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김초엽 작가 <므레모사>

죽음의 땅, 그 경계에 서다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므레모사’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 <므레모사>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일명 ‘죽음의 땅’으로 불리는 오염 지역이다. 므레모사가 오염된 것은 2003년에 일어난 화학무기 공장의 폭발사고 때문이었다. 공장이 폭발하면서 유출된 유독물질이 비에 달라붙어 수도원을 오염시키고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것이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지역을 접근금지구역으로 선포했다.

소설은 폭발 사고의 비극으로부터 한참이 흐른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 사이 오염물질이 정화됐다고 판단한 정부는 므레모사에 살던 원주민들의 귀환을 허가했고, 의료 봉사자들에 이어 소수의 일반 관광객까지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외지인이자 일반인으로서 죽음의 땅에 입성한 첫 번째 관광 팀은 전 세계에서 추첨을 통해 선정된 6명의 남녀다.

인재와 자연 재해가 합쳐서 탄생된 대규모 재난. 사람들을 통제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와 결국은 상품으로 팔리고 마는 비극의 스토리. 현실의 여러 사건들이 겹쳐 떠오르는 므레모사의 비극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인간 유형들이다.

유튜버이자 영상 편집자인 주연은 므레모사 목격담을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추첨에 응모했다. ‘썰’만 잘 풀어도 관심을 끌 수 있고, 몰래 촬영에라도 성공하면 대박이 날 거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는 그녀는 비극에 대한 대중의 관음증을 상징한다.

관광학과 대학원생인 이시카와는 재난 현장이 관광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말한다. “여행지란 그 매력을 점차 다듬어 가는 것이지, 날것 그대로의 여행지가 그 자체로서 매력적인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24쪽)

헬렌은 세계적인 재난 현장들을 찾아다니는, 일명 ‘다크 투어리스트’라고 불리는 여행객이다. 10년 전 끔찍한 이혼을 겪은 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녀는 자신의 불행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더 큰 비극을 겪은 지역들을 일부러 방문한다고 말한다.

탄은 태국 종합 언론사의 신문 기자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너무 싹이 좋아 보이는” 바람에 선배에게 찍혀 원하던 정치부 대신 여행 매거진으로 좌천됐고, “연예인들만 쫓아다니기보다는 대단한 걸 써보겠다”며 므레모사 투어에 지원했다.

레오는 스페인에서 펍을 운영하다가 “어쩌다 보니 투어에 신청했고, 운 좋게 당첨됐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므레모사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갇혀 버린 연인을 구조하고, 이 공간의 무서운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완전히 다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들의 목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호기심이든 기자 정신이든 혹은 복수심이든, 관광을 신청한 이들은 비극을 겪은 므레모사가 비정상적이고 열악하며 자신이 있는 곳보다 열등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곳을 구경하려 하고, 누군가는 개발하려 하며, 누군가는 폭로하려 한다.

패키지 멤버 중 유일하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 유안이다. 그녀는 한국 출신의 무용수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의족을 차고 다시 무대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재기 스토리의 이면에는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어둠이 있다. 그녀는 사고 후유증으로 환지증(절단된 신체 부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는 증상)에 시달리고, 의족 부작용 때문에 연결 부위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녀에게 멈출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끝없이 춤을 추며 사고와 장애를 딛고 일어난 ‘부활 서사’의 주인공을 연기하라고 강요할 뿐이다.

그녀가 투어를 신청한 것은 므레모사에 대한 기묘한 소문 때문이었다. 복귀한 무용수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그녀는 방송 진행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유안 씨, 그거 알아요? 그곳(므레모사) 귀환자들은 아예 치료도 거부하고, 움직임도 포기하고, 침상에만 누워 살아 간대요 (중략) 그에 비하면 유안 씨는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해요.”(147쪽)
유안과 므레모사의 주민들은 모두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비극을 겪었다. 유안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정상 궤도에 재진입하며 박수를 받았지만, 므레모사는 그런 서사를 거부하며 동정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구경거리가 되기 직전에 놓여 있다. 유안은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함께 간 멤버들과 다른 결정을 내린다.

<므레모사>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서울 광화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광화문은 각종 시위의 메카다. 광장에서, 전철역에서, 때로는 통제된 도로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구호를 외치며 날이면 날마다 시위를 한다. 1인 시위부터 수만 명이 참여하는 점거 시위까지 5년간 광화문으로 출근하며 그런 광경을 셀 수 없이 목격했다.

그것은 결코 보기 편한 광경이 아니다. 어떤 시위는 소란스럽고, 어떤 시위는 현실적인 불편을 초래한다. 폭염과 혹한의 날씨에서 눈비를 맞으며 단식 투쟁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그들을 대놓고 욕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도 많고, 크고 작은 시비가 붙은 것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던 중 어떤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나도 오가며 몇 번 본 적 있는, 휠체어를 타고 오랫동안 1인 시위를 하던 한 남성의 인터뷰였다. 그는 말했다. 이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걸 본인도 안다고. 하지만 거리에 나와서 이렇게 보기 좋지 않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 자신의 최선이라고. 그때 깨달았다. 내가 오랫동안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를. 그것은 그때까지 배우며 살아온, ‘정상’의 경계를 벗어난 모습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던 것이다.

<므레모사>에는 죽음의 땅에서 귀환자들의 삶을 목격한 의사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는 말한다. “우리 의료진은 그들에게 므레모사 바깥으로 나올 것을, 도시 가까이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강제 이송을 시도했고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의료진을 해치고 탈출했다. (중략) 나에게는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의문이 있다.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스스로를 해치는가?”

그러나 유안은 그 인터뷰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리고 귀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일 뿐이라고.

글·그림 서메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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