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금리 장기화가 경기 모멘텀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가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고, 동시에 수급 부담도 높아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글 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이사대우>

[WM Report] 채권 잔혹기에도 시장에 머무는 이유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투자 수익률이 2021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이는 1787년 미국 연방정부가 수립된 이래 최초이면서, 글로벌 주요 기관들의 전망을 모두 비웃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난해 장단기 금리 차의 역전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됐고, 물가 상승률은 점진적으로 둔화됐기 때문에 다시 한번 5%에 가까운 금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올해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전망은 이미 어긋났지만 수익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WM Report] 채권 잔혹기에도 시장에 머무는 이유
국채 금리 전망 어긋난 3가지 이유

국채금리에 대한 전망이 어긋난 이유는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 좋았다. 2022년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금리 상승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시장 예상을 상회하는 경제지표들, 즉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 경제의 호조세가 금리 상승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올 초만 하더라도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0.5%를 하회했다. 그러나 양호한 소비와 고용 시장을 바탕으로 강한 경기 모멘텀이 유지됐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마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각각 2.1%, 1.5%로 상향 조정하고 내년 실업률은 4.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상 극심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피셔 방정식(Fisher equation)에 따르면 명목금리는 성장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의 함수다. 강한 경제는 다시 한번 금리 수준을 끌어올렸고 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WM Report] 채권 잔혹기에도 시장에 머무는 이유
두 번째 이유는 금리 인하 기대가 낮아진 것이다. 사실상 변곡점은 9월 FOMC였다. 당시 공개된 Fed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말 금리 예상치(중간값)를 5.6%로 유지해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두는 한편, 2024년 금리 전망을 4.6%에서 5.1%로, 2025년 전망도 3.4%에서 3.9%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10년 만기 국채는 향후 10년의 경제와 물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9월 FOMC 이전까지 시장은 금리 인하의 기대를 채권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했다. 그러나 Fed의 기준금리가 장기간 높은 수준에 머물 것(higher for longer)이라는 전망이 강화되면서 채권 자산 대부분에 큰 폭의 변동성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수급 부담이 높아졌다. 공급 측면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 조정 이후 미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발행량이 급증했다. 9월부터 11월까지 미 재무부는 5년 만기 이상의 중장기채 발행을 통해 현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슈는 수요 측면에서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 나아가 ‘리틀 버핏’이라고 불리는 빌 애크먼의 장기물 상승 베팅처럼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금리 상승 리스크에 대비하는 공매도마저 증가하면서 중장기채의 금리 상승을 유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유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반면, 미국의 고용지표 및 물가는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미 국채금리의 고점을 논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WM Report] 채권 잔혹기에도 시장에 머무는 이유
‘경기·통화정책·수급’ 변수…추가적 금리 상승은 미지수

앞서 언급한 3가지 금리 상승 견인 요인(경기·통화정책·수급)을 고려해보면 지금 수준에서 추가적인 금리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먼저 미국 경제는 여전히 고금리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국의 고용지표가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지만 금리 및 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원가 부담은 시차를 두고 채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9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고용은 양호했지만 임금 상승률은 점진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동안 미국의 소비를 촉진시켰던 초과 저축은 소진됐고, 학자금 대출 상환과 유가 상승, 신용카드 연체율 상승 등은 전반적으로 가계 소비 둔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소비는 미국 경제에서 70% 가까이 차지한다. 결국 소비의 둔화는 미국 경제의 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Fed의 점도표가 미래를 점치는 ‘크리스털 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경기 여건이 변하면 점도표는 뒤늦게 조정되곤 한다.

2018~2019년에도 실제 금리 경로는 점도표와 큰 괴리를 나타낸 바 있다. 2018년 12월 FOMC 당시에 Fed는 점도표를 통해 2019년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019년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처럼 경기 여건에 따라 Fed의 금리 경로는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수급 부담도 최악의 국면을 지나가고 있다. 수급 이슈는 금리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보다는 단기 모멘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단기간의 가파른 금리 급등은 투자 심리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주로 금리 고점으로부터 머지않은 시점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공매도 세력은 역대 최고 수준까지 몰렸다. 미국 국채 발행도 12월이 되면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즉, 수급만을 놓고 봤을 때는 이제 되돌림의 가능성에 무게를 좀 더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리가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올해 내내 미국 금리의 경로가 기대와 다른 경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고금리의 기간은 결국 경기 모멘텀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얼마 전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도 고금리의 효과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 사실, 꽤 많은 일을 하고 있다(By doing nothing, we are still doing something. And, actually, we are doing quite a lot)”고 언급한 바 있다.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고금리 상황이 미국 경기와 물가에 충분히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채권 시장을 떠날 때가 아니라, 더욱 머물러야 할 시점이다.


글 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이사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