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여보자. 그런 행동이 거꾸로 무기력에 빠진 내 마음에 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액티브 힐링'으로 나를 깨우자
‘액티브 힐링(active healing)’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직역하자면 능동적 힐링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수동적 힐링은 무엇이지 의아했던 것이다. ‘액티브’라고 하니 무언가 ‘정말 하고 싶은 힐링’이라 생각되는데, 사실을 알고 보면 완전히 반대 개념이라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액티브 힐링이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고 났더니 힐링이 되는 것을 뜻한다.
봄이 왔다. 자연스럽게 산책을 하고 싶은 날씨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굳이 액티브 힐링은 필요 없다. 물 흘러가듯 산책하고 싶은 마음에 나를 맡기면 된다. 액티브 힐링이 필요한 이들은 오히려 무기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행동적 항우울제(antidepressant activity)는 먹는 항우울제가 아닌,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을 뜻한다. 마음의 에너지가 소실되는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되면 우울과 무기력감이 찾아오면서 만사가 귀찮은 심리적 회피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회피 반응이 찾아오면 항우울 행동이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1년 이상 불 꺼놓은 방에서 컴퓨터만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움직여야 생각과 행동이 따라오는 게 정상적 흐름이다. 그런데 마음에 의욕이 없어도 작은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거꾸로 행동이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휴일에 웬 등산이냐”며 거의 끌려가다시피 집을 나섰는데, 등산을 마치고 나니 지친 마음이 재충전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나아가 꾸준히 등산을 해보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를 우울증 치료에 적용한 것을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고 한다. 행동을 활성화해 지친 마음을 재충전해보자는 것이다.
‘행동적 항우울제’는 사람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행동적 항우울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를 떠올리며 우울한 감정을 만든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항우울 효과를 지닌 활동은 무엇인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구와의 통화가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면 우울 항목에 적고, 강아지를 산책시킨 것이 기분을 좋게 해준 것 같다면 항우울 항목에 적어보는 식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긍정의 강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울과 무기력감 같은 부정적 녀석들이 강하게 덮치면 강과 연결된 파이프라인이 막혀 긍정성을 삶으로 흡수하기가 어려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이 파이프가 절대 다시 뚫리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침대에 누워만 있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 에너지의 흐름이 막혔을 때 뚫어줄 수 있는, 나만의 항우울 필살기를 평소에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행동적 항우울제 목록 작성하기’를 권한다. 마음도 근육처럼 행동해주어야 더 튼튼해지고 행복감도 늘어난다.
'액티브 힐링'으로 나를 깨우자
얼마전 수험생 자녀를 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도전했으면 하는 곳에 자녀가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해 고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말이 ‘밑져야 본전’이다. 그런데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도전해보자”라는 조언에 “다시는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란 답변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면 밑져야 본전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실패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회피 행동이 강해져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가면증후군’도 내면에 ‘결국은 실패할 것’이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성공한 자신의 모습이 가면으로만 여겨져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자신을 망치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실패 두려움’엔 좋은 정보를 가진, 신뢰할 수 있는 멘토가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을 깊이 내보일 수 있는,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거꾸로 신뢰를 주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며 경청하는 자세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했다면 상대방의 어려움 감정에 대한 공감 소통은 그 대화에 있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비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자연스러운 마음의 반응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나약한 이야기 하지 마”보다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란 소통이 필요한 것. 또 어떨 땐 그냥 말 없이 잘 경청해주는 소통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두려움이 좀 가라앉았을 때 실제 선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멘토도 자신만의 멘토링 네트워크가 존재해야 한다.
이런 좋은 멘토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과 관점 전환을 할 마음의 여유와 용기가 생기는 데 도움이 된다. ‘두려움은 정상적인 것이지 나약한 것이 아니야’, ‘감정은 소중한 것이지만 하나의 정보일 뿐 내 삶의 절대적 결정 요인은 아니야’ 같은 식의 셀프 멘토링이 가능해진다.
강한 스트레스가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과거에 비해 무기력과 두려움이 상당히 증가한 상황이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넘어 ‘만년 번아웃’이란 용어가 유행할 정도다. 그래서 ‘액티브’가 강조되고 있다. 무기력과 두려움이 나를 누르지만 하기 싫어도 ‘액티브하게 먼저 행동해보자’란 의미다. 행동이 거꾸로 무기력에 빠진 내 마음에 강한 동기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