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10월 채권 시장에서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됐다. 채권형 펀드를 기준으로 10월 1일부터 19일(현재 기준)까지 276억 원이 유출돼 투자 잔액은 132조420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자금이 꾸준히 유입됐고 그 속도가 가속화된 점을 고려하면, 10월 자금 유출은 지금까지와 상반된 모습이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국채금리의 상승과 이러한 금리 레벨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투자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채권과 반대로 주식 투자자금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
주식형 펀드는 10월 1일부터 19일까지 1조1081억 원이 증가했고, 투자 잔액은 100조6289억 원을 기록했다. 직전 8월과 9월에는 연속적으로 자금이 유출됐지만 다시 평년 수준의 자금 유입을 기록 중이다.
다만 주식형 펀드의 경우 자금 유출입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월말께 데이터를 다시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현금성 자산인 머니마켓펀드(MMF)로는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10월 1일부터 17조5911억 원이 증가해 투자 잔액은 188조10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8~9월에는 MMF에서 자금 유출이 있었지만 10월 중 상당한 규모로 투자금이 유입됐다. 아마도 지난 8~9월 중 정부의 외국한평형기금 활용에 따른 MMF 환매 영향으로 자금 유출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10월에는 민간의 잉여 투자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관측된다. 금리 변동성 확대와 주식 시장 불확실성 때문에 현금성 자산이 리스크 헤지 측면에서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서 외국인 자금 대거 유출
채권 시장을 살펴보면, 외국인은 10월 19일 현재 원화채 시장에 총 235조459억 원을 투자했다. 다만 투자금액은 다소 줄었다. 9월 말 잔액 대비 투자금액이 1조4615억 원이나 감소한 것이다. 8월과 9월에도 투자금 유출이 있었는데 8~9월 평균 유출금액이 5937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3배 가까운 자금이 유출된 것이다.
잔존 만기별로 구분해보면, 1년 이하 구간에서 거의 4조 원 가까이 돈이 빠져나갔다. 9월 말 대비 3조9653억 원이 유출된 것이다. 반면 중장기물은 순매수했다. 1~3년 구간 6941억 원, 3~10년 구간 1조585억 원, 10년 초과물은 7512억 원을 순매수했다.
10월 중 발표된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실패로 인해 선제적으로 유입됐던 중장기물 구간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초단기 구간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간 것이다. 1년 이하 구간의 경우 대체로 짧은 만기물을 통해 단기에 일드(yield)를 고정시키고 동시에 외환(FX) 환헤지를 통해 재정차익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들어오는 자금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잔존 만기 1년물 국채금리 3.8%에다가 FX 스와프 금리 2.1%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어, 만기까지 투자 수익률이 5.9%로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이 자금들이 유출된 이유는 자연스럽게 만기가 도래해 추후 재유입될 자금이거나 미국 등 국가에 환을 오픈시켜 초단기 구간으로 옮겨 갈 자금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관련해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이 WGBI 편입에 실패했고, 실패 사유가 ‘외국인의 투자 접근성’에 기인한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WGBI를 관리하는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지수 편입 조건으로 △국채 발행 잔액 500억 달러 이상 △국가신용등급 A- 이상(S&P 기준)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세 번째가 미달됐다는 의미인데, 정부는 지난해 10월 세법을 개정해 외국인의 국채 이자소득 및 양도소득에 대해 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 개정으로 10월부터 외국인의 국내 원화 거래가 허용된다.
이와 관련, FTSE 러셀 측은 파급 효과를 점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덱스 편입에 성공할 경우 중장기물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90조 원 가까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시 실패할 경우 선제적인 투자자금들이 재차 빠져나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고금리 고착화 흐름 연말까지 지속 우려
올 연말까지 글로벌 금리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된 채 유지될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한다. 당초에는 11월을 전후해 금리의 하락 변곡점이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을 확인해보면 미국 경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상당히 견조하다는 분석이다.
민간이 자생적으로 ‘고금리를 감내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판단한다. 금리가 상승할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경제주체는 채무자다. 빚을 진 사람들은 금리 상승에 여실히 노출된다. 따라서 미국 각 경제주체들이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지출 비용 증가를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가계의 경우 이자 지출 비용이 늘었지만 이자에 따른 수입도 증가했다. 따라서 이자 순수취 수익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비금융 기업은 금리 상승을 사전에 잘 대비한 모습이다. 금리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증가에 따른 현금 확보와 선제적인 대출 상환으로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 비용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로써 민간 경제주체들이 고금리를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가 고착화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Fed가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즉, 당초 언급한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하겠다(high for longer)’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이 고금리를 버텨내는 체력, 동시에 여전히 잔존한 통화량과 중동발 유가 충격이 물가에 상방 압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Fed가 더 긴 시계에서 물가 리스크를 점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금리 추가 상승 제한적…내년 중 시장금리 하락?
시장금리의 상승 추세와 관련해 추가 상승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경제성장률과 경기사이클, 물가, Fed의 통화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결국 내년 중에는 시장금리 하락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측면에서는 신흥 수출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의 성장률이 내년 중 하향 조정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글로벌 금리 급등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올해 2.1%, 내년 1% 성장이 컨센서스로 형성돼 있다.
성장률이 올해 대비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한 경기 사이클 측면에서는 사이클 지수가 하방을 다지고 상승 변곡점을 형성하고 있으나 상승 폭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경기 사이클 지수의 3분의 1이 고용 관련 데이터로 구성돼 있고, 미국은 현재 과포화 상태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부터 시작해 실업률은 완만하게 상승할 것이다. 물가 측면에서는 상방 위험이 잔존하기는 하지만 추세적으로는 하향 기조를 그리고 있다. 2가지 리스크 요인이 유가와 통화량인데, 유가의 경우 추가 상방이 제한된다고 본다. 2024년 원유 수요와 공급을 살펴봤을 때, 수요가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추세적으로 원유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는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공급이 감소하고는 있으나 유가를 급등시킬 정도로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적정 레벨에서의 유가가 수요를 유지시켜 사우디 재정에 흑자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후자인 통화량 측면에서는, 다시금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인이 잔존하지만 시중에 존재하는 통화량, 즉 예금은 대체로 고액자산가 소유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미 재무부가 현대통화이론(MMT) 실험을 했던 초창기처럼 물가가 다시금 오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물가가 완전하게 하향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금리 상방 압력을 제한시켜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2분기부터 Fed의 정책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큰 이유는 중소 은행의 유동성 부족 때문이다.
중소 은행의 경우 보유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이 상업용 부동산에 치중해 있고, 그다음 국채와 기업대출 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상업용 부동산과 국채에서 상각액이 다수 발생했다. 동시에 보유 현금은 줄어들었다. 2019년 9월 레포금리 급등을 겪었던 당시 수준으로 현금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과다하게 긴축적인 금리 수준을 완화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24년 1분기까지는 물가 안정 흐름을 신중하게 평가하고, 2분기부터는 금융 시장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점진적으로 인하가 시작될 것이다. Fed 인하와 관련한 시그널을 사전에 확인하게 될 경우, 시장금리는 하락으로 방향성을 잡을 것이다. 현존하고 있는 안전자산 중 미국 국채가 만기까지 명확하게 자산을 보전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되짚어본다면, 이 정도 수준의 일드 상품은 자산 배분에 있어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내년 말 이후까지 보유를 고려한다면, 현재 금리 상승은 마찰적 이벤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글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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