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혁신인가, 한계인가…무인매장의 딜레마
무인매장 아마존고가 ‘직원 없는 소매업’의 청사진을 제시한 지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팬데믹을 지나며 국내 오프라인 매장도 무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업종에서 100% 무인매장이 유행처럼 늘었다. 동시에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점포를 접는 창업 사례도 치솟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창업 시장에서 여전히 강력한 키워드로 자리하고 있는 무인매장의 딜레마는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소비 트렌드를 뒤흔든 최근 몇 년 사이. 비대면의 바람을 타고 눈에 띄게 늘어난 분야가 있다. 바로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점포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키오스크,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많은 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창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인화 트렌드는 본격적인 엔데믹 시대로 가고 있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KB국민카드가 지난 4년(2019~2022년)간 신용카드·체크카드의 오프라인 업종을 분석한 소비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오프라인 업종의 주요 키워드로 ‘접촉’, ‘무인화’, ‘전문화’ 등이 꼽힌다.

특히 지난해는 무인 사진관과 코인노래방 등 무인매장의 매출액이 크게 증가한 해였다. 무인 사진관의 지난해 매출액은 2021년 대비 271% 증가했고, 신규 가맹점 비중은 54% 늘었다. 코인노래방은 매출이 2021년 대비 115% 늘고, 22년 신규 가맹점 비중도 28%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100% 무인매장은 아니더라도 무인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하이브리드형 매장이 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소병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게 제출한 ‘키오스크 접근성 현황조사’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2022년 45만4741대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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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폐업 사이,
복잡해지는 무인매장 창업 셈법

앞으로 본격적인 무인매장 시대가 활주로처럼 펼쳐지는 것일까. 이미 물꼬를 튼 무인화 시스템의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겠지만, 무인매장 시장 자체를 마냥 장밋빛으로 보긴 힘들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시기 우후죽순 늘어났던 무인점포의 폐업 사례가 잇따르며 ‘무인매장의 10개 중 9개는 망한다’는 속설까지 나왔다. 팬데믹이 소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권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이런 현상은 점점 두드러졌다. 점포 거래 전문 업체 점포라인에는 5월 21일 기준 100여 개에 달하는 무인매장 매물이 올라와 있다.

코로나19 시기 무인매장을 열었던 이아연(가명·29) 씨의 폐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리랜서 이 씨는 2021년 가을 서울 영등포구 주택가에 30㎡(약 9평) 크기의 무인 샐러드 매장을 개업했다. 그로부터 1년을 조금 넘긴 2022년 겨울, 이 씨는 결국 폐업이라는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창업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운영상의 어려움이 속출했던 데다, 수익성 악화가 쳇바퀴처럼 반복되며 결국 문을 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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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매장 내 비치해 둔 메모장에 적힌 손님의 항의였다. “너무하시네요. 이렇게 장사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간밤 취객이 냉장고 안에 쏟아내고 가 버린 토사물 때문이었다.

창업 이후 마이너스 비용만 쌓이는 가운데, 주인 없는 매장의 특성상 뜨내기 방문객으로 인한 관리 사고가 빈발했다. 인당 1개씩 증정되는 음료를 2개씩 가져간 탓에 로스(loss)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본업 외 추가 수익을 얻기는커녕 보람마저 못 느낀다는 생각이 커지니 하루라도 빨리 매장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실제로 제품 도난과 분실로 인한 로스율은 무인매장 사업자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다. 조은희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지방경찰청별 무인점포 절도 발생 건수를 보면,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5개월간 총 6344건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13건의 절도사건이 생기는 꼴이다.

“오픈 첫 달 재료비와 각종 고정비를 뺀 순수익이 15만 원이었는데, 첫 달을 제외하면 꾸준히 적자였어요. 특히 샐러드 품목은 매일 새 상품을 만들어야 상품성이 유지될 수 있는데요. 창업 전에는 매일 폐기 상품이 이렇게 많이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죠. 하루 묵힌 샐러드는 반값 할인으로 내놔도 대부분 팔리지 않더라고요.” 이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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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무장한 글로벌 무인매장도
혁신과 실리 사이 고민 늘어

스마트 기술을 접목해 주목받은 무인매장도 ‘혁신’이라는 상징성을 빼면 큰 실익을 챙기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마존이 야심 차게 내놓은 무인매장 아마존고를 예로 들 수 있다. 올해 3월,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에 위치한 아마존고 매장 안팎에는 ‘조만간 매장 영업을 종료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걸렸다.

“죄송합니다. 영업을 종료합니다. 마지막 영업일은 2023년 3월 31일입니다.” 그렇게 미국 내 아마존고 매장 28개 중 8개는 폐점 수순을 밟았다.

앞서 아마존은 2022년 4분기 실적 발표회 자리에서 아마존고와 아마존 프레시(무인 슈퍼마켓) 몇몇 매장을 폐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브랜드의 신규 개점 또한 당분간 중단할 계획이라는 게 사측의 공식 발표였다.

아마존이 무인매장을 한꺼번에 폐점한 배경으로 여러 이유가 꼽히지만, 무엇보다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아마존은 지난 수년 동안 무인 기술을 접목한 식품·식료품 사업에 진출하려고 노력했으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필요한 경험보다는 ‘기술력’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줄을 서지 않고도 물건을 집어 들고 바로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게 아마존고의 독특한 판매 포인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무인으로) 스캔하는 기술이나 멋진 쇼핑카트를 갖고 있다고 해서 쇼핑을 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의 닐 손더스의 지적이다.

국내 한 창업 전문가는 하이디라오가 2019년 베이징에 오픈한 인공지능(AI) 스마트 레스토랑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하이디라오 스마트 레스토랑은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로봇이 무선주파수인식(RFID)칩을 활용해 식재료 픽업, 조리를 완료하고 테이블까지 서빙까지 해주는 시스템”이라며 “파나소닉 등과의 협업을 통해 200억 원의 투자금을 들여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굉장한 미래형 매장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주고, 그만큼 인력을 많이 감축한 건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수백억 원의 투자 금액만큼의 효율성이 있는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이디라오는 그 매장 말고도 전 세계적인 체인을 보유한 브랜드라,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만든 매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매장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든 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언젠가는 투자 대비 효율이 나오는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창업자들이 (기술력을 접목한 무인매장을) 고민하기에는 허들이 높은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글로벌 대기업도 ‘혁신’과 ‘실리’라는 딜레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가운데, 국내 무인매장 시장은 앞으로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어떤 답안지를 고르게 될지 주목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