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차전지를 미래 성장의 핵심 키워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과 한계점은 무엇일까.
[Big story]이차전지에 진심인 한국, 글로벌 경쟁력은
‘전지’는 1980년대 후반까지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어서 대기업들은 사업 자체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몇몇 그룹사에서 일본과 합자를 통해 알카라인 1차전지 혹은 니켈-카드뮴(Ni-Cd) 이차전지 등을 도모했지만, 번번이 대기업 참여 제한이라는 규제의 그물에 걸려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후 중소기업 고유 업종 해제 후, 국내의 대·중·소기업들 모두가 ‘이차전지’에 뛰어들었던 시절이 1990년대 초반이다. 1990년대 초반 한 해 걸러 니켈-수소(Ni-MH) 이차전지와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상용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1990년 초중반엔 리튬계 이차전지를 하던 곳은 몇 군데 없었다. 그룹사들은 외려 니켈-수소
이차전지 쪽을 주로 시도하며 리튬계는 일부가 탐색하다 IMF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1997·1998년을 넘어서며 신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리튬계 이차전지를 하겠다고 가장 큰돈을 투자한 곳은 삼성, LG, SK 같은 재벌 그룹사가 아니라 ‘한일 시멘트 그룹’이 베일런스 테크놀로지와 합자한 ‘한일 베일런스’였다. 이 합작이 실패로 돌아간 후, 우리나라 리튬계 이차전지 시작은 LG화학, 삼성SDI 등으로 공수가 넘어갔으며, 이차전지 산업을 리튬이온 이차전지 쪽으로 고도화시킨 건 1999년 LG화학, 2000년 삼성SDI, SKC 등 각기 소형 원통형 18650 백만셀 라인을 준비한 1990년대 후반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이때의 주역은 각 사의 니켈-수소 쪽 사업팀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국내 이차전지 기술과 산업은 2002년 초유의 중기 거점 사업 부실 기획 감사원 감사 결과로 국가 정책과 연구·개발(R&D) 투자 좌초의 위기가 있었고 정부 차원에서 부실 비위 분야라 포기도 검토했지만, 참여정부가 들어서며 제4차 산업기술혁신 5개년 계획으로 2004년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에 차세대 전지로 ‘이차전지’를 넣으며 진지한 접근을 시작했다.

이때 전국적인 학연의 반발을 딛고 실용적인 리튬이온 이차전지인 ‘3000밀리암페어시(mAh)급 소형 원통형’과 ‘중대형 파우치 각형’으로 선택해 집중했다. 이후 2010년대 들어 중대형 쪽은 ‘삼원계’로 집중했다.

2010년대 초반, 삼성SDI가 잠깐 소형 2차전지 세계 1위, 2020년 상반기 LG화학(현 엘지엔솔)이 중대형 전지 세계 1위를 하며 약진과 도약의 기미를 보였지만 단기적인 이벤트로 끝났다. 2023년 상반기를 마감한 지금, xEV 기준 국가 점유율 23%대이며 전기에너지 저장 장치인 EESs까지 포함하면 2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까지 밀리고 있다.

한국의 이차전지 기술과 산업이 소형은 원통형과 파우치(각형의 일종), 중대형은 각형과 파우치 중심으로 기술 제품군이 집중돼 있다. 제조업 생태계로 제조 장비 생태계는 아주 잘 잡혀 있는 편이지만, 약점은 언제나처럼 소재·부품군이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국산화 진전도가 높아서 분리막, 전해질, 활물질 일부, 양·음극 집전체, 하드 캔 등은 국산화가 돼 있지만, 코어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양극활물질 전구체(precursor), 고성능 제품을 위한 인조흑연, 전해질 핵심 소재와 일부 첨가제 등은 여전히 국외 의존도가 높고 가장 심각한 것은 삼원계 양극활물질 전구체와 인조흑연이다.

특히, 삼원계 양극활물질 전구체는 ‘할당 관세 유예’라는 정부 정책 실기로 중국 의존도가 급격히 올라갔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중국의 삼원계 전구체 제조사가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와 양극활물질 제조사 간 조인트벤처(JV)가 급격히 진전되며 외려 부품·소재 생태계가 보완됐고, 광물, 제련 생태계도 외려 IRA 덕분에 재정비하는 기회를 얻었다.
국내 이차전지 산업은 ‘고성능 이차전지’ 내에서도 ‘고성능 제품군’인 ‘삼원계 하이 니켈’계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문제는 범용 모빌리티와 EESs의 주류로 올라온 리튬인산철(LFP) 기반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약점을 갖고 있고, 신형인 소듐이온 이차전지 쪽도 따라가야 할 상황이다.

결국 ‘삼원계 하이 니켈’ 제품군의 시장 전망에 따라서 국가 점유율이 좌우될 것으로 보이는데, e-모빌리티나 EESs를 함께 볼 때 2030년 이후가 되면 리튬·인산·철(LFP)이나 신형 소듐이온이 7, 고성능 삼원계 하이 니켈과 그 파생이 3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막연하게 ‘고성능’ 제품군 개발로만 가기엔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 차세대 제품군으로 간간이 ‘리튬 금속계 전고체 전지’와 테슬라가 개발한 중대형 원통형을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서 차세대 제품군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미국이 개발했지만 중국의 상징과도 같은 LFP 제품군에 대해서도 진지한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과 그의 전후방 산업군을 한눈에 바라볼 때 5가지 지표를 놓고 논해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초, 차세대, 생태계, 자원, 정책이다. 기초는 인력 양성과 차세대 핵심 요소 및 원천 기술 여부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을 끌고 갈 인력 구조는 현장 인력과 혁신 인력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현장 인력이 현재 태부족한 상황이지만, 급격히 팽창하는 산업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어 국가적인 애로 상황에 빠져 있다.

혁신 인력은 전국의 대학교, 대학원에서 꾸준히 양성되곤 있지만, 문제는 질적 향상이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혁신 인력을 양성할 만한 양질의 전공 교수가 극히 드문 상황이라, 유사 전공 쪽에서 주로 양성되는 상황이다. 경쟁국 상황과 비교하면 결코 유리하지 않거나 불리해 어려운 상황이다.

차세대는 시장 지배력 확장을 위한 LFP 및 차세대 LFP 그리고 소듐이온 이차전지와 기술 혁신 선도를 위한 ‘고성능 삼원계 및 전고체 전지’ 쪽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LFP와 소듐이온 이차전지는 후발주자이기에 그 설움을 그대로 받고 있지만, 그간 하지 않았던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국내 배터리 3사가 국내외 시양산 및 양산기지 준비 소식이 빠르게 들려온다.

기술 혁신 선도의 고성능 삼원계는 점점 중국의 잠식에 위기를 느끼는 데다가 상용화 고성능 삼원계 중국 기술이 더 우월하다는 발표도 나와 곤란한 상황이 자주 전개된다. 전고체 전지는 전 세계가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 앞섰다고 할 수도 뒤처졌다 할 수도 없는 데다가 정말 유의미한 성과가 나올지가 의문이고, 외려 상용화를 위해 ‘혁신적인 기술’이 없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제조 생태계는 경쟁국 못지않은 상황이라 괜찮지만, 내수 시장이 작고, 내수 시장 내에서 생태계의 고도화가 이뤄지지 않아 전후방 산업과 연동된 산업 발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자원에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비교열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차전지 산업 자체가 기술집약적 성향보다 자원집약적 성향이 강해 천형으로 생각하고 최대한의 대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정책 부분은 사실 뼈아프다. 어이없는 삼원계 양극활물질 전구체 할당 관세 유예가 2년간 지속되며 삼원계 양극활물질 전구체 산업이 사실상 괴멸됐다가 미국 IRA 덕분에 다시 복구 중이지만, 여전히 허덕이는 상황이다.

이차전지 산업은 분명히 성장하고 있고, 점점 팽창할 것이다. 세상이 ‘전기화’되며 이차전지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되고 있다. 그 추세 속에서 우리의 이차전지 산업도 매 분기, 매해 성장일로에 들어섰지만, 시장 점유율 30%를 넘거나 간간이 세계 1위도 하던 한국 이차전지 산업이 중국 산업에 밀리고 있다. 우리가 못해서라기보다 중국이 우리보다 잘하고 있는 상황이다. 뛰는 한국 위에 나는 중국이란 말이 적합한 상황이다.

2023년 들어 20% 초반에 고착화한 국가 점유율은 우리의 지배력을 잘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다. 2023년은 ‘변곡점’과도 같은 시기로 국내 2차전지 산업이 도약할 건지 추락할 건지의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전기화 속도’가 예상외로 더딜 가능성에 더해 국내 배터리 3사의 주요 고객사인 자동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의 성과가 서서히 방향이 잡힐 예정이고, 이미 거센 도전을 받아 고전 중인 유럽 배터리 전기차 시장에 더해, 북미 배터리 전기차 시장 상황도 여의치 않다.

북미 시장의 선제적 투자가 ‘선점 효과’를 유지할지, ‘오버커패시티’로 갈지도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7, 8년 전 삼성SDI와 합자해 중대형 이차전지 산업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었던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사인 보쉬가 두 회사의 합자사인 SBL을 청산하고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이차전지 사업은 ‘매우 위험(too risky)’하다. 반도체에 버금가는 엄청난 ‘설비 투자’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였기도 했다. 흔히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란 경구를 입에들 달고 아주 커지면 쉽게 안 죽는다. 하지만 이차전지 사업에선 ‘너무 키워서 (결국) 실패할 수도 있다’란 위기 요인이, 즉 ‘무리한 확장’이 위기를 불러오는 예가 조만간 올 수도 있다. 사상 유례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지만, 개화기의 유럽과 북미 배터리 전기차 시장 판세 전개와 ‘전동화 차량 침투 추이’ 등 주요 지표 변화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글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교수
현재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이자,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산업전환분과 민간위원,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기업전환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전문위원,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 기술총괄간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