사업을 지휘하고 시 주석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또 시진핑 3기 경제정책을 규정짓는 ‘14차 5개년 계획’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허 주임은 부총리로서 시 주석 집권 3기 경제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실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허 주임은 시 주석이 1985~1988년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일할 때 인연을 맺어 40년 넘게 친분을 이어왔다. 하지만 재정금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인 허 주임이 시 주석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평가다. 결국 경제정책 결정 과정도 시 주석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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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악의 경제 성적…성장 동력도 약화

시 주석 3기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경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 5.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했지만,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조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국의 각종 제재 등 대내외 여건 악화로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이 2~3%대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을 제외하면 40여 년 만에 최악의 경제 성적이다.

시 주석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2035년까지 경제력과 과학기술력, 종합국력을 향상시키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중진국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총체적 목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이 이런 목표를 실현시키려면 앞으로 연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중국 경제가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 경제를 견인해 온 막대한 인구는 감소하고 있고, GDP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지는 등 성장 동력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2030년 이전까지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4.5% 수준에 머물고, 그 이후에는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지표 발표가 이번 당 대회 일정으로 연기됐다가 뒤늦게 공개된 점만 봐도 중국에서 정치가 경제정책 결정을 우선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중국 경제의 중심은 역동적인 민간기업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으로 옮겨 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중국이 고품질 발전과 자립, 자강을 통해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을지 여부다. 미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각종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과 시 주석이 강조하는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국제사회에선 벌써부터 중국이 ‘시진핑 리스크’ 때문에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ㅣ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