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창민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글로벌 자산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변동성이 큰 만큼 둥글둥글한 투자 전략, 여러 자산으로 고르게 배분하는 전략이 요구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 심지어 리스트 오프(risk-off) 시기의 대표적 헤지(hedge)형 자산인 금만 놓고 봐도 자산 배분 효과를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국제 유가, 고용 등의 경제지표가 인플레이션 재가속 우려를 재차 점화시키는 데다 원·달러 환율은 어느덧 1300원을 훌쩍 넘어서는 등 달러 강세 기조는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자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국채금리나 시장금리다.
투자자 모두가 주지하듯이 우리나라, 미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했는데, 본격적인 상승세는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부터 발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긍정적인 경기 전망과 함께 올해와 내년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점, 그런 관점에서 내년 기준금리 전망을 기존 4.6%에서 무려 5.1%로 상향한 점이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연내 기준금리가 동결될 경우 내년 4회가량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희망에서 절반이 사라지게 한 이벤트다. 5%를 하회하던 미국 국채 중장기물은 경쟁적으로 상승하면서 십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이 흔들리니 여타 국가 시장금리도 경기 모멘텀, 통화정책 여부에 관계없이 들썩이고 있다.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은 이익 전망이 양호한데 왜 동반 약세를 연출할까”, “Fed의 경기 전망이 개선된 건 그만큼 향후 경기 회복세가 꾸준할 것이라는 점에서 호재가 아닌가”, “연착륙 가능성이 여전히 높고 경기 회복은 기업이익 증가로 연결이 될 텐데 언제까지 ‘굿 이즈 배드(Good is bad)’ 내러티브가 적용돼야 하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분명 합리적인 궁금증이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소위 매그니피센트7(Magnificent7)로 불리는 빅테크 기업과, 코스피 지수의 이익 모멘텀을 이끄는 반도체 섹터(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대표적) 등 대형 성장주는 증시의 이익 신뢰도를 공고히 지켜주고 있다.
다만 현 주식 시장은 시장금리가 전례 없이 급등하다 보니 기업 펀더멘털인 이익보다는 멀티플을 결정짓는 할인율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금리의 장기화, 즉 Fed가 9월 FOMC 이후 과거보다 ‘더 높은 금리 레벨’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기업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분모에 들어가는 할인율이 커졌고, 더 먼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는 더 크게 하락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한다.
결과적으로 2~3개월 전과 현재 기업의 향후 이익 전망이 동일하다고 해도 그때만큼의 멀티플을 적용한 목표 주가를 산정하기 어려우며, 이는 특히 미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는 성장주에 더 혹독하게 적용된다. 고금리 장기화 시대, 생존력 강한 기업에 주목해야
‘양호한 경기 펀더멘털과 낮은 할인율’ 또는 지금 같은 ‘제약적 수준의 금리와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 펀더멘털’은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듯 공존이 어렵다. 그렇다고 주식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할 필요도 없다.
상업용 부동산을 포함한 리츠(REITs), 지역은행 주가, 하이일드(HY) 채권, 금 등 금리에 민감한 자산 성과는 부진하다. 시장금리에서부터 파생된 리스크를 소화하는 기간, 위험 회피까진 아니더라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시장금리의 안정화 여부를 가늠할 11월 FOMC 이전까지 변동성에 유의하되, 고점에서 20% 이상 하락하는 약세장 전환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금 비중 또는 단기채 등 고금리 유동성 자산을 확보하는 전술을 통해, 조정 시 손실률을 낮추고 향후 반등 국면에서 신규 진입을 모색하는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경기 침체 우려가 낮거나 침체가 현실화되더라도 그 폭은 완만한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부터 발표되는 미국의 3분기 기업 실적을 확인하면 이익 신뢰도는 굳건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 모두 앞서 언급된 대형 성장주가 증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비중)이 큰 만큼, 이들 기업 실적이 주식 시장 하방을 지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성과를 좌우할 주식 투자 키워드는 ‘고금리 장기화 시대의 생존력’이다.
고(高)변동성 구간에서 단기적으로는 방어주가 성장주 성과를 아웃퍼폼할 수 있다. 다만 더 멀리 본다면 이번 조정 구간에서 성장주 비중을 늘려 가는 전략이 미래 성과에 이로울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은 반도체 섹터, 미국은 빅테크 중심의 투자를 권고한다. 중동발 불확실성이 새롭게 발생했지만 이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 역시 성장주의 상대 강세 흐름의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증시 변동성이 완화되더라도 시장금리가 과거 레벨로 빠르게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이후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생경한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자본 비용 증가에 따른 이익 감소 등 한계기업은 증가할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내년 초 미국 기업의 디폴트 비율이 고점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역시 올해 말 고금리 회사채의 디폴트 비율이 4.5~5%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2021년 0.7%와 크게 비교된다.
실제로 미국은 시장 유동자금이 감소함과 동시에 금리 레벨이 높아진 결과, 중소기업의 자본 비용이 증가하면서 재무상태표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중소형주 중심으로 구성된 러셀2000 지수 편입 기업 중 약 절반가량이 장기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며, 지수 성과는 S&P500, 나스닥에 뒤처지고 있다. 성장주 투자 매력 'UP' …美 빅테크·韓 반도체 주목해야
주식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지금쯤이면 ‘반도체’(및 후공정 or 선단공정), ‘빅테크’라는 용어를 다소 식상할 정도로 접했을 것이다. 3분기 이후 해당 테마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아 투자 기간이 짧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국면이다.
다만, 인공지능(AI)이라는 메가 테마와 그 중심에 있는 빅테크와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성장 모멘텀을 가진 섹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인플레와 시장금리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원자재, 금융 섹터 투자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는 장기 전략보다는 단기 전술적 측면의 대응에 가깝다.
향후 경기 모멘텀이 견고해 인플레 기조가 장기화되거나 경기 둔화가 시장금리를 하향으로 이끌게 될 경우 성장주는 2가지 시나리오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금 창출력, 인플레의 가격 전가력, 주주친화정책(주식 소각·배당 확대) 모든 면에서 성장주에 속한 기업들이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주식 시장의 실적은 여전히 양호하다. 2020년 이후부터 올해 10월 10일까지 S&P500과 빅테크7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변화를 비교하면 S&P500이 같은 기간 37% 상승한 반면, 빅테크7은 평균 311% 상승했다. 특히 AI 서버 구축에 필수인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의 절대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엔비디아는 740%나 급증했다.
평균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30배를 상회하면서 S&P500의 18~19배 수준보다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2020년 이후 멀티플이 가장 낮았던 올해 초(25배)를 제외하면 저점은 늘 30배 수준이었다. 투입자본 대비 현금 창출력을 의미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빅테크7이 2023~2025년까지 연평균 44%로 예상되는 데 반해, S&P500은 20%로 높지만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주가는 이미 7월 고점의 97%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멀티플은 41배에서 33배까지 낮아졌다. 향후 시장금리 급등세가 멈추고 점차 하향하는 모습을 그릴 경우 빅테크의 높은 멀티플은 지속될 것이다.
코스피 지수는 8월 이후 조정이 연출됐는데 지수 낙폭은 고점에서 10% 수준이었던 한편, 멀티플[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12.5배에서 10.5배로 16% 하락해 가격 부담은 완화됐다. 무엇보다도 코스피 지수에서 30%가량의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익 전망이 4월 이후 빠르게 상향된 점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나라 수출지표와 동행하는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반등세를 이어 가는 한편, 무역수지가 9월까지 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반도체 감산과 재고 조정의 영향이 가격 반등으로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출액이 증가하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D램과 낸드(NAND) 가격이 하락해 정보기술(IT) 산업이 위태로운 것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는 여전히 성장하는 산업이고, 휴대전화, 컴퓨터 등 기존 레거시 비즈니스의 수요 하락 사이클 기간 동안 인위적으로 공급을 줄인 효과가 미래 가격 반등으로 나타난다.
수요 회복도 매출의 동반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반도체를 포함한 IT 섹터는 ‘피크아웃’이라는 단어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섹터로 판단된다.
국내 반도체 섹터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매매 패턴 변화와 슈퍼사이클 기대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삼성전자 12개월 선행 영업이익과 외국인 보유 비중 추이를 보면, 외국인은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이 하락하는 대부분의 시기에 지분을 확대(매수)하고, 영업이익 증가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비중을 서서히 줄이는 패턴을 나타냈다.
영업이익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주가도 상승하면서 외국인의 투자 전략은 성공했다. “반도체는 최악의 국면에서 투자하라”는 시장 격언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국인의 매매 패턴과는 상이했던 시기가 딱 2번 있었는데, 첫 번째가 2016년에 발생했고 그다음이 올해 2분기부터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2015년 하반기 중국의 경기 모멘텀이 둔화되고 고성장을 이어 온 중국 모바일폰 수요가 피크아웃에 이르면서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했다. 이후 2016년을 저점으로 반등을 시작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D램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서다.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포함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이유는 공급 감소의 원인도 있다.
그 당시 2008년 금융위기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자본지출(Capex) 투자가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고, 노후 설비도 점차 증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표 서비스 기업인 아마존 주가는 2015년부터 3년간 3배가량 상승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하드웨어 업체 주가는 아마존 주가 상승 약 1년 후인 2016년부터 2017년 고점까지 2배 넘게 상승했다. AI 투자 사이클 기반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 주가 UP
지난 2015년 이후 ‘감산, 데이터센터, D램 수요, 테크 서비스 주가 상승’을 현시점과 비교해보면 올 1분기 시장 예상과 다르게 감산을 결정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AI 서버 구축 과정에서 경쟁적인 AI칩(GPU) 및 D램(HBM) 수요가 증가한 이때 GPU는 엔비디아, HBM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반독점 구조 등 미국 빅테크 쏠림현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과거와 동일한 현상이 이어진다면 남은 건 시차를 둔 하드웨어 업체의 상승이다. 그리고 이는 곧 AI 투자 사이클에 기반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새롭게 리레이팅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시작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작금의 메모리 사이클은 우선 감산(재고 처리·AI 투자 선회)으로 공급이 역대급으로 감소했고(제품 가격 반등 가시화), 학습형 AI 개발 과정에서 HBM 수요가 크지만 향후 추론형으로 AI 시장의 에코(eco)가 변화되면서 D램(GDDR5·GDDR7 등) 수요가 빠르게 증가해, 그 결과 D램 시장 반등 사이클은 과거보다 더 길고 강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본다면 정말 혼란스러운 시장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걸 배제하고 “경기가 정말 부러질까”라는 짧고 단순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부터 너무 일찍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시기는 정말 뭐라도 하지 않았다면 부러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 경기 등 상황은 양호한 수준이다. 통화정책은 제약적 금리 수준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는 과거 잣대로 본 판단이며 중요한 건 아직 신용 사이클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은 현 금리 수준의 레벨이 다소 부담되지만, 경제 활동을 멈춰야 할 정도로 제약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이 중단되더라도 과거 수준을 향해 빠르게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기간 고금리의 공격을 극복 중인 산업과 그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은 미래에 더 잘 이겨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단기 변동성에 흔들림 없이 그런 섹터와 종목에 집중하면 된다. 힘든 시기이지만 과도한 공포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글 이창민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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