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뷰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는 수출 감소와 공급망 위기 등 당장의 과제보다는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생산인구 절감 시대에 투자 포인트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흔히 디스토피아 영화 속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인간 멸종’이다. 멸종의 이유야 가지각색이지만 인간이 사라진 지구는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행성일 뿐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디스토피아 관점이 그저 미지의 세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용해보면 그리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듯 보인다.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은 단 한 차례도 반등하지 못하며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2021년 연간 출생아 수는 26만500명으로 2017년(35만7771명)보다 27.18% 줄었다. 합계출산율 역시 같은 기간 1.05명에서 0.81명으로 감소했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2006년 그의 논문에서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지난 2월 7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특별 간담회에서 ‘경제 전망과 리스크 요인’ 주제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인구구조 변화”라며 “인구 문제가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는 향후 국내 경제 펀더멘털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될까.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이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생산연령인구 감소, 고령자 증가라는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떤가요.
“2022년 3분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9명으로 나타나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다양한 저출산 대책들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이후 등락을 반복하던 합계출산율은 2015년 이후 급격히 악화돼 출산율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출산의 문제가 학령인구, 병력 자원 및 생산가능인구 감소, 지방소멸 등 교육, 국방, 산업, 지방 행정 등 다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구구조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고령화의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합니다. 2022년 6월 유엔이 발표한 ‘세계 인구 추계(World Population Prospects)’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크게 늘어나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39.4%로 인구 100만 명 이상 지역 중 홍콩을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2년과 2050년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 차이를 인구 고령화 속도로 정의하면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21.9%포인트로 홍콩을 포함한 주요 지역 중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독 왜 한국의 고령화는 이렇게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나요.
“2000년대 출산율 하락이 일정 부분 기여한 바가 있겠으나 주된 원인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2020년을 시작으로 대거 65세에 도달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생부터 1974년생을 포괄하는데 절대적인 출생 인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급속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 2020년 기준 약 166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2%를 차지합니다. 주요국의 베이비붐 세대 비중을 살펴보면 서유럽(1946~1964년생) 22.7%, 일본(1947~1953년생) 10.3%, 중국(1962~1975년생) 22.4%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주요국에 비해 가파른 고령화의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은 2000년대 출산율 하락이 현실화되기 이전인 2001년에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 결과에서도 2050년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을 이미 34.4%로 전망한 바 있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통상 인구구조 변화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인구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초래할 최악의 경제 시나리오가 있다면요.
“경제학자들의 실증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인구구조가 고령화됨에 따라 노동력 부족 및 생산성 둔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고령층이 늘어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물가 상승률은 확대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나면 성장률이 0.2~0.6%포인트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를 한국의 고령화 속도(2022년 대비 2050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 21.9%포인트 증가)에 단순 대입을 해보면 대략 20년 후 성장률이 지금보다 무려 4~13%포인트 하락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결과는 실물변수와 인구 고령화 간 과거 규칙성에 기반을 한 만큼 인구 고령화에 대한 대응 노력의 확대 가능성이 충분히 고려돼 있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인구구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을 경우를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로 볼 수 있겠습니다.
향후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자동화가 크게 진전되거나 고령층 및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 제고 등에 힘입어 그 충격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금이나 재정 등의 장기 추계에 반영된 주요 예측기관들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살펴보면 2030~2040년 중 성장률을 1% 중반 수준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전망의 산출 내역을 살펴보면 고령화로 노동과 자본 투입이 점차 축소되는 가운데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대체로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생산성이 둔화될 것으로 보여 주요 기관들의 장기 예측치의 하방 위험이 작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외국의 경우 저출산·고령화 시대 문제 관련 경제 구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출산·고령화는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에서 정책 노력 등에 힘입어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반등했던 사례가 있으나 반등 폭이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재차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구구조 변화를 경험한 고소득 국가들은 고령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동유럽과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즉, 해외로부터 저렴하게 생산된 제품을 수입하거나 국내에 부족한 저숙련 노동 공급을 이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구 고령화의 속도가 매우 가파른 데다 주요 교역국인 중국과의 동반 고령화로 대외 여건 또한 부정적인 점 또한 감안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주목해봐야 할 미래 투자 분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향후 20여 년에 걸쳐 공통적으로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규모 노령인구 확대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당뇨,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나 항암 치료 등에 대한 의약품을 비롯해 아직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지 않으나 노인 돌봄을 위한 보조장치들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은퇴에 직면하는 동시에 늘어난 기대수명에 대응해 연금소득을 마련해야 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자산관리나 리츠 관련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정책 대응을 조언한다면.
“향후 정책 대응은 고령화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한편 인구구조 변화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한정된 인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동 시장의 선진화를 통해 거시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긴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정부 재정이나 국민연금 등 고령화로 지출이 급격히 확대될 분야에 대해 선제적으로 충분한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급격한 고령화로 수급자들이 대규모 확대가 임박한 상황에서 재정이나 연금 개혁이 지연될 경우 미래 세대의 부담이 그만큼 커져 추가적인 개혁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끝으로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고령 친화적인 근로 환경을 조성해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령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 확대는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한편 고령 친화적 직업들이 동시에 여성 친화적인 만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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