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영끌의 눈물, 부동산 경매 시장을 가다
[special]영끌 경매 물건 급증...하반기 부동산은
2021년까지 아파트 값이 고공행진하면서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집을 산 영끌족들이 경매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로 집을 샀지만 돈을 빌릴 당시보다 최소 2% 이상 상승했고, 이에 따라 매달 부담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폭등했기 때문이다.


#1. 8월 8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 별관 경매 법정은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각자 경매 물건을 확인하고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법정 안은 입찰자와 관계자 등으로 내부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날 서부지방법원 경매장을 찾은 경매 전문 금융 업체 한 관계자는 “경매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으며 낙찰되지 않는 유찰 물건이 아직 더 많다”며 “감정가보다 낮은 물건이 나오고 있는 데다 고금리로 소위 말하는 ‘영끌’ 매물 역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건이 나오더라도 실제 경매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더 많은 물건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2. 8월 9일 오전 서울 도봉역에 위치한 서울북부지방법원 경매장에서는 감정평가액 4억7000만 원(최저 매각 가격 2억4000여만 원) 아파트가 3억2000여만 원에 낙찰됐다. 당시 이 집은 12대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 향후 이 아파트가 재개발 가능성이 높아 나중에 많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입찰자들에게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날 물건을 낙찰받은 A씨는 “말소기준권리, 등기부등본 등 권리분석 등을 통해 알아보니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경매에 나온 집”이라며 “이자에 대한 부담으로 나온 집으로 이런 물건들을 요즘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 대기업에 재직 중인 홀벌이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2021년 12월 은행으로부터 4억 원을 대출 받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소재 66㎡ 크기의 대단지 아파트를 8억2000만 원에 구입했다. 당시 하한가 7억8000만 원을 호가하던 이 단지 동일 크기 매물은 현재 하한가 6억6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때여서 자기자본 3억 원과 은행 대출 4억 원, 처가로부터 빌린 1억2000만 원을 총 동원해 이른바 ‘영끌’을 했지만 치솟은 대출금리에 물가 상승까지 겹쳐 월 가용 소득 500만 원으로는 이자를 내기에도 벅차다.
주택 구입 당시 변동금리 기준 4%대였던 금리가 6%까지 올라 30년 상환 조건으로 매달 갚는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합치면 2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A씨는 “시세차익만 보고 계획 없이 아파트를 샀다가 경매에 넘어가게 생겼다”며 “돈을 빌린 처가 사정도 녹록지 않아 생애 첫 마련한 내 집이 애물단지가 돼 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special]영끌 경매 물건 급증...하반기 부동산은
경·공매 데이터 전문 기업 지지옥션이 발표한 ‘2023년 7월 경매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214건으로 이 중 830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37.5%로 전달(32.9%) 대비 4.6%포인트 상승했으며, 낙찰가율 역시 전월(78%) 대비 2.3%포인트 오른 80.3%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10월(83.6%) 이후 9개월 만에 80%대를 회복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69건으로 2016년 11월(171건) 이후 월별 최다 진행 건수를 기록했다. 낙찰률은 37.9%로 전달(28.3%) 대비 9.6%포인트 뛰었고, 낙찰가율은 86.3%로 전월(80.9%)보다 5.4%포인트 상승했다. 경매 신건과 유찰 건수가 모두 증가했지만, 규제지역(강남3구·용산구) 내 일부 아파트가 1~2회 차에 빠르게 소진되면서 서울 전체 낙찰률과 낙찰가율 상승을 견인했다.

2008년 리먼 사태와 유사? 고금리·경제난에 경매 물건 증가
우리금융연구소는 올해 아파트 경매 물건이 증가해 매수자의 선택지가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국 무역 의존도는 2021년 기준 69.6%로 미국 20.4%, 일본 25.3%에 비해 약 3배가량 높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고금리·고환율은 위기로 다가온다. 한국 무역수지는 2022년 3월 이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2023년 1월에는 적자 규모가 약 127억 달러에 이를 만큼 커졌다.
김수연 우리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2008년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는대, 당시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은 3566건에서 이듬해 5862건으로 64% 이상 증가했다”며 “현재 한국의 상황은 금리 인상 시기로 무역수지 적자라는 악재까지 겹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부터는 경매 시장에 나오는 아파트 물건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감정평가 이후 경매 개시까지 6개월 정도 소요되는 만큼 올해는 조정된 부동산 시세를 반영해 감정가가 하락한 경매 물건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경매 물건이 많아지는 동시에 기존 경매 물건의 유찰도 잦아지면서 최저 입찰가는 하락할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 30~50% 선을 유지했던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률은 하반기 14%(11월)까지 급락했다. 유찰을 겪으면 다음 최저 입찰가는 통상 20~30% 낮아진다. 그만큼 시장가보다 싸게 낙찰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하반기 부동산 시장, 약세 속 반등 예의주시
영끌족들이 지금 당장 힘들다고 해서 경매로 집을 넘기면 자산의 최소 20% 이상을 잃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NH투자증권은 하반기 부동산 시장 키워드로 △정책(규제 완화·통화·정책모기지) △전월세 시장(역전세·전세가율) △청약경쟁률(지역별 편차·정비사업·심리)을 꼽았다.
부동산 시장 상승 요인으로는 △매매 거래량 증가 및 직전 거래 대비 상승 비중 증가 △정비사업 기대감으로 인해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시세 상승 △주택 매매 시장 소비심리지수 서울 상승 국면 진입, 전국 강보합 국면 △주택 시장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 청약경쟁률 상승을 제시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2023년 1월 1만784건으로 최저점을 찍은 후 5월 4만74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2022년 12월까지만 해도 전국 아파트 거래 중 직전 거래 대비 하락 비중이 58%에 달했으나 상승 거래가 전체의 46.1%를 차지하면서 지난 18개월 내에 가장 큰 비중을 기록, 매수 심리 및 저점 인식이 확대됐다.

주택 가격 하락 시 부실 가구 증가 뇌관 될 수 있어
하반기 부동산 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 근본적인 요인도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은 하반기 부동산 시장 하락 요인에 대해 △매매 가격의 하방 지지선 역할을 하는 전세 가격의 동반 하락 지속 △1%대의 낮은 경제성장률 예측 및 경제심리지수 비관적 △잔액 기준 가계대출금리 상승 중 △지방 미분양 물량 해소도 큰 과제라고 분석했다.
매매 전세 가격 차액을 의미하는 갭투자 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 매수 수요 증가를 제한하고 있으며, 여전히 높은 여신 부담으로 가격 하락 시 부실 가구 증가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침체기 회복 속도가 지역마다 달라 공급 과잉 지역부터 적체 해소가 지연되는 점도 우려되는 점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영끌족과 같은 1주택자의 경우 하반기 유효한 대응 전략으로 거주 가치 중심으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며 “시장 중립 및 실거주 관점으로 보유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특히 영끌 매수자의 경우 금리가 낮은 대환대출과 상환 계획을 수립 후 가능한 선까지 주택을 보유할 것”을 당부했다.
[special]영끌 경매 물건 급증...하반기 부동산은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리 낮춘 대환대출 상품 내놔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 영끌족들의 대환 수요를 겨냥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차주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주담대 대환대출에 최저 3%대 금리 상품을 내놨다.
케이뱅크의 아파트 담보대출 상품의 대환대출 변동금리는 최저 연 3.78%며,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혼합금리는 최저 연 3.879% 수준이다. 시중은행의 4%대 금리보다 낮다. 특히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린 이후 변동금리를 적용받은 고객들의 경우 대환에 성공하면 2% 가까이 이자를 줄일 수 있어 인터넷전문은행이 영끌족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올해 6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21조220억 원으로 지난해 말(15조5890억 원)보다 34.9%(5조4330억 원)늘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말 13조2960억 원에서 30.3% 증가한 17조3220억 원을 기록했고 케이뱅크는 2조2930억 원에서 61.4% 늘어난 3조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카카오뱅크의 2분기 주담대 신규 취급액은 3조5000억 원으로 이중 약 60%가 대환 목적으로 쓰였다. 케이뱅크 역시 올해 상반기 약 1조4000억 원의 아파트 담보대출을 제공했고 이 중 절반인 약 7000억 원이 대환대출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새로운 영끌 수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잉 대출 영업 행위를 집중 점검한다고 예고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주담대 확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준비된 투자자는 '경매', 실수요자는 '매매' 택할 듯
경매는 물건에 대한 권리분석 등 선행학습이 필요해 단순 매매보다 진입장벽이 높다. 미리 공부하지 않은 실수요자는 경매가 아닌 매매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금융연구소 측은 흔히 경매로 산 물건은 불길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투자자라면 이런 편견으로 시장을 바라보기보다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눈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매 특성상 최저 입찰가가 급격히 내려가더라도 경매 시장에 새롭게 뛰어드는 경쟁자 수는 많지 않다. 즉, 준비된 투자자들에게 올 한 해 경매는 좋은 물건을 싼값에 매수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경매로 집을 살 경우 유의할 점도 있다. 경매의 경우 잔금을 임차인 보증금으로 내기 어려운 구조다. 통상 낙찰 후 30일 이내에 잔금을 납부해야 하며 거주 중인 세입자가 있다면 퇴거해야 하는 명도 리스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도인과 협의해 잔금 일자를 조정할 수 있고 신규 세입자를 들여 잔금을 치를 수 있는 매매보다 경매가 까다로운 이유다.
경매 업계 한 관계자는 “잔금을 대출로 조달하고자 한다면 입찰 전 경매자금 대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며 “일반적인 대출한도는 낙찰(경락)가의 최대 80%로 감정가 대비 주택담보인정비율(LTV)만을 고려해 자금 계획을 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번 유찰돼 낙찰가가 감정가보다 낮아지면 계획한 금액 대비 대출 비율이 줄어 자금조달 계획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