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가 브라운관 밖 무대에 올랐다. 공연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환상적인 무대장치와 그에 버금가는 화려한 춤과 음악 그리고 가슴 저미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을 매혹시킨 뮤지컬 <물랑루즈!>. 이 작품의 히로인, 사틴으로 분한 뮤지컬 배우 김지우를 만났다.
김지우 "물랑루즈로 연기에 대한 갈증 풀었죠"

[사진 CJ ENM 제공]

“Hey sister, go sister, soul sister,
flow sister. Hey sister, go sister, soul sister,
go sister.”


도입부만 들어도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이 노래. 바로, 영화 <물랑루즈>의 삽입곡 ‘Lady Marmalade’다. 2001년 전 세계가 열광한 콘텐츠를 꼽자면 단연 영화 <물랑루즈>를 빼놓을 수 없을 터. 뮤지컬 영화의 거장 바즈 루어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완 맥그리거,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이 작품은 2002년 제59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작곡상을 수상했고, 제74회 아카데미상에서 미술상과 의상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원작의 매력은 뮤지컬에서도 그 빛을 발했다.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한 뮤지컬 <물랑루즈!>는 브로드웨이 개막과 동시에 사전 제작비 2800만 달러(약 395억 원)의 초대형 스케일로 화제를 모으며 그해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등극했다.

2021년 제74회 토니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포함 10관왕을 차지했으며, 원작의 명곡들뿐만 아니라 마돈나, 시아, 비욘세, 아델, 리한나 등 세계적인 히트 팝을 ‘매시업’해 독창적인 뮤지컬 넘버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의 백미는 압도적인 무대장치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은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쇼가 펼쳐지는 1890년대 프랑스 파리의 클럽에 입장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수천 겹의 붉은 커튼이 객석 벽면까지 감싸고,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반짝인다. 클럽을 재현한 붉은빛의 극장 안에 들어서면 객석 왼편으로 거대한 풍차가 빛을 발하며 돌아간다. 객석 우측엔 이국적인 분위기의 푸른색 코끼리 조형물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실제로 미국, 호주, 영국, 독일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느낌이 살도록 대부분의 무대 작업을 미국, 호주, 프랑스 등 해외 제작소에서 만들어 공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 중 파리 호화 클럽 물랑루즈의 스타 가수 사틴 역을 맡은 아이비와 김지우 두 배우는 호주를 방문해 의상 피팅을 진행할 정도였다고.
김지우 "물랑루즈로 연기에 대한 갈증 풀었죠"
[사진 CJ ENM 제공]
이처럼 엄청난 공이 들어간 작품에 타이틀롤을 맡는다는 건 그만큼 영광과 부담이 뒤따를 것이
다. 인터뷰로 만난 김지우 역시 사틴 역할에 캐스팅된 순간부터 기쁨 그 이상의 중압감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역할에 진심인 그는 뮤지컬로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음에 벅차했다. 그야말로 인생캐릭터를 제대로 만난 뮤지컬 배우 김지우와의 일문 일답을 정리해봤다.

우선, 뮤지컬 <물랑루즈!>에 참여하게 된 소회가 궁금해요.
“이 작품을 브로드웨이에서 2019년 처음 봤어요. 3박 5일 내내 작품에 빠진 채로 지냈죠.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외관부터 대형 풍차가 돌아가는 걸 보고, ‘와, 공연장을 이렇게까지 꾸며낼 수 있구나’ 감탄했죠. 국내에서 공연하면 무조건 오디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체 배우 중 지원서를 첫 번째로 냈을 정도로 간절했어요. 그 간절함이 닿아 캐스팅이 결정됐을 때 정말 벅찼죠.”

워낙 대작인 만큼 캐스팅 이후에도 부담감이 컸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간 다양한 작품을 해 왔지만 이번 작품의 사틴처럼 쉴 틈 없이 무대에서 노래, 춤, 연기가 몰아치는 롤을 맡아본 적이 없었어요. 솔직히 캐스팅이 되고서 행복했지만 두려웠어요. 워낙에 전 세계적으로 지금 굉장히 흥행하고 있는 대작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오디션부터 최종 캐스팅이 공개될 때까지 과연 누가 될지 말들이 많았거든요. 동시에 일각에서는 ‘김지우가 왜 캐스팅 됐지’라고 의구심을 가지실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로부터 제가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서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하나 무척 고민이 컸어요. 매 순간 신경을 쓰다 보니 과거 보디프로필을 준비할 때처럼 40kg대까지 살이 빠져 버렸어요. 이런 압박감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특히 더 신경 쓰이셨나요.
“사틴의 ‘디바’적인 요소랄까요. 이를테면 같은 역할을 맡은 아이비 언니의 경우, 가수 출신답게 무대의상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출 때 정말 멋있더라고요. 무대가 꽉 차 보였달까요. 반대로 제 모습을 모니터해봤는데 뭔가 좀 무대가 허전해 보이더라고요. 특히, 사틴이 처음 혼자 등장하면서 ‘스파클링 다이아몬드’를 부를 때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참 어려웠어요. 스스로 무언가를 장악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 초반엔 부담이 컸죠. 그런 제 모습이 은근히 드러났는지 제가 존경하는 프로듀서(PD)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김지우,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어깨 뽕 좀 넣고 당당히 해’라고 격려하셨죠. 그래서 ‘그래, 까짓거 그래야겠다. 내가 왜 나한테 자신감이 없지? 난 무대 위에서 모든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독려했어요.”

작품 속 사틴을 표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사실 해외 공연에서 본 사틴의 겉모습은 (상대적으로) 강한 포스가 느껴졌어요. 체격도 크고, 굉장히 다른 외모를 풍겨요. 그래서 저도 ‘몸을 키워야 하나’ 싶었는데 그 부분은 다른 채로 남겨 두고, 제가 가지고 있는 걸 더 특화시키자 싶었죠. 연기였어요. 사실 오래전부터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컸습니다. 노래와 춤을 추는 것도 행복하지만, 뭔가 제 본업이었던 연기를 더 깊이 있게 파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그간 뮤지컬을 해 오면서 제가 가수 출신이 아니다 보니 작품을 할 때 노래를 하는 것 자체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아요. 노래 안에서 연기를 충분히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었죠.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제 갈증을 채울 수 있었죠. 노래는 노래 나름대로, 연기는 연기 나름대로 그 안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 부분들을 다 갖춘 작품이랄까요. 특히 2막부터는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무척 크고, 연기로 표현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재미있고, 매 순간이 행복해요.”

그런 노력이 더해져서 그런지 그야말로 ‘인생캐’를 만나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토록 원했던 역할이기도 했고, 매 순간 고민이 컸던 작품이었거든요. 누구나 살다 보면 그렇잖아요.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과연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이 작품을 하는 내내 스스로 참 많이 의심하고 고민했었죠. 그런데 극 중 제가 부르는 ‘firework’를 부를 때마다 느껴요. ‘의심하지 마. 그냥 하면 돼. 너만의 빛으로’라고 부를 때마다 참 울컥해요. 그 가사를 곱씹으면서 노래를 하면 할수록 그 가사 자체가 저한테 와서 꽂힌달까요. 그런 모든 것들이 배우로서 제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물랑루즈는 결국 사랑 얘긴데, 상대 배우들과 호흡은 어떤가요.
“우선, 광호 오빠와는 10년 전 뮤지컬 <닥터 지바고>에서 극 중 연인 사이로 호흡을 이미 맞춰본 적이 있어요. 그때도 애정신이 많아서 지금도 연기하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오빠는 늘 공연 전에 얘기해요. ‘극 중에서 오빠는 진심으로 사틴을 사랑할 거야’라고 말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연기하는 순간에는 진심으로 크리스티안을 사랑하게 돼요. 그만큼 광호 오빠가 그 감정선을 연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 주는 것 같아요. 반대로, 충주 씨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됐는데, 이전에는 그의 작품을 거의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충주 씨와 호흡을 맞춰보니 ‘와, 이 친구 진짜 잘하는구나’라고 놀랐어요. 오죽하면 그간 충주 씨가 했던 작품을 다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요. 함께 연기하면서 고마운 배우죠.”
김지우 "물랑루즈로 연기에 대한 갈증 풀었죠"
[사진 CJ ENM 제공]
실제 본인도 사틴처럼 사랑에 빠지면 열정적인 스타일이신가요.
“공교롭게도 저희 팀 배우들 대다수가 기혼자여서 ‘아, 사랑 안 해본 지가 너무 오래됐는데 그런 감정을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라고 농담하곤 해요.(웃음) 그런데 돌이켜서 생각을 해보니, 저는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정말 그 자체에 몰입하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따라서 사틴이 본인이 죽어 가는 와중에도 온 세상에 크리스티안의 음악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게 내가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마음이 저는 120% 공감됐죠.”

이번 공연을 하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나,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면요.
“매회 좀 아찔한 순간들이 적지 않아요. 안무에 리프팅이 많거든요. 저만 해도 리프팅만 5번 정도가 되죠. 모든 배우들이 정말 연습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연습할 때 합이 안 맞으면 바로 부상으로 이어지거든요. 실제로 다친 분들도 계셨고요. 그럼에도 다들 몸을 사리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제가 우스갯소리로 ‘내년 뮤지컬 어워즈에서는 앙상블 상은 우리 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할 정도로요.”(웃음)
김지우 "물랑루즈로 연기에 대한 갈증 풀었죠"
[사진 CJ ENM 제공]
뮤지컬을 시작한 지 벌써 17년 차예요. 인생의 큰 부분을 무대 위에서 보낸 셈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선택할 것 같으세요.
“제가 늘 생각한 건데 내가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직업이 사실 거의 없어요. 그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직업이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죠.”

마지막으로 새해 목표와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3월 5일까지 뮤지컬 <물랑루즈!>를 모두 무사히 완주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그리고 제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정말 건강이 최고인 거 같아요.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건강을 읽으면 모든 게 한순간에 걱정과 근심으로 흔들리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마음껏 할 수 없고요. 건강이 역시 제일인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그래서 하루하루 조금 더 웃으며 시작하실 수 있는 2023년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 좋은 일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