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캐나다 연금, 최고 수익률·사회적 신뢰 비결은
9.8% vs 5%


올해 2분기 기준 캐나다 연금과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10년간 투자 수익률 성적표다. 나날이 전 세계 연금기금들이 장기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전 지구적 추세로 전환하면서 연금 지급 규모는 방대해지는 반면, 들어오는 금액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 사이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불거진 주된 이유기도 하다. 따라서 적극적인 투자 다양화를 통해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연금 개혁의 핵심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중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CPPIB)는 성공적인 투자 연기금 모델로 언급돼 왔다.

CPPIB는 1997년 캐나다연금계획(Canada Pension Plan·CPP)의 기금을 투자하고 성장시켜 캐나다인들의 노후 보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설립됐다. CPPIB는 연방법(CPPIB Act)에 따라 연기금의 투자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수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정부 및 정치권과 독립된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돼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올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서 발표한 ‘캐나다 주요 연기금 투자 현황’에 따르면 CPPIB 자금의 출처인 CPP는 1966년 캐나다 노동자들의 노후 소득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국민연금과 같이 퀘벡주를 제외한 18~70세의 캐나다 내 근로자라면 의무 납부 대상이며 일정 금액을 부담해 은퇴 후 매달 받게 되는 정부 연금 중 하나다.

올해부터 연금보험료율이 11.9%로 올랐는데 이는 월소득의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금액의 비율로써 근로자와 고용주가 5.95%씩 부담하며 자영업자(self-employed)는 11.9%를 내야 한다. CPP는 올해 6월 30일 기준 5790억 캐나다달러(CAD·571조 10월 23일 환율 기준) 규모로, 최근 10년간 연수익률이 9.8%에 달한다. 물론, 오랫동안 연금 개혁의 모범 사례로 뽑혀 온 캐나다에서도 CPP에 대한 여론의 온도 차는 존재했다.
[연금개혁]캐나다 연금, 최고 수익률·사회적 신뢰 비결은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30대 사업가 A씨는 “현재 캐나다 사람들도 마냥 우호적으로 캐나다 연금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싼 연금보험료에 비해, 훗날 오롯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개인연금 등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반면 70대 B씨는 “CPP와 노후보장기금(Old Age Security·OAS) 등에서 매달 2000달러 정도 연금을 받고 있다”며 “의료비도 무료고, 개인연금 등을 더하면 삶을 영위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캐나다 연금 시스템에 대체로 만족하는 등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생애 재무설계 대가 모셰 밀레브스키(Moshe A. Milevsky) 요크대 슐리치 비즈니스 스쿨(York University Schulich School of Business) 재무 교수는 “현재 연금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공정성(equity)’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세대 간에서도, 혹은 세대 내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셰 교수는 그러면서 “예를 들어 같은 세대 내에서도 건강 상태, 성별 등 기대수명에 따라서도 느끼는 연금에 대한 공정성은 갈리기 마련”이라면서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정부는 물론 사회 전반의 단단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CPP가 투자만큼이나 강한 분야가 바로 마케팅이다. CPP는 장기간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일관된 어젠다를 설명해 왔다. 단순히 수익률 숫자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연금개혁]캐나다 연금, 최고 수익률·사회적 신뢰 비결은
캐나다의 경우, 연금 개혁 과정에서 국민,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 연금 개혁에 관한 사회적 수용성과 지지를 높여 나간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CPPIB는 ‘2023년 글로벌 연금 투명성 벤치마크(Global Pension Transparency Benchmark·GPTB)’ 평가에서 노르웨이의 국부 연기금인 ‘GPFG(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안 슈퍼(Australian Super)’와 함께 투명성과 책임성 부문에서 세계 3대 펀드 중 하나로 선정됐다.
GPTB는 연금 공개에 대한 세계 최초의 글로벌 표준으로, 정보 공개의 완전성, 명확성, 투명성 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 캐나다는 국가별 총점에서도 2021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캐나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캐나다 내에서도 국민연금에 대한 찬반은 늘 존재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의견 대립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단, CPP가 지금껏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투명한 정보 공개와 끊임없는 여론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도 이런 과정이 연금 개혁에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설득, 장기적 투자 전략
물론 처음부터 캐나다에서 성공적인 연금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주에 따라 정치·행정적으로 갈리는 만큼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을 발판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캐나다는 1996년 폴 마틴 연방정부 재무장관이 18개 도시를 직접 돌며 공공협의를 통해 CPP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했다. 1995년 CPP 재정 계산에서 2015년 기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캐나다는 1997년 5.5%였던 보험료율을 9.9%까지 높였다. 여기에 마틴 장관은 연금 개혁을 하면서 동시에 운용 개혁도 추진했다. 국민이 낸 보험료를 효율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수익률이 오르면 비교적 적은 보험료로도 연금 제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CPPIB다.

우리나라도 그간 국민연금 위기론이 거론될 때마다 수많은 개혁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국민이 연금 개혁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공개하고, 개혁을 감내할 공감대를 이끌어낼 통치권자와 정치권의 강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것.

마이클 르덕(Michel Leduc) CPPIB 선임 상무이사 겸 글로벌 홍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나날이 고령화로 인한 노후 대책은 전 세계적 도전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연금 개혁 관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정책 제정자들의 장기적인 관심과 용단이 필요하다. (그 작업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차근히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CPPIB의 높은 수익률 배경에는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됐기에 가능했다. CPPIB법은 “과도한 손실 위험을 지지 않는 선에서 CPPIB는 최대한의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고려 없이 높은 수익률만 목표로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명문화한 셈이다. 이런 법 조항 덕에 CPPIB는 다양한 자산에 과감하게 분산투자를 할 수 있어 안정적인 수익률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CPPIB가 전문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지배구조(거버넌스)가 정치로부터 독립됐기 때문”이라며 “캐나다 연금은 위험 한도를 감안해 ‘글로벌 주식 85%, 캐나다 국채 15%’의 기준 포트폴리오를 마련해 놓고 운용 조직인 CPPIB가 그에 맞춰 다변화한 자산 배분 전략을 짠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역시 ‘장기적인 투자’에 초점을 맞춘다”며 “단기 성과에 급급한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연금이 현실적으로 미래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CPPIB처럼 투자 독립성, 전문성 그리고 끊임없는 국민과의 소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마이클 르덕 CPPIB 글로벌 홍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CPPIB 신뢰, 투명한 정보 공개와 중립적 소통서 나와”
[연금개혁]캐나다 연금, 최고 수익률·사회적 신뢰 비결은

CPPIB 글로벌 홍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마이클 르덕 선임 상무이사는 2011년 CPPIB에 입사해 홍보, 정부 관계, 기업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책임 및 브랜딩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는 “CPPIB의 투자 전략은 다양하고 균형 잡힌 투자 포트폴리오를 발판으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있다”며 “연기금에 대한 신뢰는 전적으로 그것을 실제 증명해내는 것(prove yourself)에서 나온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CPPIB가 투자 시 특별히 고려하는 사항이 있나요.
“어떤 특정 투자 전략이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투자를 하려고 하죠. 다만, 저희는 반드시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세우고, 투자자들을 설득하죠. 한번 정해진 투자 방식은 5년간은 잘 바꾸지 않는 편입니다. 투자 포트폴리오와 운용 방식에 잦은 변화를 주면 투자자들이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거든요. 저희는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인내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캐나다에서도 연금 관련 공정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어떤가요.
“맞습니다. 어느 나라든 연금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죠.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고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연금 관련 노후 문제도 피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가 됐죠. 저희 투자자들도 크게 2가지를 우려해요. 과연 이 투자(연금보험료 지급)가 30~40년 이후 끝났을 때 나에게 돌아오는 돈이 남을지 그리고 과연 CPPIB가 정말 100%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활용되는지에 대해 걱정하죠. 저희가 1년에 2번 정도 관련해서 설문을 진행하는데 실제로 50% 이상의 국민들이 향후 연기금이 본인에게 돌아오지 못할까 봐 우려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우려에도 CPPIB가 신뢰를 얻는 배경은요.
“신뢰를 얻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연속적인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죠. 뻔한 이야기같지만 성과가 쌓이고, 증명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이 생기니까요. 동시에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이 필요해요. 그리고 소통 과정에서 사람들의 우려와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립적인(neutral) 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그저 좋은 면만 발표하는 게 아니라, 결과가 좋든 나쁘든 담담하고, 중립적으로 모든 과정과 결정들을 투명하게 발표해야 사람들이 혼돈하지 않습니다. 비밀도 없어야 하고요. 특히, 저희는 대개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때문에 꾸준한 국민과의 소통을 제외하곤 신뢰를 얻을 수 없죠.”

CPPIB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도 적극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향후 어떤 분야가 투자 전망이 밝을까요.
“저는 어떤 회사든지 탄소중립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 기술적 전략, 즉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은 회사라면, 미래 투자의 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전에 세계 경제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됐을 때처럼, 오늘날 대담한 전략을 가진 회사들은 에너지 효율적인 회사로의 변화를 추구하면 큰 기회를 얻을 듯합니다.”

그 외 연금이 지속 가능하게 운용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우선, 저는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선거 때만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설득하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사회에서든 금융 지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줄곧 언급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투명하고 정부 독립적인 경영 모델로 신중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캐나다(토론토)
사진 CPPIB 제공