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주춤하자 '킹골드' 왔다
‘킹달러’가 주춤하자 금값이 들썩이고 있다. 올해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통한다. 금값이 치솟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감이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 뉴몬트 마이닝 코퍼레이션(Newmont Mining Corporation·NEM)은 1921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금광 기업이다. 뉴몬트라는 이름은 창업자이자 금융가였던 윌리엄 톰슨이 사업을 일으킨 뉴욕과 자신의 고향인 몬태나주의 앞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 회사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가나 등 세계 곳곳에 금광을 보유하고 있다. 금 이외에 구리, 은, 아연, 납 등도 채굴하고 있다. 현재 본사는 미국 콜로라도에 있고 직원은 4만3000명에 달한다. 뉴몬트는 1925년 증시에 상장됐으며 금광 업체로는 유일하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됐다.

뉴몬트는 2007년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세계지수에 포함된 최초의 금광 기업이 됐다. 뉴몬트가 세계 굴지의 금광 업체가 된 것은 1965년 네바다주 칼린에서 북미 최대 금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가 찾아낸 금맥은 폭이 8㎞, 길이 64㎞에 달했고 가치는 무려 850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후 뉴몬트는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M&A)을 거치면서 덩치를 키웠다. 뉴몬트는 2019년 세계 4위 금광 회사인 캐나다 골드코프를 100억 달러에 사들여 세계 최대 금광 회사가 됐다. 뉴몬트는 전 세계의 연간 금 생산량 1억580만 온스(3000톤) 중에서 5~6%를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세계 2위 금광 기업인 배릭골드도 뉴몬트만큼 잘나가는 회사다. 배릭골드는 세계 1위 금광 업체였지만 뉴몬트에 1위 자리를 내줬다. 1983년 설립된 배릭골드는 칠레, 사우디아라비아, 잠비아 등 13개국에서 16개 광산을 갖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본사가 있는 배릭골드는 최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과 구리 광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뉴몬트와 배릭골드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값 연일 상승세…경기 둔화 우려 반영

세계 경제의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금값이 연일 오르고 있다. 올해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값은 지난해 11월 초만 해도 온스당 1630달러(206만 원) 안팎에 거래됐지만 이후 꾸준히 오르다가 새해부터 온스당 1880달러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금값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해 들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에선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올해 전 세계 3분의 1 지역에서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며 “미국, 유럽, 중국 등 3대 경제권역에서 동시에 경기 둔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7%로, 2022년 3.2%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은행(WB)도 1월 10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해 6월 보고서에서 전망한 수치보다 1.3%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이번 수치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를 겪은 2009년과 2020년을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클 정도로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폭등을 막기 위해 추진해 온 금리 인상 정책을 접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 4차례를 포함해 모두 7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려, 0~0.25%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4.25%포인트 높은 4.25~4.5%로 끌어올렸다.

Fed의 잇단 금리 인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기 때문이었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물가를 잡기 위해 Fed처럼 금리 인상에 나섰다. 그런데 Fed의 이런 정책으로 달러화 가치의 초강세를 말하는 이른바 ‘킹 달러’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Fed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보다 6.5%를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킹달러 현상이 한풀 꺾이고 있다. 6.5% 상승률은 2021년 10월 이후 14개월 만에 최소 폭이다. 인플레가 둔화 조짐을 보이자 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경기 침체에도 물가를 잡겠단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올 하반기에는 Fed의 금리 인상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달러화도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킹달러' 주춤하자 '킹골드' 왔다
금값, 미 금리 인상 기조가 좌우할 듯

금값과 달러화의 가치는 어떤 관계일까. 미국 정부가 1971년 금 본위제(금태환)를 폐지한 이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면 금의 가치가 떨어졌고,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금값이 올랐다. 금 선물은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면 투자자들은 금을 비싸게 사야 한다. 따라서 달러가 오르면 금 수요가 줄고 금값이 하락한다.

미국 거시경제 분석가인 제임스 리카즈가 저서 <금의 귀환(The New Case for Gold)>에서 “금의 달러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금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금이 오른 게 아니라 달러가 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금값과 달러화의 가치는 반비례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온스당 금 가격을 살펴보면 2008년, 2011~2012년, 2020년, 2022년 등에 정점을 찍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들 수 있다 당시 18개월간 이어진 경기 침체로 S&P500은 마이너스 37.4% 추락했다. 반면 금값은 16.3% 올랐다. 이후에도 금값 상승은 이어졌다. 2008년 10월 온스당 723.9달러에서 2011년 8월 1825.6달러로 152%나 상승했다. 2008년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2011년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조치 등을 계기로 달러화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금값이 급등한 것이었다.

금값은 이처럼 지구촌을 위기에 빠뜨리는 사건이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과 전쟁 등이 발생했을 경우에 오른다. 금은 최고의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금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경우에도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심지어 금은 사이버 전쟁에서도 해킹 당할 위험이 없다.

지난해 금값 동향을 보면 달러화 가치와 반비례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2월 24일)한 이후 지난해 3월 금 가격은 2000달러를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빠르게 떨어지더니 같은 해 11월 초까지 16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그 이유는 미국 Fed의 금리 인상과 고강도 긴축에 따른 달러화 강세 때문이었다.

금값은 지난해 6월까지 온스당 1800달러 선에 머물다가 7월 1700달러대로 떨어졌고 9월에는 1600달러까지 떨어지며 연초 대비 20%나 하락했다. 이후 금값은 11월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상승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와 Fed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금값은 앞으로 어느 정도 오를 것인가. 국제 금 전문가들은 올해 금값이 온스당 21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는 ‘2023년 금융 시장에서 깜짝 놀랄 일들’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값이 온스당 225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도 금 가격이 올해 말까지 13%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덴마크 투자은행인 삭소방크도 “각국 중앙은행들이 탈(脫)달러 전략에 따라 역대급으로 많은 양의 금을 사들이고 있다”면서 “온스당 3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스테인 야콥센 삭소방크 투자책임자는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금값이 폭등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3분기 399.3톤을 매입했다. 이는 1967년 이후 55년 만에 최대로 많은 금을 매입한 것으로 전년 동기(90.6톤)보다 341% 증가한 것이다. 주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들였다. 국가별로 튀르키예 31.1톤, 우즈베키스탄 26.1톤, 인도 17.5톤, 카타르 14.8톤 등이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대규모로 매입한 것은 자국 통화 가치 불안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 때문이었으며, 올해 말까지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선 금값이 더욱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금값의 상승 랠리가 아직 시작도 안 됐다는 말까지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오는 2분기부터 금값이 본격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BoA는 “미국 Fed가 매파적인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정책을 선회한다면 금값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 전문 펀드를 운용하는 AU·AG펀드의 에릭 스트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금값이 최소 20% 상승해 온스당 21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랜드 CEO는 “2023년이 새로운 장기 상승장의 시작이 될 것”이라면서 “몇 년간 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르크 키에너 스위스 아시아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올해 금값이 최저 2500달러에서 최고 4000달러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키에너 CIO는 “많은 나라가 1분기 경기 침체에 직면함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면서 “이는 금을 매력적인 투자 수단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값이 4000달러까지 오른다는 건 지금 가격보다 2배 이상 오른다는 의미다. 반면 신중론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강한 경기 침체를 겪게 된다면 금 가격이 온스당 2250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Fed가 계속해서 매파적인 정책을 내놓는다면 150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금융 회사 슬레이트스톤웰스의 케니 폴카리 수석 시장전략가는 “금값이 오르겠지만 인플레가 금리 인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인플레는 이미 정점을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높은 인플레가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상당히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5% 정도의 인플레가 내년 상반기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 결국 금값과 달러화의 가치는 모두 미국의 금리에 달려 있다.

Fed는 지난해 4연속 자이언트 스텝 이후 12월 0.5%포인트로 인상 속도를 늦춘 바 있다. 인플레가 한풀 꺾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Fed는 올해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금값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려면 금리가 떨어져야 한다. 물가 상승이 이미 정점을 쳤을지 모르지만 미국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금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금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안전한 가치 저장 수단이란 것이다. 아무튼 올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 가능성 때문에 금값은 그 어느 때보다 출렁일 것이 분명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사진 한국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